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정 동원그룹 회장, 참치 벗어나 물류·소재 新사업 발굴 속도 [CEO 라운지]
동원그룹을 이끌어온 김남정 부회장(51)이 회장으로 전격 승진했다. 동원그룹 창업주 김재철 명예회장 차남인 김 부회장이 10년 만에 회장으로 올라서면서 그룹 신사업에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014년 이후 10년 만에 회장 올라
동원그룹은 지난 3월 28일 서울 서초구 본사에서 이사회를 열고 김남정 부회장의 회장 승진을 결의했다. 2014년 부회장 선임 이후 10년 만이다.
김남정 신임 회장은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하자마자 1996년 동원산업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부친 경영 철학에 따라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일해왔다. 부산 참치 통조림 공장 생산직으로 통조림 포장, 창고 관리 등을 직접 배우며 다양한 실전 경험을 쌓았다. 공장 생산직을 거친 후 서울 청량리 도매시장에서 영업을 했다. 경동시장, 청과물시장 등을 무대로 3년 넘게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치열한 영업 현장 경험을 다진 뒤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대 MBA 과정을 마쳤다. 한국으로 돌아와 계열사 요직을 두루 맡으면서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동원엔터프라이즈 경영관리실을 시작으로 동원F&B 마케팅전략팀장, 동원산업 경영지원실장, 동원시스템즈 경영지원실장 등 계열사 핵심 보직을 두루 역임했다. 이어 미국 스타키스트 최고운영책임자(COO), 동원엔터프라이즈 부사장을 맡았다. 2014년 동원그룹 부회장에 올라서며 사실상 그룹 경영을 진두지휘했고 결국 회장 자리까지 거머쥐었다.
이번 인사에 앞서 동원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을 순조롭게 마무리하면서 김 회장 경영권에도 힘이 붙은 상태다.
동원그룹은 2001년 일찌감치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지만 그동안 지배구조가 복잡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지주사 동원엔터프라이즈 아래에 자회사 5개가 있고, 이 중 동원산업이 종속회사 21개를 보유해 구조가 복잡하다. 손자회사의 자회사인 증손회사까지 있어 그룹 의사 결정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이를 두고 본 동원그룹은 기존 지주사 동원엔터프라이즈와 동원산업을 합병해 동원산업을 새 지주사로 출범시켰다. 이를 통해 동원엔터프라이즈 자회사였던 동원F&B, 동원시스템즈, 동원로엑스, 스타키스트 등 18개 자회사와 26개 손자회사 등을 보유해 지난해 그룹 매출액이 단순 합산 기준 10조원을 넘어섰다. 김남정 회장은 동원산업 주식 46.4%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덕분에 김 회장 경영권에도 힘이 실리게 됐다.
김 회장은 그동안 ‘참치 회사’ 이미지를 벗기 위해 다양한 신사업을 추진해왔다. 인수합병(M&A)을 적극 활용하면서 지난 20년간 동원그룹이 품에 안은 기업만 20여곳에 달한다. 2014년 포장재 기업인 테크팩솔루션을 필두로 2017년 물류 기업 동부익스프레스, 2021년 원통형 배터리 캔 제조사 MKC를 연달아 인수했다. MKC는 원통형 배터리 캔 전문 생산 업체로 금형 설계부터 드로잉, 프레스, 표면 처리까지 배터리 캔의 모든 공정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했다. MKC 인수를 통해 2차전지 패키징 등 첨단소재 분야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김 회장 주도로 최근 4년간 미래 먹거리 발굴에 투자한 금액만 1조3000여억원에 이른다. 덕분에 지난해 기준 그룹 내 신사업 매출 비중은 어느새 30%를 넘어섰다.
물론 식품 사업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2015년 축산 도매 온라인몰 금천을 인수해 수산 식품에서 축산물 유통으로 식품 사업 영역을 넓혔다. 이를 통해 수산, 식품, 소재, 물류 등 그룹 4대 산업 밸류체인을 탄탄히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남정 회장은 “지난 50년간 동원그룹을 이끌어온 김재철 명예회장의 업적과 경영 철학을 계승하고 과감한 투자로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종렬 흥국증권 애널리스트는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지만 동원그룹 지주사 동원산업의 수산, 식품 가공, 유통 사업 수익성이 개선되면서 동원산업은 올해 547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식품 등 해외 진출 드라이브
김 회장의 신사업 진출은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물류 사업에 힘을 쏟는 모습이다. 물류 계열사 동원글로벌터미널부산(DGT)이 4월 중 부산 신항에 국내 최초의 100% 자동화 항만을 개장한다. 컨테이너 크레인과 자동이송장비(AGV) 등을 통해 선박의 접안부터 하역, 이송, 보관에 이르기까지 사람 없이 운영되는 ‘미래형 스마트 항만’이다. 스마트 항만 내 모든 하역장비는 전기 기반으로 작동해 탄소 배출량을 기존 터미널 대비 30% 이상 감축할 수 있어 친환경적이다. 동원은 이를 동북아 최고 물류 거점 항만으로 육성해 명실상부한 ‘글로벌 터미널 운영사(GTO·Global Terminal Operator)’로 거듭난다는 포부다.
동원그룹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식품 부문은 이제 해외로 눈을 돌린다. 미국 스타키스트가 보유한 현지 유통망을 통해 동원F&B 제품을 판매하거나 새로운 합작 브랜드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스타키스트는 2008년 동원이 인수한 미국 가공 참치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이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동원F&B의 경우 미국과 일본, 중국에 해외법인을 두고 있지만 해외 사업 비중이 5% 정도밖에 안 된다. 향후 공격적인 M&A를 통해 해외 시장에 직접 진출하고 현지 생산 공장 가동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동원그룹이 M&A 과정에서 달콤한 성공만 맛본 것은 아니다. M&A 시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HMM을 비롯해 보령바이오파마, 한국맥도날드 등 주요 매물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동원그룹은 국내 최대 해운사 HMM 인수를 위해 하림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끝내 인수에 실패했다. 한국맥도날드 인수전에서도 지난해 예비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해 실사를 진행했지만 가격 등을 두고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발을 뺐다. 보령바이오파마 인수 역시 실패로 막을 내렸다.
절치부심한 김남정 회장은 올해도 인수합병 시장에 적극 뛰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미 HMM 인수전에 뛰어든 경험이 있는 데다 물류 계열사 동원익스프레스를 계열사로 둔 만큼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등 M&A 시장 대어 인수전에 나서지 않겠냐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M&A에 앞서 기존 사업 성과부터 챙겨야 한다는 의견도 적잖다. 지주사 동원산업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4647억원에 그쳐 2022년 대비 5% 이상 감소했다. 식품 사업 실적은 괜찮았지만 포장재 사업 수익성이 악화된 영향이 컸다. 포장재 사업 자회사인 동원시스템즈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809억원으로 1년 새 12% 줄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알루미늄 등 포장재 사업 실적이 부진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동원은 현금성 자산이 1조3000억원에 달하는 데다, 자회사 상장으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 M&A 시장에 또다시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 다만 잇따른 M&A 실패를 딛고 인수한 기업이 기존 주력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할 수 있다. ‘승자의 저주’에 휘말릴 우려도 있는 만큼 성과를 두고 봐야 한다.”
재계 관계자 귀띔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4호 (2024.04.10~2024.04.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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