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이들에게 골고루 특혜를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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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형 기자]
▲ 대리운전기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KBS 드라마 스페셜 <평양까지 이만원>의 한 장면. |
ⓒ KBS |
그러나 그런 풍성한 마음이 일순간 무너지고 괜한 허망함에 빠지는 순간이 있다. 어느 날 40대쯤으로 보이는 고객의 차를 운전하는데, 그는 뒷자리에서 내내 누군가와 통화했다. 대리기사는 투명 인간 같기에 고객이 무엇을 하든 상관없지만, 투명 인간도 귀는 열려 있다.
주식 배당금을 2000만 원 받아 주변에 한턱 쓰고 곧 여행 간다는 이야기였는데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투였다. 순간, 열심히 운전하던 내 일이 한없이 허망하게 느껴지고 괜한 분노가 일어났다. 목적지에 도달한 그는 대리 비용을 참으로 정확하게 계산하고 내렸다.
그 당시는 집값이 미쳤다고 할 만큼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또 올랐던 시기다. 공동주택 공시가격 변동률을 보면 2020년 전국 평균 5.98%, 서울 14.73%, 세종 5.76%이던 것이 2021년에는 전국 평균 19.08%, 서울 19.91%였고 세종시는 무려 70.68%로 집에 금가루를 뿌린 것처럼 뛰었다.
평범하게 일해서 먹고, 저축해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의 의욕이 처참히 뭉개졌다. 무너진 삶의 의욕을 다시 불러일으킨 것은 다름 아닌 코인과 주식이었다. 부동산처럼 손에 닿을 수 없는 하늘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 같은 흙수저도 '조금만' 공부하고 부지런하면 얼마든지 코인과 주식으로 '대박'이 날 것 같았다.
조금씩 모아온 저축은 물론 대출도 받고 주변 지인까지 동원해 돈을 끌어모아 여기저기서 재미 보았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오던 시절이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했다는 시대였다. 그러나 수년이 흐른 지금, 가뜩이나 힘들던 서민은 빚내서 산 집 대출금을 갚지 못하거나 세입자의 전세금도 반환하지 못해 죽을 지경이고, 코인 대박은커녕 지인에게 빌린 돈도 갚지 못해 전전긍긍이다.
어느 날 또 다른 대리운전 고객이 내게 "혹시 주식하십니까?"라고 묻기에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자신이 주식 전문가라는 그는 '좋은 정보를 알려주려 했다'면서 '그러나 아직 주식을 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절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언제나 있어 온 부동산 투기, 소위 재테크의 위험성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자본주의의 변화가 21세기 들어 투기성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아주 위험하고 건강하지 못한 투기 자본주의로까지 흘러왔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대박'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사회
우리가 익숙한 전통적 자본주의는 상품을 더 많이 팔아 이윤을 남기고 그것으로 성장하는 제조업 중심의 산업자본주의다. 우리나라도 1970~80년대 전국 공단을 중심으로 왕성했다. 그런데 이때 이윤은 오직 노동자의 노동으로부터만 생겨난다(노동가치설). 마르크스는 노동자에 돌아갈 가치를 자본가가 일부는 자기 이윤으로 가져가고, 또 일부는 경영 자본금으로 재투자해서 공장과 회사를 계속 돌아가게 한다고 했다. 그래서 착취라고 했다.
그런데 경제학에서 말하는 노동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열심히 일한다'는 뜻과 다르다는 게 아주 중요하다. 앞서 말한 대로 자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상품이기에, 노동은 자기 식구 먹기 위한 텃밭 농사 같은 일이 아니라 임금 조건으로 상품을 만들어 내는 활동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노동을 '경제활동을 한다'고 말한다.
돈벌이만 노동이라는 개념으로 인해, 그 많은 수고가 하찮게 취급된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가사와 돌봄이다. 전업주부는 티 나지 않는 집안일을 끊임없이 해대도 자기가 좋아서 하는 '당연한 일'이 된다. 돈을 벌어오는 경제활동이 아니기에, 장 보러 차 몰고 나온 주부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집에서 놀고먹는다'는 조롱을 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이와 정반대 현상이 벌어진다. 어떠한 가치를 창출하지 않으면서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천문학적인 소득을 벌어들이는 '대박'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단순화한다면 대개 돈놀이와 관련된 것이다. 저축하고 대출받는 순진한 금융의 역할을 벗어난 온갖 종류의 복잡한 금융상품이다.
첫째, 그 수익은 금융이 새롭게 창출한 가치가 아니다. 다양한 금융상품은 실제 일하는 누군가 만들어 놓은 가치를 여기서 저기로 옮기는 것뿐이다.
둘째, 그런데도 금융사와 투자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익을 가져간다. 일해서 가치를 만든 사람이 있는데, 대신 가져가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것도 대박처럼 말이다.
셋째, 위험은 사회와 나누고 수익은 혼자 챙긴다. 돈놀이는 진짜 존재하는 가치와 별개로 훨씬 많은 돈을 더 좋은 수익처를 찾아 빠르게 돌리는 것이기에 위험하다. 그리고 여러 투자자와 회사, 금융사들이 맞물려 있으므로 사고가 나면 개인과 회사, 금융사들이 줄줄이 파산, 도산하게 된다. 그러면 경제에 미치는 위험을 줄인다고 정부는 공적 자금을 투입해 구제해 준다. 물론 수익이 날 때는 오직 그들이 다 가져가지만 말이다.
넷째, 그런데도 경제 상황에 따라 정부와 사회로부터 다른 혜택도 받는다. 지금처럼 선거를 앞두거나 경기가 어려울 때 경제 회생을 명분으로 다양한 제도적 혜택이 뒤따른다. 이는 단지 금융상품만 아니라 주식과 부동산 등 넓은 의미의 불로소득 또는 무상소득에 모두 해당된다.
▲ 윤석열 대통령이 3월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대박 없이도 사람다울 수 있는 세상
주식, 금융자산, 부동산 투자는 예전보다 일반화된 것은 틀림없지만, 의미 있는 큰 수익은 여전히 소수 상층 자본가에 해당된 이야기다. 안 그래도 노동(근로) 소득에 비해 자본소득의 수익률이 과도하게 높은 상태에서 둘 사이 격차를 줄이거나 저소득자 복지 서비스를 늘리려는 노력은 하지도 않으면서 자본소득에 더 치우친 세제 혜택까지 제공하면 국민의 소득 운동장은 더욱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단지 재벌가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엄청난 보수를 받는 재벌 2~3세의 소득에서도 그대로 확인된다.
"2014~18년 8개 주요 재벌 총수 일가가 받은 연 평균 배당액은 약 952억원이다. 이는 같은 기간 이들 총수 일가의 연평균 보수 403억원의 두배를 웃돈다… 한 세대 동안 이들이 지속적으로 이러한 수준의 보수와 배당 소득을 얻는다면, 평균적으로 매 세대마다 대략 평균 3조5천억원 정도의 부를 축적하게 된다."(재벌 '핏줄 프리미엄'…승진·보수는 '넘사벽' 경영은 '무책임', 최한수 교수, 3월 28일 자<한겨레>)
이런 상황에서 누가 애써서 노동하고, 누가 힘들여 기업을 일굴 노력을 하겠나? 고생은 고생대로 해도 노동 소득은 자본소득에 턱없이 못 미친다면 열심히 일하려는 의욕은 사라지고, 모두 '한 방만 터지면 지금까지 내가 한 고생 다 보상받는다'는 심정으로 대박만 바라보게 된다. (정상범위를 넘어선) 주식도, 부동산도, 로또도, 코인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대박 기대심리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모두 대박을 꿈꾸지만, 사실 대부분에게 대박은 사막의 신기루와 같다. 대박은 늘 터지는 사람에게만 터지게 설계되어 있지만, 꿈만은 평등하기에 서민들도 늘 대박을 꿈꾸며 살게 된다. 그러나 늘 그 자리에서 천문학적 소득을 올리는 사람의 수입은 그냥 하늘에서 쏟아지는 돈이 아니라 사실은 내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간 것이다.
모두 '대박'을 외치지만 투기 자본주의의 속임수를 막아내지 못하면 택배기사나 대리기사, 라이더의 위험한 수고도, 중국집 사장님의 헌신적 경영도 항상 '쪽박'의 위험을 가리는 희망 고문과 다름없을 것이다.
정당히 노동하고 기업 하는 사람보다 숫자놀음과 돈 굴리기로 경제가 운영된다면, 자기 힘으로는 찾을 수 없는 솟아날 구멍을 뚫어줄 영웅을 기대하기에 경제뿐 아니라 민주주의마저 불안해진다. 그러므로 대박 없이도 얼마든지 사람다울 수 있는 세상이 진짜 건강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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