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호의 법과 삶] 의료 발전 가로막는 낡은 의료법

2024. 4. 11.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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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법학박사

법은 학문과 산업발전에 필수요소다. 현대사회가 비약적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법이 사회구성원들에게 예측 가능성을 부여했고, 준수할 때 많은 혜택을 주었기 때문이다. 의료법 역시 의학과 의료산업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과거에는 누구나 해왔던 의료행위는 지금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간호사에게만 허용됐다. 국민건강보험법이 생기면서 진료비를 100% 보장받게 되면서 의료산업은 비약적 성장을 했다. 우리나라 100대 기업에 대형병원이 드는 이유다.

그러나 이제 의료법을 정비 보완할 때가 됐다. 의료법상 의료인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간호사 5개로 나뉜다.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 치과의사는 치과 의료와 구강 보건지도,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 조산사는 조산과 임산부 및 신생아에 대한 보건과 양호지도를 맡는다. 간호사는 환자의 간호요구에 대한 관찰, 자료수집, 간호판단과 함께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진료보조 업무를 한다고 규정한다.

「 다양성·협업 도외시 규제 치중
환자 중심 의료 서비스 어렵게
지나친 의사 중심 체계 벗어나
5개 의료 직무 개별 입법 필요

김지윤 기자

그러나 의학, 임상 의료, 의료장비, AI 기술 발전으로 각 전문 영역의 구별이 모호해지고 협업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현행 의료법은 오히려 의학과 의료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외국에서는 현대 의학의 한계에 대한 인식 아래, 의학과 한의학이 겹치는 대체의학 연구와 인공지능에 의한 진단 솔루션 기술 개발 등이 활발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의료법상 무면허 의료 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연구 및 임상 적용이 막혀 있다. 임상 의료에서 전문 간호사에 의한 수술보조는 이미 오래전부터 의료 관행으로 시행됐고 큰 문제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료법상 명문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무면허 의료 행위로 고발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PA(진료지원) 간호사가 할 수 있는 98개의 업무 범위를 정했으나 법적 뒷받침이 필요한 상황이다.

질병 치료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내·외·산·소아과 등 전문과 의사들은 다시 순환기·신장·소화기·혈액종양내과 등으로 세분화했다. 치과의사도 구강악안면외과·보철과·교정과 등으로, 한의사는 한방내과·한방신경정신과·침구과 등으로, 간호사는 마취전문·종양전문·정신전문 등으로 세분된다. 의사들끼리는 물론 의료기사, 약사 같은 보건의료인도 같이 참여하는 다학제간 협업과 전문적·집중적 치료가 필수화하는 추세다. 이때 각 업무 영역은 칼로 무 자르듯 나뉘지 않으며, 나뉘어서도 안 된다. 서로 영역 침범을 주장하거나, 전문분야가 아니라는 이유로 치료를 미루면 환자만 힘들어진다.

우리나라는 의학의 다양성과 협업 필요성 등을 도외시한 채 의료법 단일법으로 의료업과 의료행위를 규제해 왔다. 의료행위 개념을 의사 중심으로 해석하여 의학, 치의학, 한의학, 간호학의 발전을 저해했다. 대법원은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하여 의사 중심 관점에서 벗어나 무죄를 선고하는 경향을 보인다. 일례로 대법원은 치과 의사가 치과 환자에게 눈가와 미간에 보톡스를 시술했다는 이유로 무면허 의료행위로 기소된 사건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보톡스 시술이 이미 치과에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사고 위험이 높지 않으며, 전문 직역에 대한 체계적 교육 및 검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의료 발전과 의료서비스 수준 향상을 위하여 의료소비자의 선택 가능성을 널리 열어두는 방향으로 관련 법률 규정을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인 것이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최근 소아 예방 접종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한의 의료기술의 발전,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자의 인식 변화 등에 비추어 이를 허용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2025년부터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어 요양과 돌봄 영역에서 의료 수요가 빠르게 늘 전망이다. 모든 초고령 환자를 요양병원이나 시설에 입원시켜 임종할 때까지 집단 치료를 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하는 범죄 행위다. 입원 중심에서 재택 진료, 재택 임종 등 환자 중심의 진료 체계로 바꾸어야 한다. 독일처럼 가정간호사가 재택 환자를 찾아가 의사 처방에 따라 환자에 대한 맞춤형 간호를 하는 독립 개원 가정간호센터 제도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의료인의 숫자가 70만명을 넘어선 지금, 의료법 하나로 규율하는 것은 한계를 넘었다. 일본·독일 등 외국에서처럼 의료법은 의료기관 업무를 규정하고, 의사법·치과의사법·한의사법·조산사법·간호사법을 개별 입법하여 전문의료인 간 업무 영역과 협업관계를 명시해야 한다. 협진과 공동 연구로 의학과 의료를 발전시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환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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