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루프의 <d.o.pe.> 전시
이번 전시 〈d.o.pe.〉는 올더스 헉슬리의 저서 〈지각의 문 The doors of Perception〉에서 따온 것이라고 들었다. 이번 작업과 헉슬리의 책은 어떻게 연결되나
인간이 화학적인 촉매제를 통해 의식의 지평을 넓히고 자신을 초월할 수 있다고 본 헉슬리의 생각이 흥미로웠다. ‘매스칼린’이라는 향정신성 약물이 인간 정신에 미치는 역할에 대한 연구와 본인의 투약 경험을 읽는데 머릿속에서 사이키델릭한 이미지가 형상화되더라.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사이키델릭한 이미지를 좇아온 것 같다. 어린 시절에 들었던 음악과 밴드의 영향도 크다. ‘핑크 플로이드’와 ‘더 도어즈’를 좋아했고, 이들 앨범 커버도 사이키델릭한 디자인이 주를 이뤘다. 어느 시점부터 기괴한 문양이 서로 복잡하게 얽힌 프랙털 이미지 연구에 몰입하고 싶었고, 비로소 〈d.o.pe.〉 작업이 시작됐다.
프랙털 이미지는 알고리즘에 입각해 생성된다고 들었다
그렇다. 프랙털은 1975년에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가 제시한 용어로, 형태 요소가 커지거나 줄어들면서 반복적으로 증식되는 구조를 뜻한다. 2000년대 초반에 프랙털 구조의 다차원적 아름다움을 작업에 반영하고 싶었지만 당시 기술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20년이 지나 소프트웨어가 서서히 발전했고, 2022년에 비로소 매개 변수를 직접 조절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드는 게 가능해졌다. 그렇게 〈d.o.pe.〉가 완성됐다. 나는 이 프랙털 이미지를 ‘아름다운 수학’이라고 부른다. 수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이미지들은 은하가 무한하게 줄 지은 우주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세포의 모습처럼 아름다우니까.
〈d.o.pe.〉의 모든 작품이 ‘카펫’에 인쇄돼 텍스처가 독특하다. 카펫을 캔버스처럼 활용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d.o.pe.〉 시리즈의 첫 번째 이미지를 완성한 후 사진을 인화하는 종이에 인쇄했는데, 용지 사이즈가 컸는데도 작품이 주는 압도감이 덜하더라. 무엇보다 종이 질감과 작품 이미지가 안 어울렸다. 캔버스나 다양한 직물을 고민한 끝에, 부드러운 질감의 재료가 프랙털 이미지와 완벽한 조합을 이룰 것 같았다. 결과는 훌륭했다. 몽환적인 패턴들이 보들보들한 질감과 만나 분위기가 배가됐다.
1990년대 초반부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왔지만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알고리즘 기반의 작업이 낯설게 느껴질 법도 한데
호기심이 많아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편이다. 1958년에 태어나 1990년대에 비로소 젊은 예술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1990년대에 기술이 극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예술 흐름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시류 속에서 몇몇 사진가들은 빛에 민감한 필름으로 찍은 사진만이 ‘진짜’라고 말했지만, 뜻을 굽히지 않고 디지털 사진 작업에 뛰어들었다. 새로운 기술은 단지 새로운 도구일 뿐이다.
한편 처음 인터넷을 접했을 때 이를 어떻게 활용하고 싶었나
당시 인터넷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느리고 해상도도 낮았다. 인터넷을 통해 보거나 설치해야 할 파일 크기는 작아야 했고, 퀄리티는 현저히 떨어졌다. 아름다운 사진을 얻어서 인터넷 세상에 선보이려면 사진기로 촬영한 사진을 일부러 저화질로 낮춰야 했다. 이런 점을 활용해 당시 유행했던 포르노 산업을 작업에 엮었다. 〈Nudes〉(1999~) 시리즈가 바로 그것. 인터넷상의 누드 사진들은 해상도가 낮아 내가 연구하고 싶었던 픽셀 기반의 이미지 작업과 의미가 통했다. 원래도 저화질의 포르노 사진이지만 더 희미하고 흐릿한 효과를 줄 수 있는 기술을 접목시켜 픽셀 연구 작업의 뜻을 표현했다.
환상 속 세상 같은 〈d.o.pe.〉 시리즈의 작품처럼 당신에게 환상이란
매 순간 환상을 느끼기 위해 노력 중이다. 환상만큼 인생에 재미와 깨달음을 주는 것도 없다. 하지만 사진이 주는 환상을 깨 버리고 싶은 욕구를 느낄 때도 있다. 그 욕구를 〈Portraits〉(1981~2001)에 표현했다. 사진기가 발명된 직후부터 사진은 거짓된 정보를 만들어내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이 악용되는 상황에 피로를 느꼈고 〈Portraits〉(1981~2001) 작업을 시작했다. 어떤 정보도 없이 인간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촬영했다. 사진은 단지 사물의 표면만 포착한다는 내 뜻을 전달하기 위해 사물을 촬영할 때 사용하는 렌즈로 사람들의 초상을 촬영했다. 그 인물은 행인,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이었고, 이들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작업했다. 촬영 후에도 이들에게 개인 정보를 묻지 않았던 이유는 초상화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순수한 환상을 떠올리길 바랐기 때문이다. 초상화의 주인공의 직업과 성격, 처한 환경 등을 오직 초상을 보며 상상해주길 바랐다. 이 시리즈를 작업하면서 환상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를 다시 정립할 수 있었다.
아날로그부터 디지털, 수학적 프로그램까지. 끊임없이 매체의 한계를 실험해 온 당신이 모색하는 새로운 실험 도구는
인공지능 아닐까? 아직 인공지능이 대단한 능력을 발휘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직 학습한 이미지만 만들어내는 수준밖에 안 되니까. 하지만 차세대 인공지능이 얼마나 발전하고, 또 얼마나 기괴하고 대단한 작업물을 만들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선 두고 보는 중이다.
이후 선보일 작업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기대하면 좋을까? 방향성에 대한 힌트는
새로운 시리즈를 구상 중인데, 아직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아날로그를 활용했다가, 갑자기 디지털 사진기로 촬영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마치 술에 잔뜩 취한 채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어지러운 상태다(웃음). 얼마나 새로운 게 탄생할지 모르겠지만, 준비 중인 시리즈에서도 나는 촬영 도구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지 않을까?
현재 사진이 당신에게 주는 의미는
없다. 사진을 위해 내가 고집하는 도구, 하나의 의미, 하나의 정의, 그 어떠한 것도 없다. 사진은 현실을 표현하는 것일 뿐이고, 표현하는 방법은 10억 가지가 넘는다. 어떤 이는 사진을 비유의 수단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어떤 이는 그저 시각적인 효과만을 중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사진에 어떤 정의도 부여하지 않은 채 작업세계를 이어왔고, 앞으로도 여전할 것이다. 사진이란 그저 사물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것, 그 사실 자체만으로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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