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건설업 연착륙하려면…LH 토지 매입·CR리츠 효과 기대
건설업 환경이 갈수록 나빠지면서 정부는 본격적인 해결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지난 3월 28일 ‘건설 경기 회복 지원 방안’을 발표, 건설업 지원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지방 미분양 주택 매입, 유동성 지원 등 다양한 대책을 담았다.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는 정책이 나오면서 현장은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다만, 전문가들은 단순 지원책을 넘어 건설업 체질을 바꿀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CR리츠로 미분양 주택 매입
정부가 내놓은 건설 경기 회복 지원 방안의 핵심 내용은 크게 2가지다. 미분양 주택 매입 그리고 유동성 공급이다. 건설업계를 옥죄는 악성 미분양 문제와 자금난을 해결하려는 취지다.
일단 미분양 주택 매입을 위해 기업 구조조정 리츠(CR리츠)를 10년 만에 재도입한다. CR리츠는 여러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미분양 주택을 사들인 뒤 우선 임대로 운영하고, 시장 상황이 좋아지면 분양 전환해 수익을 내는 구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분양 적체를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처음 도입했다. 2009년부터 운용된 CR리츠는 미분양 2200가구, 2014년 운용된 리츠는 500가구를 각각 매입했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당시 미분양 사업장을 보유한 건설사는 30% 이상 손실을 볼 상황에 놓여 있었으나, CR리츠를 통해 손실 규모를 7% 내외로 줄였고 투자자는 연 6% 안팎의 이익을 거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악성 미분양’으로 꼽히는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전국 1만1867가구에 달한다. 팔리지 않는 재고가 1만채가 넘는 셈이다. 이 때문에 건설업계는 미분양 해소에 효과가 있었던 CR리츠 재도입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정부는 지방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는 CR리츠에 대해 취득세 중과 배제(준공 후 미분양 주택 한정)와 함께 취득 후 5년간 종합부동산세 합산을 배제하는 세제 혜택을 준다. 취득세 중과를 적용하면 세율이 12%지만, 중과를 배제하면 지방 미분양 상당수가 해당하는 취득가액 6억원 이하 주택의 경우 취득세가 1%로 낮아진다. 최대 취득세율은 3%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취득세, 양도세 감면 혜택이 나오면 지방 아파트 미분양 물량은 충분히 소진 가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건설 사업장 유동성 공급 대책도 공개했다. 프로젝트파이낸싱 보증 한도를 종전 25조원에서 34조원으로 9조원 더 늘리기로 했다.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는 사업장은 물론, 정상 사업장에 신규 대출을 확대하는 등의 지원책을 내놨다.
이어 LH를 주축으로 자금이 필요한 기업을 지원한다. LH는 유동성 확보가 필요한 건설사 토지를 3조원 규모로 매입한다. 4월 5일부터 토지 매도를 희망하는 기업들로부터 매각 희망 가격을 제출받고 있다. 이후 희망 가격이 낮은 순서대로 토지를 매입하는 ‘역경매’ 방식을 활용한다.
매입 상한 가격은 LH 등 공공시행자 공급 가격 또는 공시지가의 90%로 뒀다. 매입 대상은 토지 대금보다 부채가 큰 기업의 토지다. 기업은 땅을 곧바로 매각하는 토지 매입 방식(2조원 규모)과 추후 필요할 때 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매입 확약 방식(1조원 규모)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매입 확약은 건설사가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 만기를 연장받아 사업에 착수할 수 있도록 돕는 수단이다. 기업은 토지 매각 대금 전액을 부채 상환에 써야 한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 지원에 힘입어 건설업계 입장에서는 위기를 빠져나갈 출구가 어느 정도 마련된 상태다.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분양 시장이 살아나는 분위기인 만큼 최악의 경우는 면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수요 견인책 필요, 부실 기업 퇴출 검토
정부의 긴급 조치로 당장의 위기는 면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주장이 현장에서 제기된다. 현재까지 나온 정부 대책은 응급조치일 뿐,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LH까지 동원한 이번 정부 지원책으로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효과가 오래갈지는 미지수다. 중소 건설사들이 최소 1년 이상은 더 버틸 수 있도록 추가 지원이 나오지 않으면 주택 시장이 서서히 붕괴되는 것을 막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수급 불균형 정상화, 부실 기업 정리 등 후속 조치가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부동산 시장 공급과 수요 불균형 해소다. 막대한 악성 미분양 물량을 처리하고 시장이 회복하려면, 주택 거래량 회복이 필수다. CR리츠 도입 등 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전국 부동산 거래 규모는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는 추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거래량은 올 2월 기준 5만7105가구에 그쳤다. 1월 6만5974가구로 지난해보다는 반등했지만, 2월 들어 다시 하락 전환했다. 대기 수요가 어느 정도 받쳐주는 서울, 수도권 외에 지방 부동산은 여전히 냉랭한 것이 현실이다. 매수 심리가 회복하도록 수요 진작 대책을 추가로 내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박세라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연이어 쏟아지는 공급 유도 정책보다는 실제 주택 수요가 얼마나 증가할지 주목해야 한다. 지난 1·10 대책에서 내놓은 소형 주택, 미분양 주택 매입 시 취득세 감면 등 수요에 영향을 미칠 주요 법안의 국회 통과 여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수요자 대출 규제 완화, 임대사업자 제도 활성화, 세금 감면 등으로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나서야 한다. 미분양 물량의 경우 공사비가 오른 상황에서 건설사가 분양가 할인을 고려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건설사의 분양 아파트 임대 전환 등의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 의견도 비슷한 맥락이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부실 건설사는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귀담아들을 만하다.
현재 위기에 내몰린 건설 현장 대부분이 호황기 때 무리하게 사업을 벌인 곳이다. 실제로 4월 위기설에 불을 붙인 태영건설의 경우 ‘직접 시행을 맡은 사업장’이나 ‘책임준공’이 걸린 사업장들이 위험 요인으로 작용했다. 책임준공형 신탁 사업은 신용도가 낮은 중소 건설사를 대신해 신탁사가 대주단에 책임준공 확약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PF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며 부동산 개발 시장 성장에 기여해왔다. 부동산 호황기에는 공사 중단 사례가 드물었던 만큼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건설 경기가 꺾이면서 책임준공형 신탁으로 추진된 다수의 PF 사업이 부실 위험에 직면했다. 시장에서는 부실 현장 지원은 하되 급작스러운 충격이 없었다면 사업성이 충분했을 사업장, 부도냈을 때 사회적인 여파가 큰 사업장 구조조정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우량 사업장·우량 기업을 중심으로 정부 정책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나머지 사업장은 시장 논리에 맡기는 것이 순리다. 일부 업체가 부도나거나 시장이 재편되더라도 건설업계 전체가 흔들리지는 않는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명확한 기준을 정한 뒤 지원할 사업장을 선별해야 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분석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4호 (2024.04.10~2024.04.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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