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지표로 본 건설사 ‘4월 위기설’

정다운 매경이코노미 기자(jeongdw@mk.co.kr), 조동현 매경이코노미 기자(cho.donghyun@mk.co.kr) 2024. 4. 1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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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율 100% 육박…PF 대출 연체 급증
폐업 속출에도 정부는 “부실 관리 가능”

#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로 나와 5분쯤 걸으면 서초초 옆 ‘영동프라자’ 부지가 눈에 들어온다. 5500㎡ 규모 서초동 땅에 지하 3층~지상 5층 상가를 신축하는 사업지인데 현재는 올리다 만 철골 구조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 공사가 전면 중단된 상태다. 시행사였던 삼양엘앤디가 2000억원대 브리지론 상환과 프로젝트파이낸싱에 실패해 사업장이 공매에 부쳐졌기 때문이다.

두 차례 유찰 끝에 당초 5300억원 수준이던 공매 최저 입찰 가격이 반 토막 수준(2053억원)까지 떨어졌지만 여전히 찬밥 신세다. 영동프라자 부지를 담보신탁으로 보유한 우리자산신탁 관계자는 “해당 사업장에 대해 두 차례 공매를 신청했지만 모두 유찰돼 수의 계약이 가능해졌다”며 “건설 경기 침체에 따른 준공 후 미분양 물량 적체, 원자재 가격 상승 여파로 힘든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사업지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강남 금싸라기땅 최저 입찰가가 반 토막 났다는 것 자체가 상황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와 채권 시장 경색으로 사업장이 PF 대출 상환에 실패해 공매에 부쳐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국자산관리공사 온비드에 따르면 올 들어 3월 넷째 주까지 부동산 신탁사의 대지 매각 공매 건수는 총 770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215건 대비 3.5배 이상 급증했지만 낙찰되는 물건은 고작 12건(1.5%)에 불과한 실정이다.

총선 이후 자금난에 시달리는 건설사의 연쇄 부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른바 ‘4월 위기설’은 좀처럼 사그라들 줄 모른다. 태영건설과 같은 워크아웃 사태가 또 일어나면 금융권까지 도미노 파장이 이어질 거라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정부와 금융당국이 “근거 없다”며 일축하자 이번에는 ‘5월 위기설’까지 대두된다. 그사이 건설업계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나온 자조 섞인 말이다.

지난 4월 3일 찾아간 서울 서초구 ‘영동프라자’ 개발 부지가 텅 비어 있다. 지하 3층~지상 5층 규모의 신축 상가가 들어설 예정이었던 이곳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전환 실패 후 공매로 넘어간 부지가 끝내 유찰되면서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윤관식 기자)
건설 경기 침체됐는데 고금리 여전

PF 연체율 치솟는데 절반이 브리지론

건설사 위기설이 확산될 정도로 시장 불안감이 큰 데는 이유가 있다.

일단 PF 관련 지표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이다.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잔액이 1년 새 5조원 넘게 급증한 데 반해 같은 기간 연체율은 1.51%포인트 증가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체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35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9월 말(134조3000억원) 대비 1조4000억원 많아졌다. 2022년 말(130조3000억원)과 비교해선 5조3000억원 늘었다.

업권별로 보면 지난해 말 기준 은행은 46조1000억원, 증권사는 7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9월 말 대비 각각 1조8000억원, 1조5000억원씩 부동산 PF 대출 잔액이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보험은 42조원, 저축은행은 9조6000억원, 여신전문사는 25조8000억원으로 각각 1조3000억원, 2000억원, 2000억원씩 감소했다.

상대적으로 중순위나 후순위 등 불안정한 대출이 많은 저축은행, 상호금융에서 잔액이 줄어든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금리는 높고 건설 경기까지 침체된 상황에서 금융권 전반에 걸쳐 PF 대출 규모가 늘어난 점은 불안 요인이다.

특히 PF 대출 연체율을 들여다보면 대출 잔액이 늘어난 증권사와 중·후순위 대출이 많은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연체율이 높다. 지난해 말 기준 금융권 부동산 PF 연체율은 2.7%다. 1년 전(1.19%)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 연체율을 다시 업권별로 쪼개보면 증권사(13.73%)가 가장 높고 저축은행 6.94%, 여신전문사 4.65%, 상호금융 3.12%, 보험 1.02%, 은행 0.35%가 뒤를 잇는다.

특히 PF 만기가 도래하는 금액 중 절반 이상은 브리지론(고금리 단기대출)이라 부실화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신용평가의 ‘증권사 부동산 금융 손실 시나리오 테스트’ 보고서에 따르면 올 연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금액 약 14조원 중 58.4%(약 8조2000억원)가 브리지론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도 약 6조4000억원의 브리지론이 올 상반기 중 만기가 돌아온다. 만기가 단기간 내 집중돼 있고 이미 지난해 하반기 만기가 돌아온 브리지론 중 상당 규모가 본PF로 전환하지 못해 3~6개월 만기 연장을 한 상황이다.

브리지론은 부동산 시행사들이 사업 초기에 사용하는 비용(토지 매입·인허가 등)을 융통하는 고금리 단기 차입금을 말한다. 이후 공사를 착공하면 대형 증권사에서 조금 더 낮은 금리로 본PF 대출을 받아 브리지론을 갚는다. 예정된 일정대로 착공하면 괜찮지만, 사업이 지연될 경우 본PF로 넘어가지 못해 막대한 손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즉, 브리지론을 상환하지 않고 만기 연장을 한다는 것은 사업이 착공, 분양 등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부동산 PF나 브리지론의 질이 좋지 않은 사업장이 꽤 있다는 사실이다. 중소형사의 경우 수도권 비중이 52%로 지방보다 높기는 하지만 서울(17%)보다 경기권(31%) 비중이 2배가량 높다.

김예일 한국신용평가 수석 애널리스트는 “브리지론 규모가 본PF 규모의 절반 수준임을 감안했을 때 브리지론 손실 위험이 단기적으로 매우 크다”면서 “중소형사의 경우 자기자본 대비 손실 부담이 커지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공사 대금 못 받는 건설 업체 속출

올 들어 1000여곳 폐업 신고

상황이 이런데 건설 경기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당장 건설 자잿값과 인건비 등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주택 사업 원가율이 덩달아 치솟은 것이 최고 부담 요인이다. 건설사 원가율은 매출액에서 원가가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레미콘 등 건설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등을 포함한 수치다. 원가율이 높으면 매출이 늘어도 성장이 어렵기 때문에 건설업계에서는 원가율 관리가 필수다.

하지만 2~3년 전만 해도 80%대를 유지하던 원가율은 이제 ‘90% 이상’이 기본값이 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시공능력평가 상위 건설사 5곳의 지난해 매출 원가율은 평균 92.9%로 2022년 90% 대비 2.9%포인트 올랐다. 이들 기업 매출은 전년 대비 증가했지만, 매출 원가도 함께 늘어나며 실질적인 부담이 커졌다.

매출 원가율을 90%로 계산하면 건설사의 매출 1조원 중 원가는 9000억원에 해당한다. 매출 원가 압박이 커질수록 건설사 이익은 줄어든다. 현대건설,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우건설, DL이앤씨 매출 원가율은 각각 1.4%포인트, 1.6%포인트, 1.6%포인트, 2.6%포인트씩 뛰었다.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사고 여파를 겪은 GS건설 매출 원가율은 8.5%포인트나 급증했다.

올해도 원가율 개선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주요 건설 자재인 레미콘 가격 인상 협상이 지난해 말부터 진행 중이다.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시멘트 가격이 t당 7% 가까이 오른 데다, 올 1월부터는 골재 가격이 10% 이상 오르며 레미콘업계 원가 부담이 가중되고 있어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현장에서 하자나 안전사고에 드는 비용과 공사 기간이 추가되는 등 원가율 관리가 어려워졌다”며 “특히 원가율이 100%를 넘어서기 시작한 사업지는 수익성 개선이 장기간 지연되거나, 신용 하락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건설사 재무 구조도 불안한 모습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양정숙 개혁신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종합건설 시공능력평가 순위 1~50위 건설사 가운데 부채비율이 200% 이상인 건설사는 14곳이다. 400% 이상인 건설사도 2곳인 것으로 드러났다. 재무건전성을 보여주는 부채비율은 통상적으로 200% 미만이면 양호, 400% 이상이면 위험한 상태로 여겨진다.

이뿐 아니다. 유동부채비율이 70% 이상인 건설사도 28곳에 달한다. 유동부채는 기준일 기준 1년 이내 만기가 도래하는 부채를 말한다. 자기자본 대비 유동부채 비율이 100%를 넘으면 부채 상환을 이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양정숙 의원은 “태영건설 부채비율이 257.9%, 유동부채비율이 68.7%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종합건설 시공능력 최상위 건설사들도 부도 위기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을 만큼 재무 상태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주장했다.

건설사 스스로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시장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 500대 건설 기업 자금 사정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 기업의 76.4%는 현재 기준금리 수준에서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임계치를 넘었다고 토로했다. 아직 여유가 있다고 답한 기업은 17.7%에 불과했다.

사정이 어렵다 보니 아예 파산하거나 폐업하는 건설 업체도 속출하는 모습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 2월 파산에 돌입한 업체는 LNH건설, 하나건설, 이산종합건설 등이다. 전체 파산 사건 접수 건은 2월에만 343건에 달한다. 또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키스콘)에 따르면, 올해(1월 1일~4월 3일) 기준 건설업 폐업 신고 건수는 총 1037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966건과 비교하면 7.3%(71건) 늘어난 수준이다.

역시 폐업을 고민 중이라는 한 소형 건설 업체 대표는 “회사 부도 등의 이유로 폐업 신고하는 경우도 있지만, 경영 악화나 자본금 유지 불가 등의 사유로 건설업 면허를 유지할 수 없을 때 자진해서 폐업 신고하는 경우도 많다”며 “어느 경우든 폐업 신고가 늘어난 것은 그만큼 시장이 어렵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3월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건설사 위기설과 관련해 현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기 없다”는 정부의 근거는?

“과거 비교하면 연체율·미분양 양호”

건설사 위기설이 확산되지만 정부는 “4월 위기설은 없다”며 부랴부랴 진화에 나선 모습이다. 정부와 금융당국 입장을 요약하면 “금융기관 등이 PF 부실에 따른 손실을 흡수할 기초체력을 갖췄고, PF 부실은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논리다.

우선 ‘금융기관 등이 기초체력을 갖췄다’는 주장과 관련해 금감원은 “(금융회사의) PF 고정이하여신 대비 충당금 적립액 비율이 108.9%로 100%를 넘는다”고 설명했다. 고정이하여신이란 금융기관의 대출금 중 연체 기간이 3개월 이상인 부실채권을 의미한다. 즉 충당금 적립액이 충분하다는 의미다. 앞으로도 충분한 충당금 적립을 유도해 금융권 손실 흡수 능력을 키운다는 것이 금융위 계획이다.

‘PF 부실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최근 “금융권 PF 위험노출액 규모는 다소 늘고 있으나, 증가 규모가 작고 연체율도 2.7% 수준으로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며 “저축은행과 상호금융업권 모두 자본비율이 규제비율을 크게 웃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도 과거 위기와 비교하면 연체율이나 미분양 규모가 낮은 것으로 판단한다. 2012년 말 저축은행 사태 당시 금융권 평균 연체율이 13.62%였던 데 비해 지난해 말 연체율인 2.7%는 크게 낮은 수준이라는 것. 또 지난해 말 6만2489가구인 미분양 규모도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인 2009년 말(12만3297가구)과 비교하면 양호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금융 안정 상황’ 보고서 역시 비슷한 맥락의 내용을 담았다. 한은은 PF 사업장을 고위험·중위험·저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이들 사업장에서 부실이 확산하는 상황을 가정해 스트레스 테스트(외부 위기에 대한 금융사 대처 능력 평가)를 시행했는데 “향후 PF 대출을 둘러싼 부실이 확산하더라도 금융사가 양호한 손실 흡수력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금융권의 고위험 사업장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5조9000억원, 중위험과 저위험 사업장 익스포저는 각각 20조7000억원, 103조6000억원으로 나타났다. 리스크가 이미 현실화돼 금융감독원이 ‘악화 우려’ 상태로 분류한 사업장의 익스포저는 2조7000억원이다.

보고서에서 한은은 ‘악화 우려’ 사업장과 고위험 사업장 전체가 부실화하는, 그래서 시공사에 유동성 문제가 생겨 다른 사업장으로 부실이 전이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봤다. 그 결과 최악의 경우 저축은행 자본비율은 14.1%에서 11.4%까지 하락하고, 여신전문사(18.4% → 16.8%)와 증권사(740.9% → 717.1%)에서도 하락폭이 두드러졌다. 다만 평균 자본비율은 모든 업권에서 규제비율(저축은행은 7~8%) 이상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실 흡수 능력이 양호한 상황이라는 의미다.

한은은 “금융기관이 규제 수준을 상당폭 웃도는 수준의 양호한 자본비율을 유지하는 가운데, 금융당국 감독 규제 등으로 PF 익스포저의 과도한 확대가 제약되고 금융기관의 대손충당금 적립도 적극적으로 이뤄져왔다”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4호 (2024.04.10~2024.04.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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