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포위' 미·일·필리핀 손잡다…"남중국해-동중국해 공세 반대"
미국ㆍ일본ㆍ필리핀이 11일(현지시간) 최초의 3국 정상회의에서 중국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벌이는 공세적 행동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3국 해상훈련 강화로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미국이 각각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필리핀, 일본과 손잡고 또 하나의 대(對)중국 공동 전선 구축에 나선 모양새다.
이로써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구축한 한ㆍ미ㆍ일 3국 안보 협력에 더해 기존의 오커스(AUKUS, 미ㆍ영ㆍ호주 3국 간 안보 동맹), 쿼드(Quad, 미ㆍ일ㆍ인도ㆍ호주 간 안보 협의체)에 이어 미ㆍ일ㆍ필 3국 안보 협력 틀까지 전선이 촘촘하게 구축된 모양새다. 전통적인 대륙 세력 대 해양 세력 간 대결 구도에서 봐도 소(小)다자 협의체를 통한 ‘대(對)중국 격자형’(lattice-like) 포위망’을 완성한다는 미국의 구상이 현실화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이날 오후 워싱턴 백악관에서 3국 정상회의를 마친 뒤 발표한 공동 선언문을 통해 “우리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위험하고 공격적인 행동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중국의 불법적 해양 영유권 주장에 대해서도 우려한다”고 밝혔다.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 세컨드 토머스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 필리핀명 아융인) 인근에서는 지난 3월 필리핀 선박을 향해 중국 해안경비선이 물대포를 쏘는 등 위협적 태도를 보여 왔다.
선언문은 동중국해 상황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중국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한 일본의 평화적 관리를 훼손하려는 행동을 포함해 동중국해에서 무력이나 강압을 통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대해 강력한 반대를 표명한다”고 했다. 단순히 상황에 대한 우려가 아니라 위험을 유발하는 행위의 주어를 중국으로 명확히 규정,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이에 따라 3국 해안 경비대는 내년에 상호운용성 향상 및 해양 안보 증진을 위해 함께 해상 훈련을 실시하고, 해양 협력 강화를 위한 3국 해양 대화체도 창설하기로 했다. 선언문은 “미국은 올해 인도-태평양 합동 순찰 도중 필리핀과 일본 해안경비대원들이 미국 해안경비대 함정에 탑승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미 인도태평양 전략 핵심파트너 된 일본”
3국이 각기 경계 활동을 벌이는 데서 더 나아가 미국 함정에서 함께 해안 경비 활동에 나서는 건 해양에서의 대중 견제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군이 아닌 국토안보부 소속 해안 경비대를 투입하는 것으로 수위 조절도 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군 관련 한 소식통은 통화에서 “남중국해의 연안 경계 활동 등은 중국 견제라는 목적이 명확한 행위”라면서 “이를 미국의 동맹국인 필리핀, 일본이 공동으로 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북한학ㆍ국제) 는 “남중국해 문제에 있어 일본이 미국, 필리핀과 함께 군사 작전에 준하는 형태로 본격적으로 기여를 한다는 의미는 작지 않다”면서 “큰 틀에서 일본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핵심 파트너로 삼고 주변 동맹국을 포진시키는 동맹 구조의 변화를 미국이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3국 정상은 또 “경제 강압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긴밀한 공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압의 ‘주체’를 적시하진 않았지만, 이 역시 중국을 겨냥한 대목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3국은 인프라 투자와 관련해 “필리핀 수빅만, 클라크, 마닐라, 바탕가스를 잇는 ‘글로벌 인프라 파트너십(PGI) 루손 회랑’을 출범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일대일로’ 대응책 중 하나라는 분석이 나온다. 3국은 루손 회랑을 통해 철도, 항만, 청정 에너지, 반도체 공급망 등 인프라 프로젝트 공동 투자를 가속화하기로 했다.
3국은 핵심 신흥기술 개발에서도 공조하기로 했다. 미국과 일본은 필리핀의 안전하고 신뢰 가능한 정보통신기술 생태계를 위해 마닐라에 기반을 둔 개방형 무선 액세스 네트워크(RAN) 현장 시험 등에 최소 800만 달러를 제공할 계획이다.
중국 정부는 미국·일본·필리핀이 양자 및 삼자 정상회담을 통해 자국을 견제하고 나선 데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류진쑹(劉勁松) 아주사 사장(司長·국장)은 12일 주중 일본대사관의 요코치 아키라 수석공사를 초치했다. 류 아주사장은 "일본이 워싱턴에서 미·일 정상회담과 미·일·필리핀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에 부정적인 움직임(동향)을 보인 데 대해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엄정한 교섭 제기는 중국이 외교 경로를 통해 강한 항의의 뜻을 전달했음을 의미한다.
‘북 탄도미사일 러 이전 자제하라’ 촉구
3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공약’도 재확인했다. 3국 정상은 공동 선언문에서 “북한의 점증하는 위협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포함한 전례 없는 탄도미사일 발사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납치 문제를 포함한 인권 및 인도주의적 우려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북한을 향해 “러시아를 포함한 모든 국가에 탄도미사일 이전을 자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3국 정상은 각각 모두 발언을 통해 새로운 소다자 협의체 출범을 알리며 이번 회의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파트너십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며 “일본과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방위 공약은 철통 같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의 공격적 행위를 염두에 둔 듯 “남중국해에서 필리핀에 대한 어떠한 공격에도 양국 간 상호방위조약을 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이 회의는 우리의 유대와 공조를 강화하면서 미래를 내다보는 회의”라며 “이번 회의는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고 했다. 기시다 총리는 “국제사회의 복합적 위기 속에 자유롭고 개방적인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동맹국과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들 간의 다층적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워싱턴=김형구ㆍ강태화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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