80대 현역 여성 조경가의 전시가 열린다
쓰임을 다한 공간 위에 수십 번의 계절이 쌓였다. 정수지(淨水池)를 떠받치던 기둥에 담쟁이가 타고 오르고, 물속 불순물을 여과하는 침전지에는 약품 대신 수련과 부레옥잠, 물봉선, 검정말 같은 수생식물이 부유한다. 그렇게 정수장은 모두의 정원이 됐다. 선유도공원 이야기다. 개장 후 20년, 한때 선유도를 장악하던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는 울창한 나무 틈에서 존재감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조경가 정영선은 겸재 정선이 그린 한강 풍경을 생각하며 선유도공원 조경을 설계했다. 낡은 산업 시설과 한국적 풍경이 다시 화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시아공원,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호암미술관 희원, 제주 오설록티뮤지엄, 경춘선숲길, 서울식물원, 설화수 북촌 플래그십 스토어, 디올 성수. 역사의 일부가 된 도시 공원부터 인스타그래머블한 브랜드의 스토어 속 정원까지 모두 정영선의 손을 거쳤다. 1941년생임에도 여전히 현장을 활보하는 정영선은 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 이 땅에 적잖은 변화를 만들었다. 무분별한 개발에 반기를 들고, 단절된 도시와 자연을 우아하게 잇는 정원을 그리며 말이다.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질주하며 흘러가는 시대 속에서 그는 영혼의 고요함을 잃지 않는다. “저는 정원이라는 건 인간이 인간답게 살면서 잠시 빌려 쓰는 땅에 대한 ‘헌사’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기본적인 터로서 대지는 마땅히 존중하고 보살펴야 하는데, 그런 보살핌 자체가 ‘정원적’ 삶의 태도가 아닐까요?”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릴 그의 회고전은 정영선이라는 한 예술가의 보살핌에 관한 기록이다. 전시는 4월 5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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