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게 이슈]
[손우정 기자]
▲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지난 6일 부산 북구 화명역 앞에서 박성훈 후보, 서병수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총선을 4일 앞둔 지난 6일,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호소다. 결과적으로 그의 말은 맞았다. 여론조사 추이와 소위 '전문가'들의 예측은 출구조사 결과만큼은 아니지만, 미묘하게 빗나갔다. 당초 예측보다 큰 야권의 압승이다. 야권 200석 이상을 점치던 출구조사만 아니었다면, 이번 총선 결과는 더 극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여당으로서는 2020년 21대 총선에서 총 103석을 얻었던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비해 무려 5석이나 늘어, 최악의 총선은 아니었다고 위안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21대 총선 당시는 코로나 팬데믹이 막 시작될 무렵 K-방역의 우수성이 국제적으로 칭송될 때이고, 집권 3년 차 막바지에 이르던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 시점 이후로는 한 번도 도달해 본 적 없는 46%에 달하던 때다.*
당시엔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도 44%에 이르렀고, 미래통합당은 23%로 20대 초반의 박스권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충격에서 여전히 회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당시 무소속으로 당선된 5명은 홍준표, 권성동, 김태호, 윤상현, 이용호 의원으로, 지금은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다. 역시 국민의힘에 합류한 국민의당 3석을 합치면, 의석은 111석에 이른다.
결국 여당으로서는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겨우 살려낸 상승 분위기와 지지세를 제대로 까먹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수준의 성적표를 받아 든, 집권 여당으로선 최악의 성적표임을 부인할 수 없다.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이해찬, 김부겸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더불어민주연합 합동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 겸 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하고 있다. |
ⓒ 유성호 |
무엇보다 이번 총선 결과는 '심판 선거'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야권은 당연히 애초부터 윤석열 정부 2년의 실정을 심판하는 선거로 만들려고 했지만, 이 프레임을 더욱 강화한 것은 정국 주도권을 여당에 넘기지 않으려는 윤석열 대통령의 고집과 독선, 그리고 스스로 '심판 프레임'을 강화한 여당의 전략적 오류다.
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정권 심판 프레임에서 비켜서려는 여당의 시도를 번번이 좌절시켰고,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은 '운동권 심판', '이·조 심판' 등 정권 심판에 맞불을 놓으려 했다. 그러나 정권 심판과 난데없는 운동권, 야당 대표 심판이 대칭적일 수는 없다. 여당의 이 전략은 외려 최고 권력에 대한 심판 프레임만 강화했을 뿐이다.
▲ 22대 총선에서 12명의 당선자를 배출한 조국혁신당 파란불꽃선대위 해단식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조국혁신당 사무실에서 열린 가운데 당선자들이 꽃다발을 목에 걸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장식, 정춘생, 김선민, 조국, 김준형, 이해민, 김재원, 강경숙. (선관위 당선증 수령 등으로 일부 불참) |
ⓒ 권우성 |
또한 조국혁신당의 돌풍은 야권에 '급진세력의 측면 효과'를 만들어 냈다. 180석의 민주당이 무능할 정도로 정권과 제대로 싸우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담아낼 그릇을 제공하면서도 단 한 명도 지역구로 출마하지 않은 영리한 판단은, 조국혁신당이 과도하다고 느끼는 이들에게는 민주당의 선택지를, 민주당이 답답하고 무능하다고 느끼는 이들에게는 조국혁신당의 선택지를 제공했다. 비판은 분산하고 야권은 묶는, 오묘한 협력 구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셋째는 일대일 구도의 성립이다. 형식적으로는 야당의 압승이지만, 실제 내용을 들춰보면 아슬아슬한 승리가 차곡차곡 쌓인 압승이었다. 동서로 갈라진 전통적 강세 지역을 제외하면, 수 차례의 여론조사로도 쉽게 결과를 가늠할 수 없는 초접전 지역이 적지 않았다. 만일 야권이 분산되었다면 총선 성적표는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뼈아픈 대목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독자적 세력 확보에 실패한 진보정치의 현실이 자리한다. 진보정당 중 원내 가장 많은 의석수를 보유했던 정의당은 총선을 앞두고 중심 세력들이 새로운 미래, 개혁신당, 새진보연합, 민주당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비례연합당 참여를 거부하며 녹색당과의 선거연합을 통해 녹색정의당을 출범했지만, 의미 있는 영향력을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김준우 녹색정의당 상임선대위원장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 선대위 관계자들과 함께 인사하고 있다. |
ⓒ 남소연 |
불안한 압승, 이제 정권과 야권 모두 시험대
야권의 대승은 이렇듯 여러 요인이 결합한 결과지만, 그 내막을 보면 안정적 대승이라기보다 여전히 불안한, 아슬아슬한 대승이었다. 격전지로 꼽혔던 동작과 분당을 비롯해 수도권과 영남에서는 21대 총선보다 성적이 좋지 않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26일 충북 청주시 청원구 동부창고에서 '첨단바이오의 중심에 서다, 충북'을 주제로 열린 스물네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그러나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은 흔들림이 없더라도, 그의 지지기반은 이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유력 보수언론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여러 차례 보냈다. 이번 총선에서 윤 대통령이 여당 승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의지가 없음을 명확하게 드러낸 상황에서, 총선평가를 둘러싸고 친윤과 반윤계의 갈등도 예고되어 있다. 정부와 여당이 위기에 빠질수록, 심판의 대상도 이동할 수 있다.
게다가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을 증명하듯, 이낙연 새로운미래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내 강성 반명계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헤매다 길을 잃고 말았다. 배려 아닌 배려를 받은 세종갑 김종민 의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쓰디쓴 독배를 마셨다. 180석으로도 정권을 빼앗기고 개혁을 지체한 거대 야당의 무력함은 이제 핑계 댈 구석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불안한 압승'이라는 어쩌면 형용 모순적인 결과는 이제 국민의 심판대에 윤석열 정부만이 아니라 거대 야당까지도 오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안한 압승은 언제든 힘의 균형을 변화시켜 향후 정국을 요동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야권으로서는 이번 총선의 압승에 환호할 일이 아니라 그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모두가 시험대다.
덧붙이는 글 | *2020년 4월 7~8일 실시, 한국갤럽 자체 조사, 95% 신뢰수준에 ±3.1%P, 전화조사원 인터뷰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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