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옥의 세계경제전망] 비트코인 ETF 등 호재에도 금리 인하 지연은 복병
탄력받은 암호화폐 시장, 향후 전망은
브래드 갈링하우스 리플 최고경영자(CEO)가 예상하는 올해 암호화폐 시장의 시가총액이다. 갈링하우스는 지난 8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암호화폐 시장 전체 가치가 두배로 상승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4일 기준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약 2조6000억 달러(약 3520조원)다. 갈링하우스의 전망대로면 암호화폐 시가총액이 5조2000억 달러에 이르게 된다고 CNBC는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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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새 140% 상승한 비트코인
현물 ETF로 19조원 유입 전망
네번째 반감기, 가격상승 기대
중국 투자자 가세도 긍정 요인
미국의 높은 물가, 경기 호조로
긴축 완화 미뤄지면 부정 영향
」
혹독한 겨울을 견딘 암호화폐 시장에 봄이 왔다. 2021년 3조 달러(약 4062조원)를 웃돌았던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크립토 윈터(Crypto winter·장기 약세장)’가 도래한 2022년 8300억 달러(약 1124조원)까지 감소했다. 그렇게 암흑기를 보낸 암호화폐 시장은 지난 1월 1조8600억 달러(약 2518조원)의 시가총액을 기록하며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제는 크립토 윈터 국면을 넘어 전환점에 섰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3월 비트코인 거래액, 1경2321조원
암호화폐 시장의 상승 흐름을 주도하는 건 대장인 비트코인이다. 지난 1년 동안 140% 이상 오르며, 지난달 14일 7만3797달러(약 9992만원)로 사상 최고 가격을 찍었다. 이후 지루한 7만 달러 공방전을 벌이다 지난 8일 다시 7만2000달러(약 9749만원) 고지를 밟았다.
비실대던 비트코인이 상승 탄력을 받게 된 건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등장하면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지난 1월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하며 11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상장됐다. ETF를 통한 간접투자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트코인이 제도권 금융의 영역에 발을 디디며 기관투자자의 자금이 유입되는 길이 열렸다. 거래는 급증했다. 가상자산 데이터 제공업체인 CC데이터에 따르면 지난달 비트코인 현물 및 파생상품 거래금액은 9조1000억 달러(약 1경 2321조원)를 기록했다. 현물 거래금액은 2조9400억 달러(약 3981조원)로 2021년 5월 이후 월간 거래액 최대치를 넘어섰다.
현물 ETF는 비트코인 시장의 판도를 바꿀 메가톤급 변수다. 자산배분 펀드나 퇴직연금 등 상당한 잠재 수요가 있는 만큼, 기관투자자의 자본 유입을 통해 비트코인 가격이 오를 수 있어서다. 갤럭시 리서치는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으로 올해 144억 달러(약 19조원)의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추정하며, 투자 여력이 있는 기관투자자의 약 10%가 자산 포트폴리오 내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 투자 비중을 1% 가량 할당할 것으로 예상했다.
암호화폐 전문 금융서비스 기업인 갤럭시 디지털의 마이크 노보그라츠 CEO는 지난달 26일 실적 콘퍼런스에서 “비트코인 ETF를 통해 약 80조 달러(약 10경 8320조원)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 자금이 암호화폐 시장에 유입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보그라츠는 “암호화폐 시장에 들어오는 베이비붐 세대의 막대한 자금은 암호화폐 채택률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며 “비트코인의 미래가 상당히 밝아 보인다”고 했다.
비트코인을 향한 자본 유입 통로도 더 넓어질 전망이다. 미국에 이어 브라질과 영국·홍콩 등에서도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한 논의에 속도가 붙고, 이후 비트코인 커버드콜 ETF 등 다양한 상품도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극단적인 낙관론도 등장했다. 캐시 우드 아크 인베스트먼트 CEO는 지난달 2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비트코인 투자자의 날 콘퍼런스에서 비트코인을 금융 수퍼고속도로에 비유하며 향후 350만 달러(약 47억원)를 돌파할 것이라고 밝혔다. 암호화폐 시장에 기관투자자가 더 많이 진입할 경우 수학적인 관점에서 비트코인이 이 가격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수퍼 장밋빛 전망에도 우선 비트코인 가격이 150만 달러(약 20억원)부터 돌파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이긴 했다.
반감기로 연간 공급량 15조 감소
ETF가 불붙인 상승 동력에 기름을 붓는 건 다가오는 반감기다. 반감기는 채굴에 성공하는 블록마다 지급되는 비트코인 채굴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현상이다. 비트코인 수량을 2100만개로 제한하기 위한 것으로 비트코인 블록체인의 21만 블록째마다 발생한다. 그동안 3번의 반감기가 있었고, 4번째 반감기(84만 번째 블록)는 오는 18~22일 사이로 예상된다. 이번 반감기를 거치면 하루에 채굴되는 비트코인 개수가 900개에서 450개로 절반으로 줄어든다. 반감기 이후 채굴량 증가 속도가 느려지는 것이다.
공급 감소는 가격 상승 요인이다. ‘반감기=가격 상승’의 공식으로 이어지는 건 학습효과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과거 세 차례 반감기를 거치며 비트코인 가격은 12~18개월 이후 단기 고점에 도달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2년 11월 첫 번째 반감기 이후 단기 고점이었던 2013년 12월까지 상승률은 9073%에 달했다. 두 번째 반감기인 2016년 7월에서 단기 고점인 2017년 12월까지는 2883%, 세 번째 반감기인 2020년 5월에서 단기 고점인 2021년 11월까지 상승률은 688%였다.
코인마켓캡크립토뉴스는 “비트코인 가격을 7만 달러 수준으로 가정할 때 이번 반감기 영향력은 달러 기준으로 3배 더 강력해질 전망”이라며 “하루에 약 3200만 달러(약 433억원), 연간 110억 달러(약 15조원)에 달하는 공급량이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예정된 이벤트인 데다 그동안 누적된 효과로 인해 상승 폭은 이전 반감기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홍성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반감기가 약 4년 간격으로 33번 일어난다는 건 비트코인 탄생 시점부터 예정된 만큼 시장은 이를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을 것”이라며 “이번 반감기 전까지 비트코인 93.75%가 채굴될 예정인 만큼 기존 유통량과 비교해 채굴 속도 변화의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시적으로는 반감기가 비트코인 가격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JP모건에 따르면 반감기로 채굴 비용이 배로 늘어나게 되는 만큼 채굴업자 중 생산 비용이 많이 들거나 장비가 비효율적인 기업은 반감기 이후 시장에서 퇴출당할 가능성이 높고 해시레이트(채굴 속도)가 20% 하락할 수 있다. 수익성 악화가 예상되는 채굴업체가 반감기 이전에 비트코인을 선제적으로 매도할 수 있는 만큼 일시적인 가격 하락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암호화폐, 헤지 가능한 중립 자산
비트코인 상승세가 불을 붙인 암호화폐 시장의 긍정적 흐름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위험 헤지를 위한 자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서다. 임민호 신영증권 연구원은 “대규모 재정정책과 신용 및 지정학 위험과 관련해 헤지가 가능한 금이나 비트코인 등 중립적 성격의 자산이 부각하고 있다”며 “신흥국 중심으로 가상자산 채택의 가속화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더리움 현물 ETF 승인 여부도 암호화폐 투자자가 관심 있게 지켜보는 이벤트다. 이더리움의 증권성 여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 만큼 다음달 23일 SEC의 심사에서 승인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암호화폐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으로 돌아선 데다,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암호화폐에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의 교체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향후 미국의 정권 교체 여부가 암호화폐 시장의 분기점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국도 암호화폐 시장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암호화폐에 대한 강력한 규제에 나섰던 중국이 홍콩을 중심으로 디지털 자산 산업을 양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서다. 올해 2분기 홍콩 증시에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이 예상된다. 신영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암호화폐 거래가 금지된 중국에서는 장외거래나 홍콩을 통한 우회 거래가 활발하고, 장외 거래 규모는 약 860억 달러(약 116조원)로 추정된다. 임민호 연구원은 “최근 주식 시장 하락과 주택 시장 붕괴로 중국 및 홍콩 투자자의 해외 투자 수요가 높아졌다”며 “연내 홍콩을 통한 중국 본토 투자자의 자금 유입 가속화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Fed 긴축 때 암호화폐 급락
하지만 미국의 금리 인하 지연 가능성이 부각하며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시장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물가 수준이 여전히 높고 양호한 경기 상황이 이어지며 미국의 6월 금리 인하 가능성이 낮아지자 지난 8일 미 10년물 국채 금리는 4.424%를 기록했다. 달러 값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인다. 암호화폐에는 부정적인 흐름이다.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돈을 풀며 긴축 완화에 나섰던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밟으며 돈줄을 죈 2022년 암호화폐 가격은 급락했다.
가상화폐 자산운용사인 그레이스케일은 “과거 암호화폐 사이클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Fed의 통화 정책과 경제 상황과 같은 거시 경제 요인이 암호화폐 자산 가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이 높게 유지되고 Fed가 금리 인하를 늦추면 비트코인 가치에는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현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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