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주기, 연극계는 올해도 세월호를 사유한다
참여의식 각성시키며 한국 사회에 대한 질문 던져
올해는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되는 해다. ‘그날’(4월 16일)을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문화예술 행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연극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연극계는 그동안 어떤 장르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사유하고 고민하는 작품을 선보여왔다.
연극계에서 혜화동 1번지 동인이 세월호 참사 이듬해부터 매년 봄 개최되는 동인 페스티벌의 주제를 세월호로 잡은 것은 대표적이다. 혜화동 1번지는 서울 대학로 소극장의 이름이자 이곳을 토대로 하는 젊은 연출가들의 동인제를 가리킨다. 6기 동인(구자혜·김수정·전윤환·송경화·신재훈·백석현)은 2015년 페스티벌의 주제를 ‘세월호’로 잡고 연극 8편과 영화 1편을 선보였다. 이후 동인이 바뀌었어도 세월호 주제의 페스티벌은 매년 계속됐다.
지난해부터 활동을 시작한 8기 동인(박세련·박주영·원지영·이성직·조예은·허선혜)은 이번에 18일부터 6월 16일까지 ‘안전 연극제’라는 타이틀로 2편의 초청작품, 5편의 동인작품 등 7편을 선보인다. 세월호에서 확장된 주제로서 우리 사회의 안전망을 다각도로 생각해보는 취지다. 오는 22일 좌담회 ‘위험한 극장을 만드는 101가지 방법’에서는 극장에서의 안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안전연극제 개막작으로 초청된 크리에이티브 윤슬의 청소년극 ‘쉬는 시간’은 사회참여적인 작품을 써온 이양구 작가가 2015년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의 청소년극 페스티벌인 B성년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그린 작품으로 청소년의 안전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초연 이후 꾸준히 공연된 이 작품은 이번에 장윤하가 연출을 맡아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달라진 맥락에 주목한다.
폐막작으로 초청된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연속, 극’은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에서 열리는 4월 연극제에서 지난해 초연한 작품이다. 단원고 희생학생 및 생존학생의 어머니들로 구성된 노란리본이 5번째 만든 작품이다. ‘연속, 극’에선 7명의 엄마가 자신의 아이들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풀어놓는다. 김태현 연출가는 “앞선 작품들에선 엄마들이 이야기 속에 자신의 아이 이름을 직접 넣지 못했다. 가슴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면서 “이번에 처음으로 아이 이름을 넣었는데, 아이와의 추억을 오래도록 건강하게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혜화동 1번지 8기 동인의 안전 연극제에 앞서 4.16재단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4월 연극제’를 시작했다. 4월 연극제는 2017년 처음 선보인 이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 매년 4월에 열리고 있다. 올해는 지난 5일부터 28일까지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의 ‘연속, 극’(6~7일)을 시작으로 극단 낭만유랑단의 ‘2014년생’(12~13일) 등 8편을 잇달아 공연한다.
‘2014년생’은 극작가 겸 연출가 송김경화가 2022년 초연한 작품으로 2014년생 어린이 시원이 세월호 참사 생존자를 만나 사건에 대해 알아가고 아픔에 공감하는 과정을 담았다. 시원은 송김경화의 딸로 공연에도 직접 출연한다. 이 작품은 시원이 8살 때 송김경화에게 세월호에 대해 질문한 것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송김경화 연출가는 “아이에게 세월호를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민한 끝에 관련 장소를 방문하고 참사 피해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도록 했다”면서 “초연에 이어 지난해 재연을 가지면서 시원이가 세월호를 통해 스쿨존 어린이 교통사고 문제를 가깝게 느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즉 안전한 사회가 일상에서부터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해 제정된 ‘이영만연극상’ 1회 수상작인 이 작품은 최근 동명 연극의 대본과 세월호 참사 생존자 김도연, 김주희 씨가 쓴 에세이와 함께 책으로 발간됐다.
이외에 극단 종이로 만든 배가 세월호 참사로 인한 아픔과 상실을 소재로 한 ‘내 아이에게’와 ‘너를 부른다’를 공연한다. 오는 27~28일 서울 성북마을극장 무대에 오르는 ‘내 아이에게’는 참사 희생자의 어머니가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와 일기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2015년 초연됐다. 참사 이후 유가족이 경험한 일상을 통해 아픔과 공감의 순간을 조명한 작품으로 10년간 꾸준히 공연됐다. 이에 앞서 12∼14일에는 서울 대학로 이음아트홀에서 음악극 ‘너를 부른다’가 공연된다. ‘내 아이에게’의 후속작으로 2022년 초연됐다.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에서 나아가 국가 폭력과 차별, 편견, 재난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아픔을 다룬다. 두 작품 모두 하일호가 대본과 연출을 맡았으며 몹쓸밴드가 연주를 담당한다.
하일호 연출가는 “세월호 가족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한 사회를 향한 촉구를 지금도 하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는 아직도 안전과 생명의 가치에 대해 둔감한 것 같다. 세월호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이 공연을 매년 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극작가 겸 연출가 이오진은 오는 15일 서울 마포구 치정관에서 세월호에 탔던 아이들의 세계를 그린 희곡 ‘오십팔키로’ 낭독공연을 연다. 그리고 밴드 선과영은 세월호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를 부를 예정이다. 입장료는 416재단에 기부된다. 이오진은 “우리 세대의 연극인들은 세월호에 대한 부채감이 있다. 내 경우 그동안 청소년극을 많이 썼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 이후 더 크게 느껴진 청소년들의 고통을 작품으로 정체화 하려고 노력했었다”면서 “올해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2016년 혜화동 1번지 페스티벌에서 초연한 작품으로 지난해 희곡집에 실린 ‘오십팔키로’를 함께 읽으며 추모하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배우들이 모두 무보수로 참여하겠다며 나섰다”고 밝혔다.
지난 5일부터 젊은 연극인들은 한 달 동안 SNS에서 ‘세월호/연극 이어말하기 오프라인 & 온라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온라인을 통해 세월호와 연극에 대해 서로의 기억을 털어놓는 한편 세월호 관련 활동을 기록하는 아카이빙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오늘 15일에는 서울연극센터 3층 스튜디오에서 세월호와 연극에 관해 이야기를 직접 나누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제안한 창작자 중 한 명인 극작가 정진새는 “세월호 참사는 당시 연극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던 젊은 창작자들에게 사회적·정치적 참여의식을 각성시킨 계기가 됐다. 이후 블랙리스트 사태도 연극계에서 세월호 이야기가 검열을 받거나 세월호 시국선언에 나선 예술가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등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거대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10주기를 맞아 어느덧 중견이 된 연극인들은 물론 젊은 연극인들이 우리 사회의 ‘안전’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초심을 찾자는 의미에서 제안하게 됐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이런 연극계의 움직임에 대해 김소연 평론가는 “세월호를 계기로 젊은 연극인들이 연극계는 물론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격렬하게 냈다”면서 “연극계에서 세월호 관련 작업이 활발한 것은 다른 장르와 비교할 때 (제작 규모가 크지 않아서) 바로 창작에 나설 수 있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젊은 연극인들이 즉각적인 실천에 나섰기 때문이다. 세월호는 연극인에게 성찰과 사유의 계기를 만들어 한국 사회에 질문을 던지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전과 완전히 구분되는 전환점이”이라고 해석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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