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경와인셀라]'좁은 문' 연 바보…한국인 최애 포도주 됐다

구은모 2024. 4. 1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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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칠레 '비냐 몬테스(Vina Montes)'
1987년 콜차구아 밸리서 설립
칠레 최초 경사지 재배…프리미엄 와인 개척
드라이 파밍…품질·친환경 두 마리 토끼 잡아

편집자주 - 하늘 아래 같은 와인은 없습니다. 매년 같은 땅에서 자란 포도를 이용해 같은 방식으로 양조하고 숙성하더라도 매번 다른 결과물과 마주하게 됩니다. 와인은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우연의 술'입니다. 단 한 번의 강렬한 기억만 남긴 채 말없이 사라지는 와인은 하나같이 흥미로운 사연을 품고 있습니다. '아경와인셀라'는 저마다 다른 사정에 따라 빚어지고 익어가는 와인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 들려 드립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태복음 7장 13~14절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지드(Andre Gide)가 쓴 소설 「좁은 문(La Porte etroite)」의 모티프가 된 성경 구절이다. 소설은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도덕적 제약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비판하는 내용이지만 현실에서 우리 주변을 둘러싼 좁은 문은 실제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되기도 한다. 칠레 와인업계에도 크고 넓은 문을 마다하고 기어이 좁은 문을 찾아 열고 들어가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 와이너리 '비냐 몬테스(Vina Montes)'가 있다. 비냐 몬테스가 다양한 도전을 이어가며 남들은 가지 않는 협착한 길을 걸은 덕에 칠레는 와인 산업의 변방에서 모두가 주목할 만한 산지로 거듭났다.

경사지에 조성된 '비냐 몬테스'의 포도밭 전경.

어려운 길 택한 바보(Folly)…칠레 대표 생산자로 '우뚝'

비냐 몬테스는 1987년 와인메이커 아우렐리오 몬테스(Aurelio Montes)가 세일즈&마케팅 전문가 더글라스 머레이(Douglas Murray), 재무 전문가 알프레도 비다우레(Alfredo Vidaurre), 포도밭 경작 전문가 페드로 그란드(Pedro Grand)와 손잡고 칠레의 핵심 와인산지인 콜차구아 밸리(Colchagua Valley) 아팔타(Apalta)에서 시작한 와이너리다.

설립 당시 몬테스의 목표는 명확했다. 칠레산 프리미엄 와인을 생산하는 것. 언뜻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목표이지만 당시 칠레의 대다수 와이너리는 내수용 저가 와인만 관행적으로 생산해낼 뿐 고급 와인에는 관심이 없었다. 말 그대로 그저 그런 와인을 생산하는 와인 업계 2부 리거였던 셈이다. 하지만 몬테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에게 남북으로 4000km가 넘는 국토를 지닌 칠레는 길쭉한 땅만큼이나 다양한 떼루아(Terroir·포도밭을 둘러싼 자연환경의 총체)를 보유한 잠재력 넘치는 산지였고, 여기에 선진 양조 기술이 더해진다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양질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비냐 몬테스'의 창립자 '아우렐리오 몬테스(Aurelio Montes)' 회장.

‘품질 혁명’을 기치로 내걸고 야심차게 출발한 몬테스는 언덕에 포도밭을 일구는 일부터 시작했다. 오늘날 볕이 잘 드는 경사면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가 양질의 와인을 만든다는 사실은 업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내수용 저가 와인만 생산하던 당시 칠레 와인업계에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는 경사지의 산악 포도밭 개간은 굳이 들어가려고 노력할 이유가 없는 좁은 문이었다. 하지만 몬테스는 산 중턱을 깎아 포도나무 심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칠레에서 처음으로 45도 경사면에 '시라(Syrah)' 품종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제 발로 걸어간 몬테스를 업계는 어리석다고 조롱했지만 ‘프리미엄 칠레 와인’이란 뚜렷한 목표 앞에서 사람들의 조롱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배수 좋은 토양에서 충분히 볕을 받고 자라 잘 익은 포도는 ‘어리석음’을 뜻하는 '폴리(Folly)'라는 이름의 와이너리 대표 와인으로 거듭났다.

몬테스 회장이 유난히 아낀다는 '몬테스 폴리(Montes Folly)'는 와이너리 최상급 라인업인 ‘아이콘’ 시리즈의 제품으로,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 ‘칠레 컬트 시라’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는 자부심이 짙게 배인 와인이다. 완숙된 검은 과일 향과 벨벳처럼 부드러운 질감의 타닌을 토대로 긴 여운을 선사하는 몬테스 폴리는 와이너리 최상급 제품 중 하나인 만큼 20년 이상 장기 숙성력도 겸비했다.

비냐 몬테스의 '몬테스 폴리(Montes Folly)'

비냐 몬테스는 2009년부터 '드라이 파밍(Dry Farming)'이라는 도전도 이어가고 있다. 드라이 파밍은 포도 재배의 모든 과정을 자연에 맡긴 뒤 가뭄 등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최소한의 관개를 허용하는 농법이다. 드라이 파밍은 와인의 품질과 수자원 절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시작됐다. 물 사용을 최소화해 포도나무에 스트레스를 주는 작업인 만큼 과실의 생산량은 줄어든다. 하지만 제한된 수분을 최선을 다해 흡수한 개별 열매의 농축도는 그만큼 높아졌고, 타닌도 부드러워져 와인의 품질 향상에 확실한 기여를 했다. 물 사용량도 드라이 파밍 도입 이전과 비교해 매년 평균 65%, 최대 80%까지 줄였는데, 이는 칠레 인구 2만명이 1년간 소비하는 양(약 84만t)과 비슷한 수치다.

국내 누적 판매 1500만병…파타고니아서 새로운 도전

비냐 몬테스의 와인은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와인이다. 지난해 상반기 국내에서 단일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누적 판매량이 1500만병을 돌파했다니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마셔본 와인일 테다. 몬테스의 와인이 국내에 처음 들어온 게 1998년 1월이라고 하니 수입의 역사도 꽤나 길다. 몬테스의 와인은 1997년 9월 칠레 와이너리 단체인 '프로 칠레(Pro Chile)'가 10여개의 와이너리를 이끌고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국내에 처음 소개됐는데, 당시 마시기 쉬운 신대륙 와인을 찾던 나라셀라의 눈에 들어 공식 수입되기 시작했다. 이후 2002년 피파 월드컵 조 추첨을 위한 갈라 디너 메인 와인으로 선정되며 인지도를 쌓기 시작했고, 2003년 칠레 대통령 방한 공식 만찬에 사용되는 등 국빈 행사에 사용되며 인기를 얻기 시작해 지금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비냐 몬테스의 '몬테스 알파 카베르네 소비뇽(Montes Alpha Cabernet Sauvignon)'

몬테스의 다양한 라인업 중에서도 한국인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와인은 단연 '몬테스 알파 카베르네 소비뇽(Montes Alpha Cabernet Sauvignon)'이다. '알파' 라인업의 인기가 워낙 대단하다 보니 '몬테스 알파'를 와이너리 이름으로 알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을 정도다. 실제로 몬테스 알파 카베르네 소비뇽은 1987년 와이너리의 시작부터 함께한 몬테스의 역사를 대변하는 와인이기도 하다. 카베르네 소비뇽 90%에 메를로 10%가 블렌딩된 이 와인은 다양한 베리류의 향에 시가 박스, 바닐라와 민트 향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우아한 면모를 보여준다. 적당한 무게감과 잘 짜인 구조감으로 어릴 때 마시기도 좋고 5년 정도 숙성했을 때 정점에 이른다.

비냐 몬테스는 자사 와인이 한국에서 높은 인기를 얻은 이유 중 하나로 비교적 쉬운 이름과 함께 '천사' 심볼을 꼽는다. 몬테스의 모든 와인 라벨에는 천사 이미지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공동 창업자인 더글라스 머레이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두 차례의 대형 교통사고를 겪고도 살아난 그는 자신을 지켜준 수호천사가 와이너리도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천사 이미지를 라벨에 담길 제안했다고 한다. 실제로 천사 이미지는 와인의 품질에 대한 신뢰 향상에 기여했고, '천사 와인'이란 기분 좋은 별명까지 얻게 됐으니 그의 바람은 이뤄진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비냐 몬테스의 숙성고 전경.

비냐 몬테스는 이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파타고니아 프로젝트(Patagonia Project)'라고 이름 붙인 몬테스의 새로운 실험은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남쪽으로 1200km 떨어진 파타고니아 지역 칠로에 군도에 포도밭을 일구는 작업이다. 칠로에 군도는 날씨가 춥고 습해 포도가 자라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으로 평가받아왔다. 하지만 몬테스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이곳의 기후가 이전보다 따뜻해지고 있다는 점에 집중했고, 현재 알바리뇨와 리슬링, 게뷔르츠트라미너, 피노 그리, 소비뇽 블랑 등 서늘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화이트 품종을 심어 다양한 연구와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와이너리가 미래를 내다보고 장기 프로젝트로 기획한 작업인 만큼 아직까지 이 지역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든 와인은 테스트 목적으로 소량 생산되고 있을 뿐 정식으로 대중에게 선보인 적이 없다. 하지만 칠레가 묵직한 레드 와인을 주로 생산하는 산지라는 점에서 칠레에선 비교적 흔하지 않게 서늘한 바람을 맞고 자란 화이트 와인과 스파클링 와인이 어떤 맛을 보여줄지 기다려보는 것도 와인 애호가 입장에선 흥미로운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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