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딸도, 외교도, 핵무기도…김정은의 ‘날 좀 보소’ 전략
#1. 북한은 1991년 12월 24일 김정일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했다. 당시 헌법은 “주석은 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되며 국가의 일체 무력을 지휘통솔한다”(93조)고 돼 있었다. 김일성이 주석이었으니 헌법대로라면 김정일의 최고사령관 등극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위헌인 셈이다. 북한은 1992년 4월이 돼서야 헌법 수정을 통해 관련 조항을 삭제했다.
#2.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이듬해인 2013년 6월 19일 북한의 주민들의 삶의 지침이자 기독교의 십계명과 유사한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을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으로 수정했다. 수정본은 ‘김일성’만을 언급했던 기존 ‘원칙’에 김정일과 김 위원장 본인을 뜻하는 ‘당 중앙’이라는 표현을 추가했다. 김 위원장이 집권 이후 가장 먼저 자신의 권위에 대한 무조건·절대 복종을 강제한 규정을 손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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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권위 추구 선대와는 차이
짧은 후계자 경험에 딸 조기등판
성과 없을 땐 권위 손상 불가피
대화의 길 복귀하는 것이 현명
」
북한이 최고지도자를 신(神)적, 초헌법적인 존재로 여기는 사례다. 북한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지만 ‘혁명’의 완성을 위해선 오류가 없는 ‘수령’의 영도가 필수라는 논리를 편다. 이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최고지도자의 결정과 말을 무조건 지켜야 할 ‘신조’로 여기도록 강요받는다.
김일성 한 번도 못 만난 김정은
그런데 ‘김정은의 북한’은 김일성·김정일 때와 뭔가 다르다. 김 위원장이 공개석상에 어린 딸을 데리고 등장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김 위원장은 2022년 11월 딸을 처음으로 공개한 이후 26차례(북한 매체 발표 기준)나 자신의 공개활동에 동행토록 했다. 김정은 부녀가 함께한 장소는 미사일 발사, 열병식, 경제 현장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김주애로 알려진 딸이 처음 등장했을 때 북한 매체는 “사랑하는 자제분”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시간이 지나며 주애에 대한 수식어는 “존귀하신”, “샛별 여장군” 등으로 격상됐다. 부인은 물론 자식들을 공개하지 않았던 김정일 시대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후계 작업의 일환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아를 선호하는 성향이 강한 북한에서 딸에게, 그것도 10살을 갓 넘긴 ‘아이’를 두고 후계자 얘기가 나오는 건 후계 작업의 사실 여부를 떠나 이례적인 현상이다.
이런 모습은 김 위원장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은 김정일의 3남이다. 또 김정일의 정실부인(김영숙)이 아닌 제주도 출신의 무용가 고용희의 둘째 아들이기도 하다. 혼외자의 아들이었던 김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이 살아있을 때 한 번도 직접 만나 보지 못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에겐 출생의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32세의 나이에 후계자에 오른 김정일이 22년 동안 ‘수령의 지위와 역할이 같은’ 후계자 생활을 한 것과 달리 김정은 위원장의 후계자 기간은 3년 남짓에 불과하다. 당연히 그는 북한 간부들이나 주민들에게 낯선 지도자였다. 세습 체제인 북한에서 김 위원장은 이런 경험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딸을 조기에 등판시켜 조명을 받으려는 의도를 갖고 있을 수 있다.
김정은의 정상회담 콤플렉스?
김 위원장의 콤플렉스는 국제무대에서도 드러난다. 집권 이후 국내 정치에 집중했던 김 위원장이 외부로 발길을 돌린 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2018년이다. 김 위원장은 그해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이듬해 6월 30일 판문점 북미 정상 접촉까지 14개월 동안 한·미 정상과 각각 3차례씩 만났다. 눈에 띄는 건 김 위원장이 이 기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5차례 회담을 했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이 시 주석을 만난 시점은 한국, 미국 대통령과 만나기 직전이나 직후였다. 김 위원장이 서방 지도자를 만나기 전이나 후에 시 주석과 상의했을 것이란 합리적 추론이 가능한 대목인데, 이쯤 되면 협의가 아니라 의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과 ‘세기의 결판’이 불발하며 결점이 없는 수령의 이미지는 훼손되고 말았다. 이 때문인지 북한은 최근 러시아와 선(線)을 넘는 밀착에 나서고 있다. 10일 자오러지(趙樂際) 중국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국회의장 격)이 방북했지만 북·중 정상회담으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협력관계는 분명하지만, 최근 북한은 중·러의 경쟁 심리를 자극하려는 듯하다.
핵 개발 사실 드러내며 러브콜
핵과 관련한 행보 역시 마찬가지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 귀기(鬼氣)가 서린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핵 개발과 관련해선 ‘친절’하게 ‘설명’하는 모습이다. 핵실험장 내부 구조를 북한 매체를 통해 공개하더니 2018년엔 정밀지도에 핵실험장 위치를 표시해 국내외 언론에 알렸다. 그리고 2022년엔 핵 선제사용 5개 조건을 담은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라는 핵 무력 정책법을 제정해 공개했다. 북한은 또 2013년 2월 3차 핵실험 이후 핵 다종화에 성공했다며 핵무기 보유를 주장한 이후에도 ▶핵무기 완성(2017년 12월) ▶모든 미사일에 핵탄두 장착 가능(지난 2일) 등 핵 카드를 지속해서 꺼내 들고 있다. “자위력 차원에서 핵을 개발했다”는 북한의 주장과 달리 “우리(북)가 핵을 가지고 있으니 좀 보아 달라”는 러브콜이 아닐까.
김 위원장은 올해로 40세가 됐다. 집권 12년이 지났으니 4년제 대통령제라면 4선째 지도자인 셈이다. 지도자의 임기가 정해져 있는 일반적인 국가와 달리 종신 지도자인 김 위원장은 장기전을 구상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부 자원이 부족한 북한이 경제적으로 장기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책의 잦은 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선 임기가 있는 상대 국가의 지도자와 담판이나 협상이 불가피하다. 성과가 없다면 최고지도자의 무결점 권위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에게 또 다른 콤플렉스가 생길 경우 경직된 북한 체제의 무리수로 이어져 한반도의 안보환경은 요동치기 마련이다. 북한이 2017년 핵 보유 선언 이후 대화의 길로 나왔듯 지난 2일 또 다른 핵 보유 선언을 한 북한이 ‘어게인 2017년’을 선택하길 기대해 본다.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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