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아케다와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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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오신 아버지가 다짜고짜 말씀하십니다.
"얘, 나랑 어디 멀리 갈 데 있으니 짐 싸서 나와라." "아버지, 어디 가는 건데요." "알 필요 없으니 그냥 애비 따라 나와라." 그러고는 차를 타고 어디론지 가서 중간에 차를 버려두고 높은 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교회에선 언제나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가장 소중한 것도 내어놓던 순종의 신앙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아무에게 비명도 못 내고 결박당한 채 죽을 것 같은 끔찍한 아케다가 누구에게나 한두 번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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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오신 아버지가 다짜고짜 말씀하십니다. “얘, 나랑 어디 멀리 갈 데 있으니 짐 싸서 나와라.” “아버지, 어디 가는 건데요.” “알 필요 없으니 그냥 애비 따라 나와라.” 그러고는 차를 타고 어디론지 가서 중간에 차를 버려두고 높은 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숨이 턱에 차오를 때쯤 아버지가 말씀합니다. “이 바위에 누워서 꼼짝 말고 있어라.” 그러더니 갑자기 권총을 꺼내 아들 머리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려고 합니다.
누가 보아도 황당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게 바로 구약 성경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사건입니다. 가족이 가족을 살해하려는 사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식으로도 아름답게 장식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이런 사건을 기록하고 있고, 이런 엄청난 일을 벌인 사람을 ‘믿음의 조상’이라는 명예로운 호칭까지 붙여 부를까요.
교회에선 언제나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가장 소중한 것도 내어놓던 순종의 신앙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순종을 우리도 본받으라고 가르칩니다. 물론 순종이 제사보다 값진 것은 진리입니다. 하지만 자기 가족을 죽이라는 존속살인 명령까지 순종하라고 한다면, 저는 솔직히 그런 신앙이 두렵습니다. 정말 성경은 그런 열광주의적인 신앙을 요구하는 것일까요.
아브라함과 이삭이 처한 이 수수께끼 같은 상황을 거듭 떠올려 봅니다. 유대인은 창세기 22장의 사건을 아케다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아케다’란 히브리어로 ‘묶는다’는 뜻으로 이삭을 결박했다는 내용에서 유래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결박하는 일은 정상이 아닙니다. 결박하는 아버지도 결박당하는 아들도 몸과 마음 모두 자유롭지 못합니다. 창세기는 이런 비정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 이야기를 듣는 청자 역시 그런 비정상적인 현실에 직면할 수 있음을 넌지시 알립니다. 이 비극이 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누구나 살면서 한두 번쯤 도저히 자기 힘으로는 해결하지 못할 비극이나 재앙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피하지도 외면하지도 못해서 그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바로 아케다의 상황입니다. 주어진 선택지라고 해봐야 고작 그 문제와 정면으로 대결해서 견뎌내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대면하는 동안 바닥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 같은 절망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렇게 아무에게 비명도 못 내고 결박당한 채 죽을 것 같은 끔찍한 아케다가 누구에게나 한두 번 찾아옵니다.
그런데 또 가만 생각해 보면, 사람은 행복의 경험을 통해 성장하기도 하지만 실은 비극을 통해 더 큰 지혜를 얻는 것도 진리입니다. 인생에서 만난 비극은 이제껏 지니고 있던 나의 모든 자존감을 송두리째 묶어버립니다. 그러고는 우리가 아무런 해결 능력이 없다는 것, 인생이란 게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지혜를 가르칩니다.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그런 다음 그 비극을 통과하면 이전보다 한 자나 쑥 커버린 내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창세기의 아케다 사건이 가르치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 아닐까요.
여기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박을 풀어헤치는 이가 아브라함이나 이삭이 아니라는 대목입니다. 결박은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만 풀리게 됩니다. 그 후에 비로소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준비하셨다’라며 찬송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혼돈의 자리에도 하나님이 그 곁을 지키셨다는 점입니다. 모리아산의 이야기는 이제 시련 당한 이를 향한 임마누엘 약속으로 들립니다. 잊지 맙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고 자라게 하십니다.
최주훈 목사(중앙루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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