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의 시시각각] 국민의힘 참패가 남긴 것

김현기 2024. 4. 11.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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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법·행정부 파워게임 불보듯 뻔해
앞으로 3년이나 '데드덕' 봐야 하나
연정이건 내각제건 정치 틀 바꿔야

김현기 논설위원

#1 선거는 기세, 인물, 구도의 세 요인으로 결판난다. 한 달 전, 그러니까 3월 초까지만 해도 국민의힘의 2승1무였다. 일단 기세에서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돌풍이 앞섰다. 1승. 민주당의 '비명횡사, 친명횡재' 공천 덕분에 어부지리로 국민의힘 2승. 다만 구도는 '정권심판론'과 '운동권 청산론'의 팽팽한 무승부. 결정적 변화가 생긴 건 3월 중순이었다. 공천이 마무리돼 가는 상황이던 3월 10일, 이른바 '이종섭 도주 대사' 사건이 터졌다. 정부·여당은 이 전 국방부 장관이 출국금지 상태인 줄 정말 몰랐다고 한다. 앞뒤 안 가리고 007작전 하듯 출국시켰다. 무지와 무능이 합체된 결과는 무방비 상태의 지지율 하락. 이때 우물쭈물, 용산 대통령실의 눈치를 본 한동훈의 기세는 꺾이고 말았다. 검찰 재직 때부터 "수사는 기세"란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이번 선거에서도 "기세를 보여 달라"고 했던 게 한동훈. 그 기세가 힘을 못 쓰게 된 순간 바람은 순식간에 이재명으로 방향을 틀었다. 1패. 구도 또한 '운동권 청산'을 외치다 돌연 '이·조 심판' '범죄자 심판'으로 오락가락 엉키다 보니 한 길을 간 야당의 '정권심판론'에 뒤집히고 말았다. 2패. 공천 국면이 진정되자 인물론은 그 나물에 그 밥처럼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무승부. 그래서 국민의힘의 1무2패.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총선 개표상황실에서 관계자의 보고를 받고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뉴스1


#2 참패를 면할 막판 기회는 있었다. 열흘여 전부터 '양김(양문석·김준혁) 효과'로 국힘이 상승세를 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 변곡점에서 찬물을 끼얹은 결정적 한 방은 4월 1일의 윤석열 대통령의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 아니었나 싶다. 99%는 '어디서 감히!'였다. 이런 대통령의 '가르치려 드는' 태도에 지난 대선 때 윤 대통령에게 한 표를 던졌던 중도 지지층이 '막판 뜨악'을 했다고 본다. 생방송으로 담화를 지켜보다 데자뷔를 느낀 장면이 있다. 지난해 3월 윤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의 공동 기자회견장. 일본 기자가 강제징용 해법으로 한국 정부가 제시한 3자 변제안에 관해 물었다. 윤 대통령은 한동안 설명한 뒤 미소를 머금은 채 질문한 기자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부족하면 제가 더 답변해 드릴 수 있는데…." 일본 기자들은 움찔했다. 윤 대통령 본인은 자기 생각이 늘 옳다고 생각하지만(실제 그럴 수도 있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선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한 수 가르치듯 말하는 경우가 많다. "바른 말을 얄밉게 이야기하는 게 한동훈, 틀린 말을 그럴싸하게 이야기하는 게 이재명, 모든 말을 위에서 이야기하는 게 윤석열"이란 항간의 말에는 뼈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이해찬·김부겸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 홍익표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제22대 국회의원선거(총선) 민주당 개표 상황실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보며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3 총선은 끝났다. 역대급 비호감, 역대급 저질 선거였다. 당선된 후보에겐 잔인할지 모르나, 앞으로 4년간 이들을 봐야 할 국민은 고역이다. 냉정하게 보자. 우리가 치른 최근 30년의 총선 중 "이번 선거는 역대 최악"이라고 안 불린 적이 있었던가. 늘 도돌이표였다. 국회의원의 질은 떨어지고 나라 전체가 극단적 진영 대립으로 치달았다. 뉴욕타임스의 지적대로 '단두대 매치'다. 22대 국회도 협치는 기대난망이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 제도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늘 틀어져 있고, 국민이 뽑아 놓은 대통령을 남은 임기 내내 '데드덕'으로 놔두는 게 정답일 순 없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연정을 하건, 내각제로 바꾸건 하루속히 정치의 틀을 바꿔야 한다. 내각제로 가면 몇 개월에 한 번씩 총리를 바꾸게 될 것이라고? 맞다. 한때 일본이 그랬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5년간 한 발짝도 정치가 앞으로 못 나갈 바에야 차라리 바꾸는 게 나을 수 있다. 또 그런 시행착오 속에 정치도, 국민도 그 문제점을 인식하면서 자연스럽게 타협과 대화를 모색하는 법이다. 그걸 잘하는 지도자는 오히려 롱런한다. 독일과 영국이 그랬다. 나아가 연정이나 내각제를 택하고 있는 주요 선진국의 국민성이 공통적으로 타협과 절충에 능한 건 우연일까. 아니다. 모든 것에 우연은 없다.

김현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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