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미의 마음 읽기] 쓰지 않은 말
두릅 한 상자가 택배로 도착했다. 언젠가 소설 취재를 도와주셨던 분이 보내온 것이었다. 상자를 열고 두릅 향을 맡으니 그제야 봄이라는 실감이 났다. 두릅은 엄마한테 가면 늘 먹을 수 있는 나물이어서 직접 사거나 손질할 일이 없었는데 택배 선물 덕분에 올봄엔 두릅을 직접 다듬고 씻고 데쳐볼 수가 있었다.
어떤 이들에게 봄은 꽃 이름 못지않게 나물 이름으로 감각된다. 봄나물의 대장격 같은 두릅은 물쑥대, 원추리, 중댕가리, 곰취 같은 나물 이름들을 불러오고 그 이름들은 내가 자라면서 들었거나 일을 하면서 들었던 여러 이야기를 다시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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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때 얘기 다 쓰진 못해
그래도 잊을 수 없는 그들의 삶
기억하는 한 다시 만나게 될 것
」
장편소설을 두 편 쓰는 동안 소설 취재를 위해 여러 사람을 소개받고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인터뷰 자리에 갈 때마다 나는 얘기를 최대한 많이 끌어내기 위해 소설에 도움이 될 만한 질문들을 한껏 추렸지만 그럼에도 얘기가 잘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늘 한쪽에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대일로 마주 앉아 점점 집중력을 높여가다 보면 사람들의 이야기는 종종 내게 필요한 범위보다 더 크고 깊게 흘러나왔다.
내게 필요한 취재는 한 마을의 특정 사건에 대한 인터뷰 대상자의 경험과 현장성이었지만 그들은 그 사건 전후로 이어져온 자신의 삶도 같이 이야기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이 겪은 사건 당시의 감정, 관계, 행동들은 모두 그 마을에서 살아온 지난 삶의 연장선에서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인터뷰이(interviewee)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내가 우려했어야 하는 것이 듣지 못할 이야기에 대한 것이 아니라 듣게 될 이야기에 대한 것이었다는 걸 점점 깨달아갔다. 나는 인터뷰이가 고심해 전하고 있는 말의 10분의 1도 소설에 쓰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구술사가처럼 그들의 생애 이야기를 양식을 갖춘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 자리에서 내게 전해준 삶의 순간순간들과 기억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자신의 삶을 기억하고 해석하며 말하는 방식은 인터뷰이마다 달랐다. 삶에서 가장 아픈 기억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는 분도 있었고 현재의 고충을 우선으로 이야기하는 분도 있었다. 유년의 기억과 풍경에 대해, 어렸을 때 저수지에서 스케이트를 타다 올려다본 하늘에 대해 오래 이야기하는 분도 있었다.
인터뷰이의 이야기는 총 세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나에게 도착했다.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듣는 게 첫 번째 단계였다면 돌아와 녹취를 풀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듣는 게 두 번째 단계였다. 인터뷰 당시에는 긴장감 때문에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말과 말 사이의 망설임, 침묵, 한숨과 낮은 웃음들이 녹취 파일에는 그대로 살아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명확하게 전해진 말보다도 더 여러 맥락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글 파일에 육성과 한숨까지 모두 옮기고 나면 문자로 옮겨진 그 녹취록을 텍스트로 다시 읽는 게 세 번째 단계였다.
장편 분량보다 몇 배는 많은 인터뷰 녹취록이 생기고 난 뒤에야 나는 누군가 한 개인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단순한 소설 취재를 넘어선 무게를 지닌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안에 있는 것들은 너무도 고유해서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삶의 순간들을 품고 있었고 그 자체로 풍부한 말들의 향연이었다. 타인의 한 시기를 듣기 위해선 그의 전 생애로 다가가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증거들이기도 했다.
언젠가 엄마한테 엄두릅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평지의 냉이와 달래를 지나고 낮은 야산의 미역취와 산미나리싹을 지나고 중턱의 고사리와 취나물을 지나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다보면 엄나무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엄나무에서 두릅이 삐죽삐죽 돋기 시작하면 그 빛깔이 산 아래까지 퍼진다고, 그게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왠지 잊을 수가 없어서 언젠가의 소설에 엄마의 엄두릅 얘기를 썼다. 내 엄마의 말이니까.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는 말을 엄마가 어떤 정조로 하는지 오랜 시간 옆에서 봐왔으니까.
나는 단 몇 시간 동안 들은 인터뷰이들의 삶을 소설로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잊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은 파일 하나가 그대로 하나의 우주가 된 채 내 노트북 안에 담겨 있다. 작업 중에 노트북이 갑자기 소리를 내거나 깊은 밤에 노트북 주위에서 무언가 빛이 깜박이면 나는 내가 들었으나 쓰지 않은 말들이 내게 신호를 보내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신호가 오는 한 나는 내가 청자였던 순간들을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쓰지 않더라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하는 한 내게 전해졌던 타인의 삶들은 숱한 우회로를 거쳐 다른 형태의 쓰임을 가져올 것이다. 청자였던 우리가 때로 화자가 되고 화자였던 우리가 청자가 될 수 있다면 다시 만나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최은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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