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글로벌 파트너' 선언…'재무장' 日 역할 전세계 확대
“오늘 밤, 우리가 계속 그 길을 가기를 맹세한다”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공식 만찬 건배사에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미국의 TV 시리즈)스타트렉의 대사로 마무리하겠다”며 “당신들 모두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대담하게 가십시오”라고 답했다. 10일(현지시간) 미·일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관계를 ‘글로벌 파트너’로 전환하기로 합의한 양국 정상의 의지를 담은 말이다.
이날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새로운 미·일 관계는 2차 대전 이후 ‘전쟁 포기’를 선언했던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정상국가’로 되돌린 뒤 현재와 미래의 첨단 무기를 미·일이 공동 개발하고, 일본의 역할을 전 세계로 확장시키는 것으로 요약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적이었던 양국 관계가 80여년 만에 세계 안보를 사실상 공동으로 관리하는 핵심 동맹으로 격상됐음을 의미한다.
양 정상은 10일(현지시간) ‘미래를 위한 글로벌 파트너’라는 제목의 공동성명에서 이런 내용의 미래 동맹의 청사진을 공개했다.
新동맹 관계 시작…국방·안보 협력
공동성명은 미국과 일본이 국방과 안보 분야에서 무기 개발에서부터 군대 운용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한 몸’과 유사한 동맹 관계를 구축한다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양 정상은 “미·일 글로벌 파트너십의 핵심은 상호협력 및 안보조약에 따른 양국 간 국방 및 안보 협력”이라며 “미·일 동맹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보, 번영의 초석임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양국의 군사 동맹은 미국이 '평화헌법'에 근거해 전쟁을 할 수 없었던 일본을 방어해주던 개념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번 회담을 계기로 양국은 공동으로 일본 열도는 물론 동아시아와 인도·태평양 전지역의 평화와 안보 문제에 공동으로 관여하는 방식의 안보 개념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일본 보수 진영의 꿈이었던 일본의 재무장이 탄력을 받게 됐다.
공동성명에 따르면 미국은 “2027년 국방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로 확대하고, 대응 타격 능력을 보유하며, 자위대의 지휘·통제 강화를 위한 합동작전사령부 창설 등 일본이 방위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취하는 조치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동시에 평화헌법에 따라 그동안 일본이 보유할 수 없었던 실질적인 ‘군(軍)’을 운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평시 및 유사시 미군과 자위대 간의 원활한 작전 및 능력 통합을 가능하게 하고 상호 운용성과 계획 수립을 강화하기 위한 지위통제 체계를 업그레이드하겠다고 밝혔다.
구체 방안은 향후 양국의 외교·국방장관급 ‘2+2 협의체’에서 마련할 계획이다. 특히 양국은 “양자 정보 분석을 포함해 정보, 감시, 정찰 및 동맹 정보 공유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목표”라며 새로운 미·일 동맹이 군사·안보적으로 민감한 모든 영역을 포괄할 것임을 시사했다.
美 글로벌 파트너들의 ‘교집합’ 부상한 日
양국은 이와 관련 미사일 등 무기의 공동 개발·생산을 논의하는 ‘방위산업 협력·획득·지원에 관한 포럼’(DICAS)을 창설하기로 했다. 포럼을 통해 미사일을 비롯해 4세대 전투기, 해군 함정을 함께 개발한다. 기술 유출 때문에 그동안 미국이 극도로 제한을 둬왔던 해외 무기 생산과 관련해서도 미국은 “일본의 상업 시설에 (생산기지를) 전진 배치할 것”이라는 내용을 공동성명에 담았다.
양국의 군사동맹은 다자 협의체로도 확대된다. 성명에 따르면 먼저 미국·일본·호주 3국 공동의 미사일 방어 네트워크 협력이 추진된다. 또 미·일·영 3국의 정례 군사훈련을 내년부터 시작한다는 계획도 성명에 명시했다. 특히 미국은 성명에서 “일본의 강점과 AUKUS(오커스, 미·영·호 군사동맹) 국가들과의 긴밀한 양자 방위 파트너십을 인식하고 ‘필러2’ 고급 역량 프로젝트에서 일본과의 협력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필러2는 미국의 미래 첨단 무기를 개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결국 일본은 전세계 안보 시스템을 '소(小) 다자 협력체'를 통한 ‘격자형 구조’(lattice-like)로 전환한다는 미국의 새로운 안보 구상을 구성하는 전세계의 주요 소 다자 협력체에 모두 참여하는 안보 구상의 ‘교집합 국가’로 위상이 높아질 가능성 있다.
특히 미·일은 “양국의 글로벌 파트너십은 우주로 확장돼 태양계 탐사 및 달 탐사를 주도하고 있다”며 “미국 산업계와의 잠재적 협력을 포함해 극초음속 활공체와 같은 미사일의 저궤도 탐지와 관련한 양국 간의 협력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양국의 군사 협력이 현재 무기에 그치지 않고 미래의 잠재적 위기에 대한 대응로까지 확대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유럽, 중동, 라틴아메리카”…日 역할 전세계 확대
공동성명은 “미·일이 직면한 도전은 지역을 초월한다”며 글로벌 외교 및 개발 협력에 대한 단락을 별도로 담았다. 일본의 역할이 일본 열도나 동아시아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로 확장될 것임을 시사한 대목으로 해석된다.
미·일은 먼저 “중국과의 솔직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공동 관심사에 대해 가능한 경우 중국과 협력할 의사를 표명한다”며 새로운 양국 동맹이 1차적으로 중국을 겨냥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관련해 “양국은 대만에 대한 기본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우회적으로 재확인하면서도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가 중요하고,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과 관련해선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입장을 재확인한다”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의 지속적 개발을 강력히 규탄하며, 이는 한반도와 역내 평화와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전제 없이 외교에 복귀하다는 제의에 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동성명은 이어 “유로·대서양과 인도·태평양 지역 간 연계가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을 비롯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남미 아이티와 베네수엘라 등에 대한 지원,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협력 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사실상 일본의 역할이 아시아 전역과 유럽, 아프리카, 남미 등 전 세계로 확장된다는 의미다.
한편 이날 공동성명엔 “바이든 대통령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처리수’를 과학에 기반을 둔 방식으로 안전하고 책임감 있고 방류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며 “양국은 잔해 수거를 위한 연구 협력에 초점을 맞춘 후쿠시마 원전 해체 파트너십을 출범할 계획”이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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