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기뻐할 때 아니다” 몸낮추기…‘3년 플랜’ 시동?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총선 압승 뒤 몸을 낮췄다. 이 대표는 11일 오전 당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민주당의 승리가 아닌 국민의 위대한 승리”라며 “승리나 당선의 기쁨을 즐길 정도로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 이후에도 낮고 겸손한 자세로 주권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당면 민생 문제 해결에 적극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날 새벽 인천 계양을에서 밝힌 “저와 민주당이 민생을 책임지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라는 책임을 부과한 것”이라는 당선 소감과 같은 기조였다.
이날 이 대표의 말에는 선거운동 중 연일 쏟아낸 거친 말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실렸다. “차분해진 이 대표의 모습이 조금 어색하다”(민주당 서울 지역 당선인)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같은 날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으로 달려가 “김건희 여사 소환”을 외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도 다른 결이었다.
이 대표는 11일 당 지도부에 “당선자 모임보다 낙선자 위로 모임을 먼저 하자”는 제안도 했다고 한다. 민주당 최고위원은 “기쁨을 만끽하기보다는 국민이든, 낙선자든 위로하면서 민생 해법을 듣자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 대표가 총선 승리 후 첫 일성을 ‘로키(Low-Key)’로 잡은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명실공히 175석 ‘이재명당’을 이끌게 돼 정부·여당 탓만 하기 어려워진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총선 이전에도 이 대표는 거대 야당의 당수였지만, 당내 지분은 제한적이었다. 비명·친문의 수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공천권을 쥔 이번 총선에서 친명계가 대거 당선되면서 민주당의 색도 ‘이재명당’으로 거듭났다는 평가다.
한 비명계 의원은 “향후 물가 등 민생 문제가 심각해지면 국민은 정국 주도권을 쥔 민주당에 ‘뭘 했느냐’고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이 대표의 공약이었던 전 국민 민생회복지원금(1인당 25만원), 지역화폐 확대 등의 실현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민주당 추산 13조원이 필요한데, 여당은 그간 “재원 마련 방안이 불투명한 포퓰리즘”이라고 맞서 왔다. 이 외에도 아동수당(월 20만원) 18세까지 확대, 고등학교 졸업까지 정부가 매월 10만원을 넣어주는 ‘자립펀드’ 등 현금성 공약이 많다. 민주당 관계자는 “선거 결과에 부응하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국민이 언제든 회초리를 들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상당하다”고 전했다.
대장동 재판 등 각종 사법리스크를 돌파하면서 3년 뒤 대선을 준비해야 한다는 간단찮은 ‘정치 시간표’도 이 대표를 누르는 무게다. 민주당은 2020년 총선에서 180석으로 압승했지만, 부동산 3법 등 입법 독주에 나섰다가 역풍을 맞았다. 결과는 2021년 재·보선, 2022년 대선 및 지방선거 3연패였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학과 교수는 “친명계나 민주당의 독주가 부각되면 이 대표의 외연 확장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이 조국혁신당과 연합하거나 선명성 대결에 나서기보다는 당분간 거리를 둘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번 총선에서 정부·여당을 향했던 화살이 3년 뒤 자신에게 올 수 있다는 점을 이 대표도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국희·강보현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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