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과 이재명의 앞날[강주안의 시시각각]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모두 배우자와 따로 투표한 희한한 선거가 끝났다. 비방으로 점철된 이번 총선의 살기가 실감 난다. 야당의 압승이되 개헌 가능 의석에는 못 미친 성적표. 지난 4년 내내 반복된 국회 풍경을 4년 더 봐야 한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야당 국회의장이 법안을 강행 처리하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정부가 제출한 법안은 야당이 퇴짜를 놓는다. 한덕수 총리 등이 사의를 표했는데 인사청문회의 고성이 벌써 들리는 듯하다.
배우자와 따로 투표한 최악 선거
서로에 대한 적개심은 극에 달한 상태다. 여야의 리더가 이를 조장했다. 정치권에 새 바람을 일으키리란 기대를 모았던 한 전 위원장이 거친 말을 쏟아내며 기성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데는 넉 달이 채 안 걸렸다. 이 대표는 자신에게 반대 목소리를 냈던 당내 인사들을 제거한 이후엔 대파를 열심히 들고 다녔다. 이제 손익 계산을 해볼 때다.
이탈리아 역사학자 카를로 M 치폴라는 자신과 남에게 이익 또는 손해를 끼치는지를 기준 삼아 사람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눴다(『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법칙』). 남에게 이익을 주고 자신은 손해를 보는 사람은 ‘순진한 사람(sprovveduti)’, 양쪽 모두에게 이익을 주면 ‘현명한 사람(intelligenti)’, 남들이 손해를 봐도 내가 이익을 얻으면 ‘영악한 사람(banditi)’, 나도 남도 손실을 입으면 ‘어리석은 사람(stupidi)’으로 규정했다. 이를 양당 리더에게 적용하면, 네거티브 유세로 일관한 두 사람이 남들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자신도 실속을 못 챙긴 한 전 위원장은 ‘어리석은 사람’에 속한다. 승리를 이끈 이 대표는 ‘영악한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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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자와 따로 투표한 최악 선거
삼겹살·대파 비방전 여야 리더 탓
협치 노력에 따라 둘의 미래 결정
」
이제 총선을 변곡점으로 두 사람은 새로운 갈림길에 섰다. 어제 사퇴한 한 전 위원장은 남에게라도 이익을 안기는 ‘순진한 사람’을 지향할 만하다. 정권 독선을 염려하는 민심을 받들어 정부에 고언하고 야당과의 협치에 헌신하는 길이다. 그러나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벼르는 ‘한동훈 특검법’을 피하려면 윤 대통령의 거부권에 기대야 하는 형편이니 진퇴양난이다.
이 대표는 어떨까. 민심은 민주당에 현 정부의 독주를 막기에 넉넉한 의석을 줬다. 그러나 법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200석 이상을 허용하진 않았다. 정부와 국회가 서로 견제하라는 유권자의 뜻이다. 이 대표 앞에는 사법리스크가 첩첩산중이다. 갈등이 최악인 상황에서 이 대표가 의원직을 잃는 결과가 나온다면 그 역시 ‘어리석은 사람’ 신세가 된다. 협치에 진력하면 새 길이 열린다. 법원이 그의 손을 들어줄 경우 사회 통합에도 기여한 ‘현명한 사람’이 된다. 설령 판결이 뜻대로 안 나와도 정치 갈등을 극복하려 애쓴 ‘순진한 사람’의 잔상으로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
인권변호사에서 성남시장·경기도지사를 거치며 입지전적 인물로 평가받은 이 대표는 중요한 고비마다 포용력을 내세웠다. 2017년 대선에 도전장을 낼 땐 “내가 진짜 보수”라는 주장까지 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윤석열 검사를 검찰총장에 기용하겠다”고 공언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수중에 들어온 권력의 크기에 반비례해 포용의 폭이 좁아졌다. 이번 총선 공천 과정에선 박용진 의원까지 상식 밖 우격다짐으로 배제하는 광경이 벌어졌다. 이런 퇴행을 선거 승리라는 명분으로 덮는 데는 한계가 있다. 윤 대통령도 어제 “총선에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겠다”고 했으니 이 대표가 태세 전환을 하기에 좋은 여건이 됐다.
삼겹살·대파 비방전 여야 리더 탓
협치 노력에 따라 둘의 미래 결정
선거 운동 막판까지 고기 불판 사진을 확대하며 ‘삼겹살 검증’에 열을 올린 여당 위원장과 파를 모자에 꽂고 퍼포먼스에 열중한 야당 대표는 국민에게 큰 자괴감을 안겼다. 우리 정치 수준이 이 정도는 아닐 거라고 믿고 싶은 마음을 달래주는 숙제가 이들에게 남았다. 이 과제를 얼마나 충실히 수행하는가에 두 사람의 미래가 달렸다.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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