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 기업, 글로벌 최저한세 탓에 과도한 세금 우려”
국내 배터리 기업은 전기차 시장 둔화, 광물 가격 하락,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 등 삼중고를 겪고 있다. 이른바 ‘캐즘’(대중화 이전의 일시 정체기)에 빠졌다. 하지만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 우리가 타는 자동차 10대 중 4대가 전기차일 것으로 전망한다. 지금의 ‘잠시 멈춤’은 성장통일 뿐 시장은 지속 성장할 것이라는 데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동의한다.
사실 우리 배터리 회사가 처한 어려움은 다른 데 있다. 글로벌 최저한세 탓에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어서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세계 매출이 약 1조원 이상인 다국적 기업의 해외 자회사가 현지에서 최저세율인 15% 미만의 세금을 내면 모회사가 있는 국가에 부족분에 대한 세액을 추가로 납부하는 제도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국제조세조정법을 개정해 미국·유럽·일본 등에 앞서 가장 먼저 제도를 법제화하고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최근 국민일보와 만난 박 상근부회장은 “주요국과의 공급망 협력과 청정에너지 전환 사업으로 혜택을 받는 투자 기업의 소득에 대해선 글로벌 최저한세 제도의 적용을 제외하는 특례 도입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배터리협회는 올해 상반기 중으로 업계 공동 건의서를 마련해 정부와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차전지 산업은 윤석열 대통령이 각별히 챙기는 분야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새만금 이차전지 투자 협약식에서 이차전지 기업에 파격적인 지원을 주문한 바 있다. 현시점에서 필요한 정책에 대해 박 상근부회장은 “흑연 음극재를 공급망 기본법의 경제안보 품목으로 지정해 생산 기업에 일정 기간 재정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정부가 서두른 것 아닌가.
“과세주권을 선제적으로 확보한 것인데 미국에 투자한 배터리, 태양광 기업들이 세금 후폭풍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200여개 국내 기업이 글로벌 최저한세 제도의 영향을 받는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외국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미국으로서는 한국 정부가 세금으로 떼가는 게 황당할 것 같다.
“호의적이지 않은 것으로 안다. IRA에 근거해 우리 배터리 기업들이 받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는 미국 내 배터리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대한 보상의 성격을 갖는다. 미국의 지역경제와 일자리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배터리 기업이 AMPC로 받은 보조금이 지난해 1조3000억원에 달한다. 현지 생산이 급증하는 2026년부터 규모는 두 배 이상으로 늘 것이다. 우리 배터리 기업이 미국 정부에 받은 보조금을 국내에 세금으로 내야 한다면, 미국 투자 유인과 한·미 배터리 동맹의 동력은 반감할 수밖에 없다. AMPC 혜택이 줄면 영업이익은 더 감소하고 미래 투자 여력을 갉아먹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중국 기업에는 글로벌 최저한세가 적용되지 않고 있어 경쟁력에서 밀릴 위험도 있다. 여러 측면을 종합 고려하는 균형감이 필요한 시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재집권을 가정할 때 IRA를 둘러싼 우려도 있다.
“미국 현지 분위기는 트럼프가 재선해도 IRA 폐지가 쉽지 않다는 의견이 다수다. IRA가 양당 합의 법안(bipartisan act)인 데다 공화당 우세 지역에 투자가 집중돼 있고 공화당이 상·하원을 동시에 장악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제약 때문이다. 또 미·중 전략 경쟁은 지속할 것이기 때문에 중국산 배터리를 대체하는 한·미 배터리 협력을 축소할 이유가 없다. 다만 친환경 전기차 보급 속도를 늦추는 식의 조치는 가능하다.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 의회와 주 정부, 싱크탱크를 대상으로 민·관 합동 통상력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
-K-배터리의 강점과 약점을 꼽는다면.
“기술력, 제조 역량, 핵심 인재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은 우리 배터리에 대해 확실한 우군이라며 ‘essential partner’(필수 동반자)라고 표현한다. ‘신뢰 자산’이 큰 강점이다. 미국·유럽·동남아시아에서 현지 경영 경험이 많은 점도 무형 자산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약한 고리는 취약한 핵심 광물 공급망이다. 전구체, 수산화리튬, 황산니켈 등 광물 중간재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저가형 배터리인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다루지 않아 제품 포트폴리오가 다양하지 못한 점도 전기차 대중화와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시장 대응에 걸림돌이다.”
-광물 공급망 돌파구는 있나.
“미국 해외우려기관(FEOC) 규정에 따라 내년 1월 1일부터 중국산 핵심 광물을 사용할 수 없다. 공급망 기본법 등 ‘공급망 3법’을 활용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지원이 필요하다. 흑연 음극재의 경우 FEOC 유예 기간 부여를 미국에 요청한 상태로, 통상 교섭을 지속해야 한다. 국내 흑연 음극재 생산 기업의 가격 경쟁력은 중국 제품과 비교해 4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업계는 생산 보조금을 원한다. 정부가 재정 지원 근거를 마련해줘야 한다. 또 핵심 광물을 추출할 수 있는 사용 후 배터리 산업화 법제화도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정책적 과제도 중요하지만 현장이 체감하도록 속도감 있는 지원이 굉장히 중요하다. 3~5년 내 공급망 전환 작업에 성공하느냐에 K-배터리의 재도약이 달려 있다.”
-임기 중 숙원 사업은.
“지난해 사용 후 배터리 20여개 기업이 공동 의견서 만들어 정부에 제출한 것은 의미가 있었다. 차세대 배터리 기술 관련해 대형 국책 연구·개발(R&D) 과제를 진행하려고 한다.”
박태성 부회장은=▲1963년생 ▲서울 문일고등학교 ▲서울대 경제학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미국 오리건대 경제학 석사 ▲제35회 행정고시 ▲산업통상자원부 감사관, 산업정책관, 무역정책관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 ▲주인도네시아 대사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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