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르포]국가주석 1년만에 전격교체, 베트남의 권력투쟁

2024. 4. 1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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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서열 1위 쫑 서기장 후계자
역대 최연소 50대 트엉 전 주석
15년전 부패혐의 드러나 실각
현실 경제 중시 개방파의 반격
공안부장 대 여성공산당 지도자
차기 주석 놓고 노선 투쟁 치열
취임 1년만에 전격 사임한 트엉 베트남 전 국가주석

중국의 문이 굳게 닫힌 이후 베트남을 향한 전 세계의 구애가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베트남은 지정학적 위치, 저렴하고 숙련된 인력, 발전성 및 정치적 안정성 등의 요인으로 인해 최고의 투자처로 인정받은 것. 최근엔 노동산업 편중에서 벗어나 최첨단 반도체까지 베트남으로 눈을 돌리는 추세다.

그 때문에 전 세계 지도자들은 대부분 베트남 방문을 희망한다. 지난달 19일부터 22일까지 네덜란드 빌렘 알렉산더 국왕 부부의 베트남 방문이 예고됐다. 그런데 이 방문은 그 직전에 갑작스레 취소됐는데, 베트남의 외교를 총괄하는 권력 서열 2위인 보 반 트엉 국가주석(54)이 3월20일 취임 1년 만에 전격 사임했기 때문이다.

베트남이 한국의 주요한 경제 파트너로 격상된 지 오래지만, 이 나라의 최고지도자를 기억하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여전히 ‘호찌민’이라는 거인의 그림자가 짙기 때문이기도 하고, 1인 지도자를 용납 못 하는 특유의 권력 분점도 원인이 된다. 베트남은 공산당 서기장을 중심으로 국가주석(외교·국방), 총리(행정), 국회의장(입법)이 각자 나라를 대표한다. 이 가운데 최근 1년 사이에 주석이 두 번이나 바뀌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부패와의 전쟁?= 지난해 3월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트엉이 국가주석으로 추대되자 전 세계 언론은 "베트남의 세대교체"라고 흥분했다. 실제로 혁명 원로들이 즐비한 베트남 공산당 중심 체제에서 50대 남부 빈롱성 출신의 거의 무명이나 다를 바 없는 당 선전국 출신 트엉의 깜짝 등장은 충격적이었다. 장수 총리를 거쳐 국가주석에 오른 ‘응우옌 쑤언 푹’의 실각 배경이 부패 혐의라는 것도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당연히 세대교체의 주된 이유를 놓고 ‘반부패 개혁’이라는 해석과 ‘공산당 사상 강화’라는 해석이 엇갈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취임 1년 만에 그의 실각을 부른 사건은 부패 혐의로 알려졌다. 혐의 내용은 15년 전, 그가 꽝응아이성 당서기로 근무하던 시기에 집안의 묘지 정리를 하면서 부동산 재벌 푹손(Phuc son) 그룹으로부터 30억원 정도의 특혜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당의 비밀 조사기관이 정경유착 비리를 조사하던 중 우연히 국가주석의 오래전 비리가 공개된 것이다.

임명 당시 당 상임 서기였던 트엉 주석은 권력서열 1위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79)이 직접 고른 후계자로 알려졌다. 오늘날 베트남 권력의 정점엔 애칭 ‘쫑 서기장’이 굳건히 버티고 있다. 정통 마르크스 레닌주의자로 통하는 그는 최근 일련의 반부패 운동을 진두지휘하는 총사령관이다. 그런데 임명 1년 만에 자신의 후계자가 나가떨어졌으니, 혹시 쫑 서기장의 권력에 균열이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개혁적 수구 vs. 보수적 개혁파= 현재 베트남의 최고 권력층 내부에서는 치열한 권력 쟁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쫑 서기장이 자리한다. 쫑 서기장은 1990년대 본격화한 개혁(도이머이) 정책 이후 느슨해진 국가 기강을 되살리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으며 뚜렷하게 당의 원로이자 실력자로 존경받는 인물이 됐다.

공산당 정통파를 주장하는 그가 주도하는 일련의 정풍(正風) 운동이 정치와 경제에 미치는 후폭풍도 적지 않다는 불만도 높다. 쑤언 푹 전 국가주석을 비롯해 부총리와 십수 명의 장관과 외교관, 1000여 명의 고위 관리들이 부패 혐의로 탄핵당하거나 축출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투자자들은 공산당의 반부패 운동이 행정부의 융통성과 신속성을 저하한다고 우려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10월 빈증성 사법부는 외국인에게 수천 건의 불법 취업 허가증을 발급하는 데 관여한 혐의로 공무원들을 대거 구속했는데, 이로 인해 노동시장의 혼란이 가중됐다는 불만이다.

당에서의 쫑 서기장의 위치는 확고하지만, 이미 세대교체 압력을 강하게 받은 것도 사실이다. 또 이번에 트엉이 실각하면서, 그의 기준에 걸맞은 ‘청렴하고 사상성’을 동시에 갖춘 인재는 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방증된 셈이기도 하다. 일각에선 트엉이 천주교 신자로 바티칸과의 관계 증진을 모색하다가 투철한 공산주의 사상을 의심받은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지만, 종교문제라기보다는 현실적 경제활동을 중시하는 개방파의 반격이라고 보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차기 주석을 노리는 인물= 트엉의 실각 이후 3명의 새로운 국가주석 후보가 거론된다. 브엉 딘 후에(Vuong Dinh Hue·67) 베트남 국회의장과, 트엉 실각을 주도한 또 람(To Lam·67) 공안부 장관과 쯔엉 티 마이(Truong Thi Mai·66) 당중앙 조직부장이다. 국회의장은 이미 국가원수급이기 때문에 세간의 관심은 당의 실권을 쥔 두 명에게 쏠린다. 또 람 공안부장은 우리나라로 따지면 검찰총장이자 경찰청장에 비견되는 인물이고, 마이는 저명한 여성공산당 지도자다.

만일 또 람이 된다면 강성 지도자가 등장하는 셈이고, 마이가 등장한다면 기존의 권력관계를 해치치 않는 선에서 무난한 여성 주석의 등장이라는 효과가 기대된다. 이 때문에 트엉 경질의 진짜 의미의 결정은 그의 후임이 누구로 결정되느냐에 달린 셈이다. 워낙 노선 다툼이 심해서 당분간 주석 자리를 채우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는 결정이 나올 수도 있다.

이 같은 노선과 권력을 둘러싼 치열한 대결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경제에 장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선이 높다. 최근 공산당의 정풍운동이 뚜렷한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30년간의 점진적 개혁이 뚜렷한 성과를 내면서,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구조 변화를 이끌어 왔다는 것이다. 영국의 베트남 경제학자인 애덤 포드는 "전반적으로 스탈린주의 정책이 오랫동안 만연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이머이가 성공한 것은 실용적 리더십, 외부 압력과 기회, 점진주의와 유연성, 실용적인 정책 조합, 경제 개발에 대한 집중, 과거의 실수로부터의 학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즉, 이미 베트남의 국가체제 자체가 개방 체제에 맞게 점진적으로 진화했는데, 쫑 서기장의 ‘반부패 운동’으로 갑작스레 거꾸로 흘러가진 못할 것이란 해석이다. 게다가 오랜 기간 권력 분점의 전통을 이어온 것도 외국 자본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실각 한 달도 안 됐지만 벌써 트엉의 복권 얘기까지 나오고 있으니, 이번 권력 다툼이 베트남식의 ‘모양새 좋은 타협’으로 끝날 수 있다는 전망이 벌써 흘러나오고 있다.

정호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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