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호의 시선] 총선 끝나도 이재명-조국 사법리스크는 사라지지 않는다

강찬호 2024. 4. 11.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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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 논설위원

1972년 11월 미 대선은 공화당 재선 후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압승이었다. 50개 주중 49개 주를 싹쓸이해 선거인단 537명 중 520명을 독식했다. 적수인 민주당 후보 조지 맥거번의 고향 사우스다코타까지 차지했다. 맥거번은 충격으로 영국 망명 계획까지 세웠을 만큼 궤멸했다.

반년 전 워싱턴포스트의 특종으로 불거진 ‘워터게이트’는 닉슨 태풍에 묻혀 뉴스 화면에서 사라졌다. 워터게이트가 뭔지조차 모르는 미국인이 50%를 넘었다. 의기양양해진 닉슨 행정부는 “국민이 닉슨의 무고함을 인정한 것”이라며 워싱턴포스트를 ‘매카시즘’이라 맹공했다.

「 조국, 내년 2월 내 3심 선고 전망
이재명도 세 가지 재판 결과 주목
법원, 흔들림 없이 ‘법대로’해야

그럼에도 워터게이트에 대한 미 법원의 재판은 흔들림 없이 진행됐다. 닉슨 압승 두 달만인 1973년 1월 존 시리카 연방 판사는 한밤중 민주당 사무실에 침입한 워터게이트 주범 5명에게 법정 최고형인 30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닉슨 행정부가 권력을 동원해 이들의 입을 막을 것을 꿰뚫어본 강수였다. 경악한 5명은 감형을 받기 위해 “‘윗선’이 도청기 설치를 지시해 침입한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사장될 뻔했던 워터게이트는 이 판결로 재부상했고, 탄핵 위기에 몰린 닉슨은 1년 반 뒤 사임하고 만다. 시리카 판사는 ‘법정 최고형 존’이란 별명과 함께 타임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 대선에 압승한 대통령의 파워에 굴하지 않고 ‘법대로’만 직진한 판사 덕분에 민주주의의 이정표가 된 워터게이트 신화가 탄생한 것이다.

대한민국 야권을 대표하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역시 총선 와중에 법원의 재판을 받아왔다. 한데 두 사람을 대하는 법원의 행태를 보면 상식 밖인 경우가 많다. 대통령 지지율이 낮고 ‘개딸’의 기세가 등등하니 두 사람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리카 판사가 봤다면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하다.

우선 조국 대표는 지난 2월 8일 2심에서 뇌물수수·직권남용 등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는데도 구속되지 않았다. 1·2심 다 실형을 선고받고도 구속을 면하고, 당을 창당해 금배지까지 넘보는 건 일반인은 상상조차 못 할 일이다. 2심 김우수 재판장은 “(조 대표가)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면서도 방어권 보장을 위해 구속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3심은 피고인이 방어권을 행사할 필요가 특별히 없다. 피고인이 불출석한 가운데 그가 낸 상고 이유서를 대법관들이 검토하고 판결을 내리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러니 “김 판사야말로 법원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한 사람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제 국민의 눈은 대법원을 향하고 있다. 1·2심 다 유죄 판단에다 양형까지 같은 만큼 법률심인 3심에서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극히 작다는 게 법조계 관측이다. 하지만 예상 밖의 판결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3심 확정까지는 길면 1년이 걸릴 전망이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3심 처리에 평균 11.7개월이 걸렸기 때문이다.

대장동 게이트와 선거법 위반, 검사 사칭 위증 교사 혐의 등으로 세 개의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에게도 법원은 ‘특별 대우’를 해 구설에 올랐다.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부터 논란이었다. 또 선거법 사건은 복잡한 내용도 아닌데도 재판이 16개월이나 늘어진 끝에 재판장이 사표를 내는 바람에 총선 전 1심 선고가 불발됐다. 수사기록이 간단해 8~9월께 1심 선고가 점쳐져 온 위증교사 재판도 지연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한다.

법원은 이제라도 두 사람에 대해 오직 법리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총선에서 이기건 지건 사법리스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닉슨에 압승을 안겨준 미국인들은 “FBI(연방수사국)가 워터게이트에 끼어들지 못하게 해”란 닉슨의 말이 녹음된 테이프를 법정에 제출하라는 시리카 판사의 결정을 닉슨이 거부하자 대선 1년도 안 돼 그의 탄핵에 찬성하며 등을 돌렸다. 내가 뽑은 사람이라도 법을 어기거나 법원을 능멸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건 미국 유권자나 한국 유권자나 똑같은 생각일 것이다.

우리 민주당은 워터게이트를 언급하기 좋아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참사’를 비판하며 “워터게이트 닉슨을 거울삼으라”고 한 성명(2022년 10월 2일)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보수 공화당 대통령이 진보 민주당 의회의 탄핵 압박에 굴복해 사임한 사건이기 때문일 터다. 그러나 선거에서 압승한 세력의 눈치를 보지 않은 ‘법대로’ 판사가 없었다면 워터게이트는 실현될 수 없었을 것임도 명심해야 한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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