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실학산책] 한 사람 한 사람이 우주의 주인이다
지구 위에는 수십억 명의 인구가 지역별로 국가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수십억 인구 중에서 단 한 사람쯤이야 백사장의 모래알 하나처럼 무가치 무의미하게 여겨버릴 수 있으나, 따지고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우주의 주인공이자 우주 전체일 수도 있다. 그렇게 인간 한 사람이 우주의 존재 이유고 우주 자체라는 것이다. 옛날의 책을 읽어 보면 인간 한 사람의 높은 가치를 이야기한 내용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고경(古經)에도 거론돼 있지만, 어진 이들인 율곡 이이나 다산 정약용도 사람의 가치를 거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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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 목민심서 48권 저술한 뒤
“백성 하나에라도 도움 됐으면”
비록 천하를 얻을 수 있다 해도
단 한 명의 목숨 해쳐서는 안 돼
」
“백성 하나라도 혜택 보기를”
다산은 『목민심서』 48권이라는 방대한 저술을 마치고, 그 책에 대한 설명을 ‘자찬묘지명’이라는 자서전 격인 글에다 해놓았다. “이 책을 목민관들에게 주어서 혹여 백성 ‘한 사람’이라도 혜택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바가 나의 뜻이다”고 말했다. ‘일민(一民)’이라도 그 책으로 인해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책을 저술한 보람으로 삼겠다면서 백성 한 사람의 위대한 가치를 언급했다.
또 ‘시이자가계(示二子家誡)’라는 글에서 “군자가 책을 펴내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것은 단 한 사람이라도 그 진가를 알아주기를 바라서이다. 나머지 세상 사람들이 온통 욕해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책을 저술해 단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서 ‘일인(一人)’의 귀중함을 다시 또 말했다. 사람 한 사람이 세상과 우주의 주인공이자 그 자체임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맹자는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장에서 제자들과 토론하면서 “한 가지라도 불의를 행하고, 한 사람이라도 죄 없는 사람을 죽인다면 천하를 얻을 수 있을지라도 해서는 안 된다(行一不義 殺一不辜而得天下 皆不爲也)”고 했다. 인간이라면 해서는 안 될 일이 단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고 한 것이다. 율곡은 이를 그대로 인용해 『격몽요결』이라는 책에서 “죄 없는 단 한 사람만 죽이면 천하를 얻을 수 있을지라도 그런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지녀야만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맹자·율곡·다산은 한 사람의 존귀한 가치를 넉넉하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공자의 후학들이 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개명한 시대에 벌어지는 전쟁
단 한 사람의 생명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르자, 이러한 개명(開明)한 시대에 뭇 생명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 버리는 전쟁을 목격하면서 무력한 한 인간의 아픔이 견디기 어렵다. 러시아·우크라이나·이스라엘 등에서 벌어지는 현대 전쟁을 TV로 목격하면서, 이런 세상이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인가를 놓고 비통함과 회의에 정신이 흔들린다. 우주 자체인 한 인간의 생명, 그런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보살펴 줄 막중한 책임이 바로 국가에 있다. 그런 국가가 전쟁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전쟁을 일으켜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게 하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인간이 할 일이겠는가.
얼마 전 영화 ‘서울의 봄’을 관람했다. 국토를 방위할 국군들이 기본 책무를 던져버리고 쿠데타를 일으켜 반(反)쿠데타 군인들에게 무차별 발포해 수많은 생명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보아야 했다. 그들은 또 5·18에 광주로 내려가 민주주의를 하자고 외치는 수많은 양민을 학살했다. 우주인 생명을 그렇게도 무참히 학살했지만, 이들 신군부 세력 대부분은 인과응보도 지켜지지 않은 채 천수를 다했다. 이런 일이 현대에 있었던 우리의 역사였다.
진리는 늦게라도 도착하는 기차
그러나 길게 보면 하늘은 결코 눈을 감지 않는다. 인과응보도 늦을 수는 있어도 반드시 오고야 만다. 한 사람의 목숨, 전태일 열사, 박종철 열사, 이한열 열사 등 그들 우주의 무너짐에서 우리의 민주화는 앞당겨지지 않았는가. 해병대 채모 상병의 억울한 죽음, 그 우주의 무너짐 앞에 국가의 책임은 없다면서 일어나는 요즘의 실상을 보노라면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반드시 폭발하고야 말 화약고를 끝까지 숨겨보려고 하는 온갖 작태가 노출되면서 다시 한번 우주 자체인 한 사람의 생명은 참으로 귀중하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영화 ‘서울의 봄’으로 돌아가자. 반란군들과 반쿠데타 군인들과의 충돌에서 역시 옳은 군인들은 반쿠데타 군인들이었다. 반란군 지도자에게 반쿠데타 지도자가 외치던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너는 대한민국의 군인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다”라고 외치던 목소리.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군인은 군인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라는 외침은 무고한 사람 죽이는 일이 얼마나 큰 죄악인가를 상기시키는 역사에 길이 남을 외침이라고 여겨진다.
진리는 늦게라도 끝내 도착하는 기차다. 한 인간의 가치를 부정한 그들에게 맹자·율곡·다산은 절대로 눈감지 않을 것이다.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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