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세월호',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우리에 알려준 것

강찬호 2024. 4. 1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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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이 모두 노출된 피해자 가족입니다... 본질적 질문 던지는 <재난에 맞서는 과학>

[강찬호 기자]

 저자 박진영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통해 과학과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 민음사
 
<재난에 맞서는 과학>(민음사, 2023)을 반갑게 읽었다. 저자 박진영은 자신을 환경사회학 연구자로 소개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지식 정치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책은 이 논문을 대중서로 다시 작업해서 출간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교훈을 되짚고, 본질적인 질문을 통해 다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문제(쟁점)를 거론하고 있다.

나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가족이다. 2010년과 2011년 사이 가습기살균제 사용에 노출되어 피해를 입었다. 가족 모두가 노출 피해자이고, 노출 정도와 개인의 민감성에 따라 인체 건강피해를 입었다. 그 정도에 따라 우리 가족 셋은 각자 다른 피해 판정을 받았다. 우선 딸이 즉각 피해 판정을 받은 경우였다.

나와 아내는 이 문제가 공론화되고 피해 판정 절차가 한창 진행된 이후, 나중에 피해 접수를 하고 추가 판정을 받았다. 현재 내 가족은 일상을 지내는 데 별 무리는 없다. 다만 가습기살균제 피해 유형이 워낙 다양하고, 인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므로 '별일 없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안전하다'고 믿고 사는 감각이 뒤흔들릴 때  

2011년 당시 나는 딸을 치료하는 데 최우선을 두었다. 급한 불을 끄는 것이 우선이었어서다. 부모는 당장 눈에 띄는 건강 피해 영향은 없었다. 동시에 가족이 집안에서 사용한 가습기살균제였으므로 가족 모두가 노출되었던 상황이라, 정확히 규명되진 않았어도 알 수 없는 피해가 몸 안에서 일어났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이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평소 우리는 무수한 위험인자에 노출되어 살고 있다. 다만 그것이 건강 피해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회적 기준선(안전기준치, 가이드라인)을 갖고, 그 기준치 이내는 안전하다는 그것(과학)을 믿고 살아가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노출도 시작부터 이러한 문제와 접근법을 안고 출발했다. 물론 가습기살균제는 이런 기준치가 없었기에 문제가 된 것이고, 그 이후 줄곧 문제가 되었다.

나는 2011년 8월 31일 이 문제가 우리 사회에 알려져 충격을 준 이후 그해 9월부터 피해 모임(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이하 가피모) 대표를 맡아 2017년까지 활동했다. 그 당시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피해구제 등 대책활동을 했다. 그 기간 동안 여러 사건들이 진행되었고, 시간이 그만큼 흘렀고, 여러 경험들이 쌓였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2018년부터 약 3년 반 정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에서 근무하면서,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된 일을 했다.

2011년부터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된 활동을 해 오면서 늘 풀리지 않는 숙제와 같은 문제가 있었다. 즉, 한 번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인과관계' 싸움이었다. 피해자들은 확실성과 불확실성의 기준, 즉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현실' 앞에서 매번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다.

누구는 피해 구제 대상 피해자가 되어 뒤늦게라도 정부 피해구제와 기업의 개별 배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불확실성과 같은 과학적 입증(검증)이 모호한 경우에 해당되는 피해자들은 피해 구제에서 배제되어 지난하고 힘겨운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입증' 어려운 문제임에도... 현재 진행형인 싸움
 
▲ 더 안전한 사회를 위한 이야기 환경운동연합은 4월 6일(토) <재난에 맞서는 과학>의 저자 박진영(정면 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을 초대하여 북토크를 진행했다. 이날 가습기살균제피해자들도 함께했다.
ⓒ 강찬호
 
이러한 싸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다시 말하면 가습기살균제 참사 싸움(투쟁)은 불확실성을 이유로 배제하고 유보하고 지연시켜 온 과학의 힘과, 지금껏 그 힘으로 지탱해 온 현실의 시스템(체제, 세계관)에 맞선 투쟁의 시간이었다. 이 투쟁에서 피해자와 활동가, 전문가들이 협력해 대항했다. 그 과정에는 많은 사건과 쟁점들이 있었다.

저자 박진영은 가습기살균제 참사로 박사 논문을 썼고, 그 외 환경재난을 연구해 온 연구자이다. 환경재난(참사)을 둘러싼 위험과 피해, 과학과 정치를 연구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지난 역사를 다시 쫓고 누구나 읽기 쉽게 이 책, <재난에 맞서는 과학>을 저술했다.

지난 시간의 상당 부분을 직접 경험했고 여러 현장에 함께 했던 나였지만, 숨 가쁘게 지나온 시간을 다시 정리해서 설명하는 일은 사실 그렇게 쉽지 않았다. 다행히 이 책이 나와서 나는 다시 지난 시간을 소환할 수 있고, 이 사건의 쟁점과 성과가 무엇인지 알릴 수 있는 교재(교과서, 무기)를 들 수 있다는 안도감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은 첫 소감은 '저자에게 고맙다'였다.

두 번째 감회는 저자가 이 참사를 겪으면서 반드시 우리 사회가 한 번은 정면으로, 그리고 제대로 마주 봐야 할 문제, 즉 과학과 정치, 과학과 피해(자) 문제를 들여다보고 정리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연구자(학자)로서 봉착하는 딜레마와 사회적 무관심을 마주하며 겪어야 할 여러 고뇌도 느껴졌다. 그 마음이 짠했고 고마웠다.

세월호 10주기, 거리에 선 피해자들은 여전히 외친다

나 역시도 피해자와 가족의 당사자로 살아오면서, 그리고 사참위 활동을 통해 가습기살균제참사의 핵심 쟁점은 결국 박진영 저자가 던진 화두라고 생각하고 있다.

저자는 전문성을 추구하는 과학계(의학계)에 맞서 일반 시민과 피해자들의 입장에 서서 과학과 피해(자) 사이의 간격을 줄여보고자 애써온 시민과학계, 환경(보건)운동 진영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 성과를 공유하고자 애쓰고 있다.
 
▲ "22대 국회는 생명안전 국회가 돼야" 4.16연대,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가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연 "22대 국회는 생명안전 국회가 되어야 합니다!" 22대 총선 약속운동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저자는 멋지게도 '정치'의 역할과 가능성, 중요성을 타진하고 있다. '안방의 세월호'로 불리기도 한 가습기살균제참사를 연구함으로써 참사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조명하고, 이를 축적해 한국 사회가 더 똑똑해지고, 그 결과로써 더욱 안전한 사회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올해 4월 16일 세월호참사가 10주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사이 이태원참사가 발생했고,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제대로 된 '이태원참사특별법'이 만들어져서 시행되기를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다. 가습기살균제참사 피해자들 역시 아직도 싸우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들 모두는 대한민국이 더욱 안전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가 안전한 사회를 위해 더욱 분발하고 싸워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 결과가 지난 4월 10일 제22대 총선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야권에 힘을 몰아줌으로써 안전불감증에 걸린 현 정권을 심판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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