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 189㎝짜리’ 까다로운 ABS존 비웃는 구자욱의 불방망이
프로야구는 올 시즌부터 볼·스트라이크 자동 판정 시스템(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이란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최근 몇 년간 논란이 된 주심의 판정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사람이 아닌 기계가 볼과 스트라이크를 구분하도록 했다.
개막 후 한 달이 가까워지는 시점. ABS는 예상대로 프로야구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모든 타자들에게 유·불리 없이 공정한 판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ABS의 정확도가 오락가락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거세다.
가장 큰 논란거리는 역시 개인차다. 타자들은 평소 볼로 판정됐던 공이 스트라이크로 선언될 때마다 언짢은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특히 ABS존의 크기가 선수의 신장을 기준으로 정해지면서 키가 큰 타자들의 경우 예년보다 스트라이크의 범위가 위아래로 넓어졌다는 평가다. 신장 189㎝의 장신 외야수 구자욱(31·삼성 라이온즈)도 예외는 아니다. 구자욱은 지난 10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을 마친 뒤 “ABS가 도입된 뒤로 모든 공이 스트라이크처럼 보인다. 키가 큰 편인 나로선 불리하게 느껴진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2015년 데뷔한 구자욱은 3할대 타율을 웬만해선 놓치지 않는 교타자다. 2019년(타율 0.267)과 2022년(타율 0.293)을 제외하고는 매년 3할 타율을 작성했다. 지난해에는 타격왕을 차지한 NC 다이노스 손아섭에게 3리가 밀린 0.336의 타율로 2위를 기록했다. 이런 교타자 구자욱에게 올 시즌은 위기로 다가왔다. 스트라이크존이 확 넓어진 만큼 건드려야 할 공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구자욱은 올 시즌 14경기에서 타율 0.352(54타수 19안타) 2홈런 13타점 9득점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특히 10일 롯데전에선 하루에만 무려 6개의 안타를 뽑아내는 신들린 활약을 펼쳤다. 1회초 우전안타를 시작으로 4회 중전안타, 6회 우월 2점홈런, 7회 좌전안타, 8회 중전안타, 연장 10회 중전안타까지 쉼없이 베이스를 누비며 10-7 승리를 이끌었다.
역대 KBO리그 한 경기 최다안타는 롯데 카림 가르시아가 2010년 4월 9일 사직 한화 이글스전에서 작성한 7안타다. 이어 한 경기 6안타는 김기태와 채종범, 장성호, 양준혁, 이택근, 정근우, 전준우, 정훈, 이병규,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만이 기록했는데 구자욱이 이들의 뒤를 따르게 됐다.
이날 6타수 6안타 1홈런 4타점 3득점으로 활약한 구자욱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6개의 안타 중 2개 정도는 코스가 좋아서 나온 안타였다”며 겸손하게 말했다. 이어 “이전 타석에서의 안타는 빨리 잊으려고 했다. 안타가 늘어날수록 주위의 관심이 커질 것 같아서 같은 마음을 먹고 투수를 상대했다”고 웃었다.
ABS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키 189㎝로 남들보다 신장이 큰 구자욱은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선수들에게 볼로 선언되는 공이 내겐 스트라이크로 판정되더라. 그럴 때마다 아쉬움이 생겼다”면서 “그래서 오히려 ‘보이면 돌린다’는 생각으로 치고 있다. 특히 루킹 스트라이크를 가장 많이 당할 수 있는 높은 공에도 적극적으로 나가려고 한다”고 자신만의 대처법을 공개했다.
삼성은 올 시즌 키움 히어로즈와 함께 ‘2약’으로 분류됐다. 김재윤과 임창민 등 FA 불펜 투수들이 보강됐지만, 타선과 마운드의 무게감이 모두 떨어져 5강 진입은 어렵다는 예상이 뒤따랐다. 삼성의 주축 선수가 된 구자욱으로선 꽤나 자존심이 상하는 평가다.
삼성의 주장을 맡고 있는 구자욱은 “우리는 저연차 선수들이 많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플레이를 많이 해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라인업 평균 연령이 낮은 만큼 활기차게 뛰었으면 좋겠다”면서 “사실 나 역시도 어릴 때는 부족함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하루살이처럼 오늘만 산다는 마음으로 뛰고 있다. 악착 같이 뛰는 모습을 보면 후배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산=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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