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호 3, 4번부터?" 끝까지 헷갈린 '51.7㎝' 역대 최장 용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본 투표 날인 10일 오전 투표소에는 가족과 함께 참정권을 행사하러 온 유권자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아내와 함께 서울 은평구 신사초등학교에서 투표를 마친 김정웅(90)씨는 지팡이로 계단을 한 칸씩 짚으며 내려왔다. 김씨는 “귀도 잘 안 들리고 몸도 불편하지만 살기 좋은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주권을 행사하러 왔다”고 말했다.
한창수(39)씨도 이날 이른 아침부터 아내, 두 자녀와 인천중앙도서관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았다. 미취학 아동인 아들 한지섭(5)군의 손을 잡고 기표소에 들어간 한씨는 “투표가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행위인지 알려주려고 교육 차원에서 아이들을 데려왔다”고 말했다. 아빠를 따라 나온 한군은 “나중에 커서 도장을 꾹꾹 찍고 싶어요. 착하고 똑똑한 사람이 뽑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고3 유권자도 이날 오전 기억에 남을 생애 첫 투표를 마쳤다. 인천 남동구에 거주하는 김재하(18)군은 “올 때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도장을 찍으려니 엄숙해졌다”고 말했다. 부모님과 투표소를 찾은 문경태(19)씨는 “어른이 되고 처음으로 투표했는데 한 표에 책임감이 느껴졌다”며 “제가 찍은 의원과 정당이 지역 발전에 힘써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례적으로 긴 비례대표 투표용지 탓에 혼선을 빚는 유권자도 적지 않았다. 이번 총선에선 비례대표에 38개 정당이 출마하면서 용지가 51.7㎝로 역대 가장 길다. 의석수가 가장 많은 더불어민주당과 두 번째로 많은 국민의힘이 각각 위성비례정당을 창당하고 자체적으론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으면서 기호 1번과 2번이 없어 헷갈려 하는 유권자가 많았다. 20개월 쌍둥이와 투표소를 찾은 30대 정모씨는 “이름도 분간이 안 되는 당이 많아 혼란스러웠다”며 “어르신들은 안에서 구분을 어떻게 하냐고 계속 물어보시더라”고 말했다.
전국 각지에 설치된 이색 투표소도 눈길을 끌었다. 서울 관악구 행운동에는 한 빌라 1층 주차장에 투표소가 차려져 유권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날 주차장에서 투표한 김모(28)씨는 “근처 주민센터는 도보 15분 거리인데 이곳은 1분밖에 걸리지 않아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주민센터, 공공기관 등 시설이 여의치 않은 경우 접근성과 편의성을 고려해 민간 건물에 투표소를 설치할 수 있다. 전남 영광군에는 김치 가공 공장, 순천에는 태권도장, 서울 서대문구에는 커피전문점에 투표소가 각각 마련됐다. 선관위 관계자는 “민간 시설에 투표소를 설치하더라도 미리 인쇄해 놓은 투표용지를 교부하기 때문에 전산적 보안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투표소에서 유권자가 경찰에 붙잡히는 일도 발생했다. 전북 전주 완산경찰서는 투표소 내에서 촬영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A씨를 임의동행했다고 밝혔다. A씨는 이날 오전 8시 26분쯤 전주시 덕진구의 한 투표소에 촬영하며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한 혐의를 받는다.
이날 오후 3시 기준 22대 총선 투표율은 59.3%로 4년 전 21대 총선(56.5%)보다 2.8%포인트 높았고 2022년 3·9 대선(68.1%)보단 9.2%포인트 낮았다. 2020년 4·15 총선 최종 투표율은 66.2%였다.
이영근·이보람·이찬규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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