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입자' 존재 예견했던 '무신론자' 피터 힉스 교수 별세

서유진 2024. 4. 1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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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의 존재를 예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던 영국의 이론 물리학자 피터 힉스 에든버러대 명예교수가 8일(현지시간) 별세했다. 94세. 에든버러대는 9일 성명에서 "힉스 교수가 짧게 질환을 앓은 뒤, 자택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피터 매티슨 에든버러대 부총장은 "힉스는 훌륭한 사람이었고 이 세상에 대한 지식을 확장해준 재능있는 과학자였다"며 "그의 유산은 향후 여러 세대에게 영감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기렸다.

우주 탄생의 원리를 설명하는 힉스 입자를 예견한 공로로 201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던 피터 힉스 교수가 지난 8일 94세로 세상을 떠났다. 2013년 12월 11일 런던 과학 박물관에서 촬영된 피터 힉스 교수의 사진. AP=연합뉴스

힉스 교수는 1964년 '힉스 보존(boson·기본입자)'의 존재를 예측했다. 힉스 입자는 우주 탄생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가설 중 가장 유력한 표준 모형을 설명하기 위해 정의된 입자다. 이에 따르면 우주 만물은 12개 소립자로 구성되는데, 소립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가 바로 힉스 입자다.

피터 힉스 교수가 2013년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에서 열린 노벨상 연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힉스 교수가 이런 메커니즘을 제시한 뒤 반세기가 지나서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실험(2013년)을 통해 힉스 입자의 존재가 공식 확인됐다. 힉스 입자의 존재가 확인됐을 당시 83세였던 힉스 교수는 CERN의 발표 후 "내 평생 입자가 증명되는 건 기대도 못 했다. 옳다는 건 참 좋은 일"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같은 공로로 같은 해 힉스 교수는 프랑수아 앙글레르 브뤼셀 자유대 명예교수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가디언에 따르면 소란스러운 걸 싫어했던 힉스는 발표 당일 언론의 관심을 피해 집을 비웠고 당시 휴대전화도 없어서 뒤늦게 수상 소식을 접했다.

이 입자는 발견과 측정이 극도로 어려웠던 탓에 처음엔 '빌어먹을(Goddamn) 입자'로 불리다가 '신(God)의 입자'로 바뀌어 불리게 됐다. 그런데 무신론자인 힉스는 이 표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한다.

힉스 입자는 한국계 미국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와 인연이 있다. 이 박사가 1972년 '힉스 입자에 미치는 강력(강한 핵력)의 영향'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용어가 굳어졌다. 정작 힉스는 자기 이름인 '힉스'만 붙으면 다른 이들의 공로가 무시된다는 생각에 이를 미안하게 여겼다고 한다.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동료 과학자와 내기하면서 힉스 입자가 없다는 쪽에 돈을 걸었다가 100달러를 잃었다는 일화도 있다. 호킹 박사는 나중에 입자 발견 소식을 듣고 "힉스 교수가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물리학계 샐린저…수줍음 많은 은둔형 학자


힉스는 1929년 잉글랜드 북서부 뉴캐슬에서 태어났다. BBC 음향 기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자주 했고 어릴 때 천식을 앓아 초등학교 교육을 제때 받지 못했다. 하지만 명석했던 그는 킹스 칼리지 런던(KCL)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당시 교수진은 아직 답을 발견하지 못한 어려운 물리학 문제들을 시험에 냈는데, 힉스는 6시간 걸려 답안지를 작성해냈다. 에든버러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 주로 에든버러대에서 연구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겸손하고 수줍음 많은 그를 "물리학계의 J.D. 샐린저"로 칭했다.『호밀밭의 파수꾼』 저자인 샐린저가 ‘은둔의 작가’로 불린 것에 빗댄 것이다. 그는 떠들썩한 게 싫어 1999년 작위를 거절한 적도 있다. 2013년에는 작위가 부여되지 않는 명예 훈작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받았다.

2013년 10월 24일 한 강의실에서 촬영된 피터 힉스 교수. AFP=연합뉴스

파비올라 자노티 CERN 소장은 "힉스 교수는 단순하고도 심오한 방식으로 원리를 설명해 전 세계 물리학자들에게 영감을 줬다"며 "그가 너무나 그리울 것"이라고 애도했다.

아내 조디 윌리엄슨과는 1972년 이혼했지만, 2008년 조디가 세상을 뜰 때까지 친구로 지냈다. 아들인 크리스와 조니는 각각 컴퓨터 과학자와 재즈 음악가로 활동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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