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공부? 고정관념 깼다…순식간에 5만명 몰려온 이 곳 [비크닉]
■ b.플레이스
「 "거기 가봤어?" 요즘 공간은 브랜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장소를 넘어 브랜드를 설명하고, 태도와 세계관을 녹여내니까요. 온라인 홍수 시대에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며 감각할 수 있는 공간은 좋은 마케팅 도구가 되기도 하죠. 비크닉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매력적인 공간을 탐색합니다. 화제의 공간을 만든 기획의 디테일을 들여다봅니다.
」
“도서관의 경쟁자는 카페”
요즘 도서관 사서들 사이에서 나오는 우스갯소리다. 책 읽고, 공부하고, 모임하는 과거 도서관의 기능이 점차 카페로 옮겨가면서다. 규격화된 공간에서 기침 소리 한번 내기 힘든 도서관이 부담스러운 이들의 대안이다. 하지만 최근엔 변신을 시도하는 도서관이 적지 않다. 갤러리 같은 세련된 인테리어를 자랑하거나, 주민들이 북적대는 만남의 광장이 되거나, 일부러 찾아올만큼 지역의 명소가 되면서 도서관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
12일 ‘도서관의 날’을 맞아 새로운 실험을 진행 중인 도서관 두 곳을 찾았다. 도서관의 날은 도서관에 대한 국민 이해와 관심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처음 법정기념일로 지정됐다.
각종 문화 프로그램 갖춘 동네 사랑방
웅장한 원형 공간 속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바닥 가득 내린다. 인공조명 없이도 충분히 밝은 분위기에 실내에 있어도 마치 야외에 있는 듯한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지난달 26일 찾은 강원도 ‘인제 기적의도서관’ 의 모습이다. 문·칸막이 같은 장애물이 없어 어디에 서 있든 공간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학교∙학원만 돌던 청소년들의 제3지대
성남시 중원구엔 청소년만을 위한 도서관도 있다. 9개 초∙중∙고등학교가 모인 지역 중심에 있는 ‘라이브러리 티티섬’은 2021년 여름에 문을 열었다. 많은 청소년이 걸어서 쉽게 올 수 있는 곳에 터를 잡았다. 겉으로 보기엔 도무지 도서관처럼 보이지 않는 회색빛 대형 건물의 9층에 올라가면 4개 층으로 이루어진 놀라운 세계가 펼쳐진다.
티티섬은 비영리단체 도서문화재단 씨앗이 운영하는 ‘공공’ 도서관으로,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재단은 ‘도서관을 떠난 청소년들은 어디로 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티티섬 설립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공부나 입시에 몰려 다양한 경험을 접할 기회가 없는 청소년을 위해 ‘제3의 장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청소년 일과 시간에 맞춰 도서관을 여는 시간도 오후 1시부터 9시까지로 조정했다.
조은정 라이브러리 티티섬 관장은 “지역에 청소년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며 “도서관조차 조용히 해야 한다거나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는 등 특정 자격이 있어야 갈 수 있는 공간이라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청소년이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티티섬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티티섬 프로젝트 결과는 성공적이다. 학원이나 입시 준비로 바쁜 청소년들이 도서관에 안 올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매일 평균 청소년 130여명이 방문한다. 청소년들은 방과 후 또는 학원 가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자기만의 섬을 찾는다. 이곳에 방문한 청소년들은 평균 2시간 정도 머물며 개인 시간을 보내거나 동네 친구들과 교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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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도서관은 사람·정보·기술이 모이는 곳”
공간은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반영할 때 가장 잘 쓰일 수 있다. 인제 기적의도서관과 라이브러리 티티섬의 공통점은 설립 단계부터 예비 이용자들이 기획 단계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기적의 도서관은 10명의 청소년 준비단과 함께, 티티섬은 23명의 지역 청소년과 함께 수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기획단은 각자 원하는 도서관의 쓰임새에 맞게 공간 구성 아이디어를 냈다.
독서 인구가 줄어드는 시대에 도서관의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까. 조 관장은 “도서관은 책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공간이 돼야 한다”며 “편하게 올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균등하게 정보를 얻을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호 상명대 문헌정보학 교수는 “전통적인 도서관은 더는 의미가 없다”며 “도서관은 지역에서 사람과 정보와 기술이 모이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전했다.
서혜빈 기자 seo.hye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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