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일만에 퇴장한 한동훈 “정치 계속한다 약속 지킬 것”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사퇴했다. 한 위원장은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 뜻을 준엄하게 받아들이고 저부터 깊이 반성한다”며 “선거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한때 윤석열 정부 황태자로 불리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 집권 여당의 리더로 정치판에 뛰어든 지 107일 만에 무대 위에서 내려갔다.
다변인 그는 이날엔 말을 아꼈다. ‘동료 시민’이라는 문구가 등장한 화려한 출정식에 비해 철군까진 채 3분이 안 걸렸다. 한 위원장은 “민심은 언제나 옳다. 국민의 선택을 받기에 부족했던 우리 당을 대표해 국민께 사과드린다”고 했다. 총선 내내 사생결단식으로 몰아붙였던 야당에 대해서도 “야당을 포함해 모든 당선인에게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국민의 뜻에 맞는 정치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총선 결과가 대통령실·여당의 공동 책임인가’라는 질문에 “제 책임”이라고 말한 한 위원장은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 거라 생각한다. 그 책임이 오롯이 저에게 있다”고 답했다.
국민의힘에선 참패 원인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돌리려는 움직임도 적잖다. 패배가 확정적이었던 전날 밤, 친한동훈계를 중심으로 ‘한동훈 당권 도전설’도 돌았다. 그러나 한 위원장 스스로 깨끗한 승복과 빠른 퇴장을 택하면서 일단 패배의 잔불을 정리했다.
이는 “용산발 악재 속에 나름 분투했다”는 평가 못잖게 한 위원장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큰 것을 의식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원톱 선대위로 의사결정뿐 아니라 대국민 마이크도 사실상 혼자 쥐었다.
팽배한 정권 심판론에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으로 맞불을 놓은 선택이나, 잡음 최소화에 방점을 찍었던 공천 과정이 전략적 실패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위원장은 ‘정치를 계속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저는 제가 한 약속을 지키겠다”고만 했다. 향후 행보에 대해선 “어떻게 해야 국민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는지 고민하겠다”며 “쉽지 않은 길이 되겠지만, 국민만 바라보면 그 길이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는 “여당의 비대위원장까지 한 마당에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느냐”며 “섣불리 등장해 실점하느니, 때를 기다리는 게 낫다”고 말했다. 자칫 4년 전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을 이끌고 총선을 치렀다가 패한 뒤 타의로 정치권에서 사라지다시피 한 황교안 전 대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동훈 비대위’도 해체됐다. 구자룡·박은식·윤도현·장서정 비대위원들과 장동혁 사무총장, 박정하 수석대변인 등 지도부가 사퇴했다. 비대위원 중에 22대 국회 생환자는 비례대표로 당선된 한지아·김예지 위원뿐이고, 지역구 출마자는 다 떨어졌다.
최측근인 장동혁 사무총장(충남 보령-서천)과 김형동 비서실장(경북 안동-예천)이 당선됐지만, 당내 소수파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공교롭게도 직전 지도부인 김기현 전 대표 체제의 선출직 최고위원(김재원·김병민·조수진·태영호·장예찬)들도 전원 낙천·낙선했다.
권성동(강원 강릉)·이철규(강원 동해-태백-삼척-정선)·윤한홍(경남 창원마산)·박성민(울산 중) 의원 등 ‘윤핵관’들은 불출마한 장제원 의원을 제외하고 대부분 생환했다. 그러나 워낙 참패한 탓에 당에선 “정권심판론의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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