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질 수밖에 없었다

이원재 2024. 4. 12. 20: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진단] 마케팅 방법론으로 분석한 총선... '친환경·신성장 그룹' 놓친 게 패인

경제평론가인 이원재 성공회대 연구교수가 정부여당의 패배로 끝난 22대 총선을 분석했습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소셜미디어에 실린 글을 오마이뉴스에도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이원재 기자]

총선 결과가 나왔다. 정부여당인 국민의힘(비례정당 국민의미래 포함)은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수많은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우리 사회 이념지형의 변화를 꼽고 싶다. 우리 사회는 과거에 이단으로 여겨지던 진보적 생각, 즉 '평화'와 '평등'을 지향하는 이념이 주류인 환경으로 바뀌었다. 또한 유권자는 더 이상 보수-진보 또는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이라는 단선적 대립구도 안에 갇혀 있지 않고, 다양한 이념그룹으로 분화돼 있다.

민주당은 대체로 그런 지형에 맞게 행동한 반면,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그런 지형과 전혀 동떨어진 행동을 해온 게 이런 선거 결과를 가져왔다는 생각이다.

2022년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념지형을 분석해 보니, 6개의 이념그룹으로 나뉘어져 있었다(아래 그래프 참고).

'보수냐, 진보냐' 유권자는 단순하게 나뉘어져 있지 않다
 
 '새로고침위원회 미래비전 리포트 : 이기는 민주당은 어떻게 가능한가' 중 '가치 지향에 따른 6개 유권자 그룹 구분 및 비중(3000명 중)' 자료.
ⓒ 더불어민주당 새로고침위원회
 
놀랍게도 전통적 진보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평등/평화그룹(평등주의적이며 남북평화를 지향하는 전통적 진보 그룹)이 전체의 40% 가까이를 차지하며 압도적 다수이고, 어쩌면 이들보다 더 강력한 개혁우선그룹(검찰개혁과 반일성향이 강한 그룹)이 6.3%가 있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전통적 보수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능력주의 그룹은 전체의 21.5%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압도적인 보수 우위 사회라는 많은 전문가들의 주장은 착각이었다.

나머지 세 그룹은 약 20%의 친환경신성장그룹(친기업·친복지·친환경 성향의 중도파), 10% 가까운 포퓰리즘그룹(이른바 '이대남' 성향), 그리고 6.4%의 민생우선그룹(자영업자 성향)이었다. 전통적 보수-진보로 분류하기 어렵고, 그렇지만 뚜렷한 이념지향이 있는 그룹이 35%쯤 됐던 것이다. 

이는 2022년 여름 내가 민주당 새로고침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진행했던 분석이다. 대선 패배 직후였음에도 민주당의 잠재적 지지층은 너무나 탄탄하고, 국민의힘의 베이스는 이미 무너져 있었다.

그 조사는 특별했다. 흔히 진행되는 유권자 정책이념조사는 유권자에게 직접 정치적 정체성이나 정당일체감을 묻는다. '당신은 보수입니까 진보입니까?' '당신은 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 중 어느 정당을 지지합니까?'류의 설문이다. 

이런 설문은 문제가 크다. 보통 사람들은 평소 생활하면서 보수인지 진보인지 어느 정당 지지자인지 스스로 확정하며 지내지 않는다. 평소에 형성돼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이념, 즉 정책선호다. 이런 선호는 선거 시기가 돼서야 '보수 vs. 진보' '민주당 vs. 국민의힘' 형태로 전환되며 이게 각 세력의 지지율로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서 평상시의 정책선호를 중심으로 한 군집분석을 진행했다. 30여 개 정책에 대한 선호도를 물은 뒤 그 답변에 따라 사람들을 유의미한 군집으로 나누는 방식이다. 그렇게 나온 6개 군집이 바로 평상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정책이념그룹이다.

이들이 선거 때 지지할 정당은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지지 여부는 선거 시점의 사회상황과 각 정당이 펼치는 전략에 달려 있다. 

2022년 윤석열 케이스
 
 2022년 3월 8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피날레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예컨대 지난 대선을 보자. 국민의힘은 윤석열이라는 아주 새로운 인물을 대선후보로 급히 수입했고, 극히 불리한 유권자 지형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다. 다양한 그룹을 얼기설기 묶어 거둔 성공이었다.

후보 시절 윤석열 대통령의 이념 정체성은 명확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기존 보수 지지층인 자유능력주의 그룹을 중심으로 해서, 이준석 대표가 포퓰리즘 그룹을, 친기업적 정치색을 중심으로 한 당내 보수세력이 친환경 신성장 그룹을 얼기설기 연합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일부 평등평화그룹도 가세했다. 반문재인 정서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유권자그룹을 결합시키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다만 이는 아주 취약한 연합이다. 특히 집권 이후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집권당은 정책을 실제로 집행해야 하는데, 지지표를 던졌던 유권자들이 너무 이질적인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어떤 정책을 펼치더라도 반대그룹이 생기고 지지를 철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초기부터 큰 착각을 했던 것 같다. 본인의 지지층이 매우 탄탄한 것처럼 행동했다. 구걸을 해서라도 협치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범죄자를 상대하지 않겠다면서 야당 대표를 만나주지도 않았다. 국회와 손을 잡고 뭐라도 일을 해내며 유능함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보낸 법안을 연달아 거부했고, 청문회 결과를 무시하며 인사를 강행했다. 한 가지 결정을 할 때마다 특정 유권자 그룹이 깎여 나갔을 것이다. 불과 취임 1년 만에 지지층이 완전히 균열된 상태였다.

2024년 국민의힘 케이스 : 윤석열의 착각 - 국힘이 놓친 그룹
 
▲ 한동훈 "총선 참패 책임지고 비대위원장직 사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제22대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직에서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런 상황에서 총선이 다가왔다. 민주당은 유권자 지형상 훨씬 유리한 상황에 있기도 했지만, 또 그런 지형에 어느 정도 맞는 전략을 펼치기도 했다. 평등평화그룹 지지층에 소구하는 전략을 이어갔던 것이다. 노란봉투법 등 진보적인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뒤 대통령에게 보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준 게 오히려 민주당에게 정무적으로는 도움이 됐을 것이다. 평등평화그룹의 신뢰가 커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조는 총선 시기를 맞으면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정치적으로는 윤석열 정부를 맹렬하게 비판했고, 정책적으로는 진보적 스탠스를 이어갔던 것이다.

국민의힘도 지지층을 결집하는 전략을 주로 썼다. 이를 두고 양당의 혐오 경쟁이라고 분석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민주당의 결집전략은 영리했지만 국민의힘의 결집전략은 어리석었다. 유권자 지형이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운동권 청산을 외쳤고 야권을 범죄자 집단이라고 비난했지만, 그 구호에 공감할 유권자 그룹은 20%의 전통 보수중 일부밖에 없었을 것이다. 원전을 내세우고 감세를 내세웠는데, 이런 주제에 공감할 그룹도 소수에 불과하다.

국민의힘이 소구했어야 하는 중요한 그룹은 친환경 신성장 그룹이다. 이 그룹은 그런데 어쩌면 사과값·대파값 사건이 상징하는 경제적 무능을 가장 심각하게 비판했을 그룹이다. 이들에게 소구하려면 경제적으로 유능함을 보이고, 기후위기와 맞서 싸우겠다는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말하자면 윤석열 정부와 차별화된 경제 비전을 내놓고, RE100 같은 친성장 기후위기 대응 의제를 내놨어야 했다. 하지만 한동훈 위원장은 이념공세만 이어갔다. 20%의 친환경 신성장 그룹 중 상당수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투표했던 사람들일 텐데, 이들 중 상당수가 이번에는 이 정부를 심판하러 투표장에 갔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이준석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했다. 그러면서 포퓰리즘 그룹 상당수도 국민의힘을 떠났을 것이다. 자유능력주의 그룹 일부도 흔들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이들을 붙잡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 그룹은 작기도 하지만 정치적 응집력이 약하다. 개혁신당이 더 확장하려면 친환경 신성장 그룹에게 소구하거나, 전통 보수집단인 자유 능력주의 그룹을 파고들었어야 한다. 그러기에는 시간과 능력이 모자랐던 것 같다.

조국혁신당과 녹색정의당 케이스
 
▲ 예상 득표율 예상 의석수 붙이는 조국혁신당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 마련된 조국혁신당 개표상황실에서 당 관계자가 22대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 상황판에 예상 득표율과 예상 의석수를 붙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조국혁신당은 이런 유권자지형을 정말 잘 활용했다. 6%의 개혁우선그룹은 작아 보이지만, 매우 큰 정치적 응집력을 보이는 그룹이다. 4년 전에는 열린민주당을 원내에 진출시키기도 했다. '3년은 너무 길다'는 검찰개혁을 지상과제로 여기는 이 유권자 그룹의 귀에 정확하게 꽂히는 구호다. 신경쓸 곳이 많은 민주당은 감히 외치지 못하는 구호이기도 하다. 

조국혁신당이 등장하는 즉시 일정한 수준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개혁우선그룹의 열렬한 지지에 평등평화그룹 일부가 가세하면서 시작됐을 것이다. 일단 지지세가 확장되기 시작하자, 윤 대통령을 지지했던 친환경 신성장 그룹의 일부도 '무능한 정권 심판'에 동의하며 가세했을 수 있다. 

안타까운 쪽은 녹색정의당이다. 2022년에 이미, 녹색정의당의 베이스는 무너져 있었다고 봐야 한다. 전통적 진보정당 지지 유권자그룹의 이념성향과 민주당 베이스의 이념성향 사이에 구분이 사실상 무너졌다. 분명 차이가 있겠지만,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군집을 형성할 정도는 되지 못한다. 정의당이나 녹색당의 잘못이 전혀 아니다. 유권자 지형이 그렇다는 것이다. 전혀 다른 상상을 했어야 이런 어려운 상황을 뛰어넘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비례대표 정당투표 결과는 상징적이다. 더불어민주연합과 조국혁신당의 득표율 합계가 50%가 넘었다. 한국사회 다수 연합을 이뤄냈다. 평등평화그룹과 개혁우선그룹의 결집력에, 친환경 신성장 그룹까지 가세해야 가능한 수치다. 

'유권자 취향'이 먼저 존재... 정당 지지 여부는 그다음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2동 사전투표소에서 선거사무원이 기표소 앞에서 기표용구를 들어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여러 분석가들이 이번 총선을 다들 혐오선거라고 했다. 유권자들이 증오투표를 한다는 분석도 넘쳐났다. '정부지지=보수=국민의힘 지지 vs. 정부견제=진보=민주당지지'라는 단선적 프레임이 관철됐다고 전제하며 이야기했다. 정책은 사라지고 심판만 남았다는 칼럼도 여럿 봤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유권자들은 이미 유럽식 다당제가 걸맞을 정도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이념 군집을 이루고 있다. 정당들이 제대로 소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 총선 결과 역시 우리나라 유권자들의 이념성향, 정책선호지형이 정당들의 전략과 맞물리며 관철된 것이다. 군집분석 결과 알게 된 사실이다.

나는 군집분석을 과거 대학원 시절 마케팅 이론의 대가인 존 리틀(John Little) 교수님으로부터 배웠다. 교수님은 경영 전략 수립에 사용하라고 가르쳐주신 것이지만, 사람들의 정치적 이념 지형을 읽는 데도 꽤 유용하다. 

사람들의 이념그룹이 먼저 존재하고, 특정 후보나 정당 지지 여부는 그 다음에 결정된다. 사람들의 취향이 먼저 존재하고, 특정 브랜드 선호는 그 다음에 결정된다는 마케팅 이론과 같은 원리다. 다만 사람들은 이런 이념과 취향을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조사와 분석을 통해 한땀 한땀 읽어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유권자들은 철지난 정책패러다임을 이번 선거과정에서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키면서 자신들의 이념을 관철시켰다. 윤 대통령이 민생토론회를 잇따라 열면서 던졌던 지역개발공약은 선거를 통해 무력화됐다. 한동훈 위원장이 던진 김포시 서울 편입이나 국회 세종 이전처럼 준비되지 않은 정책공약 역시 표로 무력화됐다. 도로나 철도를 지하에 넣는 등 토목건설공약 역시 무력화됐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는 정책선거였다.

다수 유권자들은 양당의 대립구도나 막말전쟁 안에 갇혀 있지 않다. 그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가치와 정책을 투표를 통해 관철하려 한다. 그 결과가 이번 선거다.

그런 유권자들의 뜻을 22대 국회는 법안과 예산으로 구체화할 수 있을까? 다시 비전과 정책으로 실력을 입증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원재씨는 경제평론가·성공회대 연구교수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