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엄마 돼 깨달은 사랑... '엄마' 부르자 눈물이 났다
[정혜진 기자]
"민지야, 너는 왜 그림책을 읽어? 다른 친구들처럼 4학년 추천도서를 읽는 건 어때?"
몇년 전 만난 아이. 당시 독서 수준이 꽤나 높았던 이 친구가 유치원생이나 읽을법한 그림책을 읽는 것이 궁금했고, 20분이라는 짧은 시간을 때우기 위함이 아닌가 조금의 걱정도 되어 물은 적이 있다. 그 시절 나는 그림책을 유아용 도서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생님, 그림책이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그리고 저는 그림 그리기도 좋아해서 배울 것도 많아요. 선생님도 읽어보실래요?"
방긋 웃으며 아이가 내게 내민 책은 김장성, 오현경 글과 그림으로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한 명작 <민들레는 민들레>였다. 진한 하늘색 배경에 민들레가 그려진 커버. 책장을 넘기는 와중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소름이 돋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머릿속은 하얘졌고 수많은 감정이 교차되었다.
그날의 감동을 시작으로, 계속해 그림책을 읽고 공부하며 나는 거의 '그림책 전도사'가 되었다.
▲ 엄마는 좋다 채인선의 그림책 |
ⓒ 한울림 어린이 |
최근엔 채인선의 그림책 <엄마는 좋다(2020)>를 읽었다. <엄마는 좋다>는 엄마의 육아 일기를 꺼내어 읽으며, 어릴 적 자신에 대한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는 딸의 시선에서 쓰였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딸 예찬을 하던 엄마에게 보내는 딸의 답장인 셈이다.
그보다 14년 전 쓰인, 책 <딸은 좋다(2006)>의 엄마에게 보내는 딸의 답장이 이 책 <엄마는 좋다>다.
▲ 딸은 좋다 그림책 딸은 좋다 |
ⓒ 한울림어린이 |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집에 장정 같은 아들이 둘인데, 내가 잠시 집을 비운 이틀 동안 이 물건들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엄마가 싸주신 구호식품들을 지하 주차장에서부터 공용 수레에 가득 싣고 낑낑거리며 엘리베이터를 내린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들어서니 열 켤레쯤 되는 신발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널브러져 있었고 TV에서 나오는 소리가 요란했다. 인기척이 들리는데도 나와 보지도 않는 아들들.
문득 엄마가 그리워졌다. 가끔씩 엄마가 보고 싶은 날이 있지 않나. '엄마 보고 싶다'는 생각에 다른 아무런 계획 없이 옷가지와 책 두어 권을 챙겨 사천 집으로 향했다.
내가 사는 세종에서 사천까지는 거리가 먼 데다 비까지 내렸지만, 약간의 우울이 동반된 충동의 제어는 힘들다. 아들들에게 외가에 다녀오겠다는 문자만 남기곤 길을 나섰다.
"엄마-"
고향집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그제야 내 집에 온듯한 냄새와 기운이 느껴진다. 일을 마치시고 돌아온 엄마는 연락 없이 들이닥친 딸을 위해 이것저것 많이도 차리셨다.
"엄마, 나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엄마 딸로 평생 살면 좋겠다"
작업복을 갈아입을 새도 없으셨나 보다.
"딸 왔나?"
엄마 목소리가 밝다.
순식간에 차려져 나오는 강된장에 코다리 조림, 굴무침과 굴전. 엄마만큼 나를 알아주고 챙겨주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신발을 벗기가 무섭게 잘 차려진 한 상을 내어 주셨다. 나에게 수저를 챙겨주시고 굴전을 굽는 엄마.
"엄마, 난 그냥 다 아무것도 안 하고 엄마 딸로 평생 살면 좋겠다. 엄마랑 같이 살면서 맛난 거 먹고, 놀러 다니고 주말에는 같이 목욕도 가고."
이렇게 말하며 눈물이 올라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내가 우울하다는 증거다. 이유 없는 외로움과 그 허전함을 엄마에게 보상받고 싶어 한다는 것은. 내 우울함의 원인을 단정 짓지 못하듯, 종종 이렇게 엄마에게 집착하게 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엄마는 이런 내 기분을 알아채고 계셨을까?
"그럼 아들이랑 원서방은 어쩌고?"
"그냥 원씨들끼리 살라고 하고…"
▲ 이야기와 그림 |
ⓒ 한울림 어린이 |
엄마께 나는 '아픈 손가락'이다. 지나간 30대에 두 번의 암을 앓았고, 큰 병을 이겨내느라고 탈진한 내 몸과 마음은 우울이라는 병에 갇혀 괴로워했다. 모든 가족과 주변 감사한 지인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우울을 이겨내던 그 해 3차 신경통이라는 병이 찾아왔다.
삶이 이러하다 보니 나는 부모의 눈에는 얼마나 아픈 손가락일까 싶다. 건강하지 못해 가엾고, 갚지 못한 부채가 있어 한없이 미안한, 아픈 손가락.
아직도 기억한다. 아버지 입관 전 마지막으로 아버지 손을 잡고 엄마가 하시던 말씀을 말이다.
"진이 아버지, 우리 진이 아픈 거 다 가지고 가소. 우리 딸 좀 살리고 가소."
그래서 나는 살기로 했다. 병과 우울에 지쳐 뛰어내리고 싶은 모든 순간들을 잊고 엄마를 위해서 꼭 살기로 말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집. 문 앞 아이스박스를 보고 터져 나오는 내 짜증에, 눈치를 보던 아들이 이내 '미안하다'며 쭈뼛거린다. 씩씩거리며 집안 정리를 하는데, 옆에서 서성거리더니 이것저것 주워 나른다.
나는 내 아들들에게 어떤 엄마일까?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만큼 나중에 이 아이도 나를 사랑해 줄까? 아이에게 나는 '다녀온다'는 문자 하나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타나서 이유 모를 짜증을 부리는 엄마일 테다.
한편으론 나는 이기적인 엄마는 아니었나 싶다. 우리 엄마처럼 따뜻한 가슴을 내어 주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따뜻한 밥 한 끼도 정성스럽게 차려 주지 않은 것 같아서다. 손님처럼 키웠으니, 집주인 정도의 대접을 받는 데에도 서운해하지 말았어야 했다.
생각이 많아진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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