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인데 공허한 나… 인맥부자가 대수가 아니다

선릉숲정신건강의학과 한승민 대표원장 2024. 4. 12.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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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민의 인간관계 설명서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외로운 건 싫은데 혼자 있고 싶어'

2030세대에게 인기를 끌었던 책의 제목인데, 이 한 문장이 요즘 청년 세대의 인간관계 고민을 잘 요약해 놓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친구들과 모여서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주제가 있다. 바로 요즘 날 열받게 하는 직장 동료, 자기밖에 모르는 친구 녀석, 최근에 싸웠던 연인(혹은 배우자)의 이야기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주변 사람에 대한 뒷담화가 빠지면 이야깃거리가 절반으로 줄어들지도 모른다. 서울시가 2022년 발표한 ‘서울서베이 통계자료’에 따르면 2030세대의 거의 절반(46.6%)은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으며, 그 원인으로 ‘대인관계의 어려움(23%)’이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달고 산다. 인간관계 스트레스는 세대를 불문하겠지만, 그 양상은 시대에 따라 그리고 연령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특히 최근 2030 청년세대에는 외로움과 고립감, 인간관계의 어려움에 대한 주제가 계속해서 중요해지고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요즘 인간관계로 괴로움을 가진 청년들,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준비했다.

2030 세대 인간관계가 과거보다 힘겹고 괴로운 이유는 무엇일까?
돌이켜 보면 지금의 40~50대가 과거 20대였을 때는 맺을 수 있는 인간관계의 폭이 넓지 않았다. 기껏해야 동네 친구, 학교 친구, 사회에 나오면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의 2030세대는 그렇지 않다. 기존의 세대들이 맺었던 인간관계에 더해 온라인 동호회, 인터넷 카페, 혹은 SNS를 통해 지역과 연령을 뛰어넘어 굉장히 폭이 넓은 인간관계를 맺게 됐다. 또한 과거 인간관계라 함은 오프라인이 중심이었기에 약속을 잡고 만나야 대화를 나누고 생각의 교류가 가능했다면, 지금은 단톡이나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한 시도 놓지 않는 스마트폰을 매개로 언제나 손쉽게 교류할 수 있게 됐다. 이 때문에 가까워지는 속도도 빠르지만, 멀어지는 속도도 그만큼 빨라졌다. 사람은 관계를 맺을 때의 기쁨보다 관계가 끊어질 때의 고통을 훨씬 크게 느낀다. 때문에 대인관계의 변화 양상이 빨라짐으로 인해 괴로움을 느끼는 총량의 크기가 과거에 비해 커졌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인싸가 되었는데 어째서 나는 공허하기만 할까?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가 인간관계에 쏟을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데는 필연적으로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데 이게 무한정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인간관계의 폭이 상대적으로 좁았던 시절,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깊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사람을 두루 아는 것을 꽤나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변화 중이다. ‘인싸’라는 표현은 얼마나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 ‘양적인’ 조건으로 판단을 한다. 연예인뿐 아니라 일반인 사이에서도 ‘인맥 부자’라고 해서 많은 사람과 두루 친분을 맺는 인맥 자랑 콘텐츠는 언제나 인기가 있는데,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우리가 SNS 팔로워의 게시판에 ‘좋아요’를 누르고 답글을 달고, 잠깐 사이 가득 찬 카톡에 답을 하며 여러 온라인에서 교류한다면 인간관계의 넓이는 넓어지겠지만 각 개인과 맺는 관계의 깊이는 얕아질 수 밖에 없다. 깊은 인간관계는 서로의 시간을 충분히 공유한 사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관계를 깊게 맺고 지속하는 것이 어렵다는 호소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모래가 바위되는 데는 깊은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좋은 인간관계를 정의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이유는 개인마다 생각하는 ‘좋다’라는 개념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인간관계’라 함은, 함께 있을 때 서로 위안이 되고 든든하고 편안함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상대방이 아무리 훌륭하고 내게 큰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같이 있을 때 편안하지 않다면 무슨 소용인가? 우리가 누군가를 만날 때는 나 혼자 있을 때보다 더 즐겁고 기분이 좋았으면 하는 소망이 마음 속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중요하다. 즉 오래 만나고 많은 대화를 하며 생각과 정서를 교류하는 경험이 켜켜이 쌓이는 게 필요하다. 이는 노력한다고 단시간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보냈던 추억과 기억들이 모래처럼 쌓이고 바위처럼 단단해지는 시간이 필연적으로 필요하다. 어린 시절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고 사회에 나와서 만나는 친구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린 시절 사귀었던 친구와는 함께 보낸 오래된 시간만큼 많은 공통된 즐거운 기억들이 있기에 가능한 말이다.

좋은 사람을 곁에 두기 위해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사람은 혼자서 생존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진심 어린 인간관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마음 한 켠에 품고 있다. 기억해야 할 것은 관계라고 하는 것이 혼자서는 결코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관계는 ‘두 사람’이 맺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이지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고 싶다면 내가 먼저 꽤나 괜찮은 사람이 돼보는 것은 어떨까? 누군가가 나를 보았을 때 참 괜찮은 사람이다, 저 사람과 함께하고 싶고 곁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좋은 인간관계는 나도 모르는 새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혹시 내가 진심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은 얼마나 있는지 잠시 떠올려 보자. 기분 좋은 사람 몇 명이 떠오른다면, 장담하건데 당신이 바로 ‘인맥 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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