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명 이끌고 중공군 사투…尹이 휠체어 밀던 美참전용사 별세

박형수 2024. 4. 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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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해 중공군에 맞서 청천강 북쪽의 전략적 요충지인 205고지 점령에 맹활약한 랠프 퍼켓 미국 육군 퇴역 대령이 8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州) 콜럼버스의 자택에서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의 사망 소식은 콜럼버스 국립보병박물관에서 공식 발표했다.

1926년 조지아주 남부 티프톤에서 태어난 퍼켓 대령은 1945년 미국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949년 육사를 졸업한 그는 이듬해 23세 나이에 당시 일본 오키나와에서 창설된 제8 레인저 중대 지휘관으로 자원해 부산으로 파견됐다.

지난해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워싱턴DC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동맹 70주년 감사 오찬에 참석해 랄프 퍼켓 예비역 육군 대령을 무대로 모시고 있다. 강정현 기자


퍼켓 당시 중위는 평안북도 운산의 205고지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고, 중대원 50여명을 이끌고 남하 중이던 중공군 6개 대대와 사투를 벌였다. 적군의 기관총 공격 위치를 찾으려고 일부러 탱크 위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등 위험을 불사했다. 레인저 중대는 세번의 시도 끝에 205고지를 점령했고, 이 과정에서 퍼켓 중위는 수류탄 파편이 허벅지에 박히는 중상을 입었다. 그는 부하들에게 자신을 버리라고 명령했지만 부하들이 이에 불복하고 그를 대피시켰다.

그는 부상 치료를 위해 미국 조지아주 포티베닝에 있는 병원에 11개월간 머물렀다. 이곳에서 아내 진 마틴을 만나 2년 뒤 결혼했다. 퇴원 후 제대를 거부하고 제101 공수사단 중령으로 베트남전에 복귀했다. 냉전기 독일에서 제10 특수부대를 지휘하며 육해공 비밀 침투작전을 이끄는 등 활약을 하다가 1971년 전역했다.

퍼켓 대령은 지난해 4월 미국을 국빈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한국 대통령이 외국 방문 시 현지에서 무공 훈장을 수여한 최초 사례다.

윤 대통령은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오찬에 참석한 퍼켓 대령의 휠체어를 직접 밀고 함께 무대로 나아가 그의 가슴에 직접 훈장을 달아줬다. 이어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2022년엔 미국 국방부 '영웅의 전당'에도 헌액됐다. 2021년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최고 훈장격인 명예훈장을 받았다. 시상식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전쟁은 종종 '잊혀진 전쟁'으로 불린다"면서 "하지만 퍼켓 중위의 지휘 하에 있었던 사람들은 매 순간 그가 옆에 있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훈장 수여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방미 기간 이뤄졌다.

지난해 2021년 5월 2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퍼켓 대령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한 뒤 문재인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밖에도 퍼켓 대령은 수훈십자훈장, 2개의 은성무공훈장, 2개의 동성 무공훈장, 5개의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다. 미 육군 사상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인물 중 하나다.

수훈십자훈장은 명예훈장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무공훈장이다. 은성·동성무공훈장은 전시에 혁혁한 공을 세운 군인에게, 퍼플 하트 훈장은 전장에서 부상하거나 사망한 군인에게 수여된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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