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축제가 끝나면

이경원 2024. 4. 10.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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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날리는 벚꽃잎 사이로 트럭을 개조한 선거 유세 차량이 전진했다.

선명한 색깔의 점퍼를 입은 후보가 아직 학생인 딸과 만세를 부르며 거리의 유권자들에게 승리의 구호를 외쳤다.

잠시 뒤엔 또 다른 색깔의 점퍼를 입은 후보를 태운 유세 차량이 나타났다.

선거 유세 차량이 떨어지는 벚꽃잎 사이로 느리게 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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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원 정치부 차장


흩날리는 벚꽃잎 사이로 트럭을 개조한 선거 유세 차량이 전진했다. 선명한 색깔의 점퍼를 입은 후보가 아직 학생인 딸과 만세를 부르며 거리의 유권자들에게 승리의 구호를 외쳤다. 잠시 뒤엔 또 다른 색깔의 점퍼를 입은 후보를 태운 유세 차량이 나타났다. 후보는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다가, 손가락을 펴 자신의 기호를 알리다가 이따금 맞은편 차로의 버스와 승용차에도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후보들이 연신 고개를 숙이고 익살스러운 춤까지 추는 것은 인사와 댄스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렇게 얻는 국회의원이 좋은 직업이기 때문이다. 한 표 달라고 호소하는 이들이 말 그대로 심부름꾼이 된다 생각하는 이는 없다. 투표일이 지나면 허리를 굽히던 이들 가운데 일부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아무나 만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그렇게 된다는 것을 표를 주는 이도 표를 받는 이도 안다.

선거를 축제라 부르는 것은 그 시간이 일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일주일 피고 마는 벚꽃처럼 짧은 축제가 끝나면 대개는 고단한 일터로 돌아간다. 무대 위의 이들에게 한바탕 감정을 투사한 사람들도 다음 축제 때면 또 비슷한 대사와 비슷한 풍경이 펼쳐질 것을 예상한다. 축제 때 들은 달콤한 말이 결코 일상의 행복까지 보장하지 않는다. 4년 전 제2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들의 총선 포스터 속에도 ‘더 나은 미래’며 ‘전성시대’, ‘일하는 국회’가 가득했다. 격전지와 교두보, 마지노선을 운운하며 전쟁처럼 격한 축제를 즐기면서 모두가 잠시 잊은 사실이 있다. 이 모든 시끄러운 일들은 게임의 끝이 아니라 300명의 선수를 선발한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지역을 살릴 구원투수, 원칙을 지키는 일꾼, ‘찐 해결사’와 민생밖에 모르는 바보들로 라인업을 꾸렸다면 이들의 본경기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선수들은 누가 쳐다보지 않으면 가계부를 살피거나 규율을 손보지 않는다.

적잖은 선수들은 투표일까지만 낮은 자세와 높은 목표를 강조했다. 선수(選數) 높은 한 선수가 “총선이 지나면 국회 절반쯤은 ‘물갈이’가 되겠지요. 하지만 국회에 대한 신뢰가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겁니다”라고 안타까워한 적이 있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2022년 국회에서는 상임위원회 회의가 336회 열렸다. 미 상원은 1722회, 하원은 1873회, 영국은 1335회, 독일은 959회였다. 이러니 18세기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적힌 “국민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원을 선출할 때뿐, 의원이 뽑히는 즉시 그들은 노예가 된다”는 말이 아직도 회자하는 것이다.

민의를 대변하겠노라는 후보들은 이번 총선에서 본인의 장점보다 상대의 단점을 많이 말했다. 누군가는 법정 심판을 정당화할 도피처로 정치를 택했고, 누군가를 감옥에 보내거나 꺼내는 일이 민주주의의 유일한 목적처럼 언급됐다. 막말이 정책과 비전을 압도하고, 그러면서 너도나도 ‘민주주의의 위기’를 찾는 건 공통적이었다. 사람들 삶을 나아지게 하거나 공동체를 가꾸는 일보다 권력 다툼이 관심을 끌었다. 그 다툼에 많은 이들이 동원됐다.

선거 유세 차량이 떨어지는 벚꽃잎 사이로 느리게 전진했다. 꽃길을 걷는 저 후보는 과연 ‘일하는 국회’의 일원이 될까. 젊은이들이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으려 손을 내밀었다. 꽃잎 지고 푸른 새순이 돋으면, 정작 그때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 벚나무를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네거티브를 지적하고 비전을 요구하는 언론 기사도 4년마다 벽보에 붙는 무수한 구호처럼 똑같이 반복될 뿐이다.

이경원 정치부 차장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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