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아베 방미와는 다르다?…기시다 ‘보통 국가’ 달성 독해법은

유지혜, 정영교, 박현주 2024. 4. 11.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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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미 백악관에서 열린 국민 만찬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왼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건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2015년 4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일본 총리의 국빈 방미에 외교부 본부와 주미 대사관에는 비상이 걸렸다. 동선과 메시지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웠고, 아베의 상·하원 합동연설을 앞두고선 정부가 나서 “전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며 과거사 반성을 압박했다. 물밑에선 연설 자체를 저지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다. 결국 아베는 연설에서 침략에 대한 사죄를 회피했고, 국내에선 “대미 외교 실패” “대일 전략 부재” 등 거센 비판이 일었다. 미·일 간 신(新) 밀월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한·일 관계는 더 저점으로 떨어졌다.

9년 뒤인 지난 10일(현지시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당시 아베의 방미 성과를 뛰어넘었다. 미국의 축복과 지지 속에 사실상 ‘개헌 없는 보통국가화’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자’가 ‘패자’의 재무장을 허용한 것은 전후 질서 측면에서도 큰 변화다.

‘피해자’인 한국 입장에서는 경계할 수밖에 없다. 다만 9년 전 같은 비판과 우려 일색의 분위기는 아니다. 북핵 위협 대응 등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국빈 방미 중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새로운 단계로 올라선 미·일 동맹의 협력 분야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군사 안보다. 양국은 미사일을 비롯한 무기의 공동 개발·생산을 논의하는 협의체인 ‘방위산업 협력·획득·지원에 관한 포럼’(DICAS)을 창설하기로 합의했다. 또 주일미군과 자위대의 상호 운용성을 제고하기 위해 명령·통제 체제를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사실상 일본이 평화헌법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도록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의 길을 터준 셈인데, 주요 명분은 중국 견제다. 이번 미·일 정상 간 공동성명에는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중국의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한몸’ 된 미·일 군사안보 협력, 득? 실?


이를 두고 엇갈린 시각이 존재한다. 일본의 군사적 부상에 대한 우려는 당연하지만, 일견 한국에 이익이 된다는 점에서다.

이는 한국을 둘러싼 정세가 ‘복합 위기’ 국면을 맞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을 동원한 “남조선 전영토 평정”을 위협하고, 러시아는 북한과 불법적 군사 협력을 통해 이런 김정은의 핵 야욕을 부추기고 있다. 미·중 대결과 맞물린 대만 해협 갈등도 한반도 안보와 직결되는 위기 상황이다. “북한이 거의 핵무장을 완성하고, 대만 해협 관련 유사 상황도 대비해야 하는 가운데 한·미·일 안보 협력이 원활하지 않으면 제대로 억지를 할 수 없는 상황”(신각수 전 주일 대사)이라는 것이다.

미·일 군사 안보 협력 강화는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를 통해 구축한 3국 간 안보 협력의 한 축이 견고해지는 것으로 볼 필요도 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에 대한 위협은 동맹인 미국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기 때문에 일본의 군사력 강화가 곧 우리에게 위협이라는 인식은 논리적인 모순”이라며 "한·미 및 미·일 동맹이 진전되면서 한·미·일 차원에서도 북한 대응과 관련한 안보 논의의 지평 자체가 확장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1일 김정은 총비서가 전날 김정일군정대학을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뉴스1


한·미는 이미 ‘글로벌 전략동맹’ 선언


그간 한·미 동맹 강화와 한·일 관계 개선을 통해 ‘미·일 동맹만 앞서나가며 한국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고질적 우려가 옅어진 측면도 있다. 2015년에는 아베 정부의 지속적 역사 도발로 한·일 간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워싱턴에서 한·일전이 벌어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미 외교 역시 치열했다.

하지만 지금은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3자변제 해법 제시 등으로 한·일 관계가 점차 좋아지는 국면이고, 한·미 동맹 역시 훨씬 공고해졌다. 이와 관련, 미 측은 이번 미·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일 동맹이 전면적인 글로벌 파트너로 중대 전환했다”고 강조했는데, 사실 한·미는 이미 지난해 4월 동맹 70주년 정상회담에서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을 선언했다.

당시 발표한 워싱턴 선언을 근거로 발족한 핵협의그룹(NCG)은 미국의 핵자산 운용에서 한국의 발언권을 제도화하기 위한 협의체로, 전례가 드물다는 평가를 받았다. 북핵 대응을 위해 한·미가 한몸처럼 움직이는 일체형 확장억제를 지향한다.

지난해 4월 국빈 방미한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한 공동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공동취재단=연합뉴스

또 이번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일본의 오커스(AUKUS, 미국·일본·호주 간 안보 동맹) 참여를 모색하기로 했는데, 공교롭게도 직전 미 백악관은 처음으로 한국도 오커스 협력 파트너로 공식화했다. “오커스는 일본에 더해 한국, 캐나다, 뉴질랜드를 비롯한 다양한 추가 파트너들을 고려하고 있다”면서다.(9일 백악관 NSC 고위당국자)


日 ‘군사 야욕’ 경계 불가피


물론 동시에 제국주의 침략의 원죄가 있는 일본이 다시 ‘군사 야욕’을 드러낼 가능성은 주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과거사 문제를 여전히 왜곡하거나 사죄에 소극적인 일본 정부의 태도는 평화헌법의 족쇄를 벗고 다시 폭주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키운다.

실제 11일(현지시간) 진행되는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기시다는 과거사 관련 언급은 아예 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한다. 기시다 정부가 징용 해법에 대한 적극적 호응을 비롯, 과거사 문제에서 전향적 태도를 보여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이 당사자인 북한 문제와 관련, ‘일본식 통미봉남’에 대한 걱정도 제기된다. 바이든은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북·일 정상회담에 대해 논의했으며, 동맹들이 북한과 대화를 시작할 기회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북·일 정상회담 추진에 대한 첫 지지 표명이었다.

이를 두고 정작 한국만 북·일 간 고위급 소통과 관련해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모양새란 지적이 나온다. 북·일 정상회담 가능성과 관련, 정부는 “한·일, 한·미·일은 일·북 간 대화 추진 관련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일은 이미 정상 차원에서 북·일 정상회담 추진과 관련한 세부 사항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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