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은 올림픽 못간다...효자종목 유도의 몰락, 협회 뒤늦게 수습·용인대는 내홍
한국 유도가 남자 7체급 중 절반에 가까운 3체급에서 파리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사상 처음으로 남자 전 체급 올림픽 출전에 실패하는 초유의 사태를 피할 수 없게 됐다.
9일 기준 한국 유도는 남자 60㎏급(김원진), 66㎏급(안바울), 81㎏급(이준환), 100㎏ 이상급(김민종) 등 4체급에서만 파리올림픽 출전을 확정했다. 73·90·100㎏급 3체급에선 이른바 '구멍'이 났다. 남자 유도가 올림픽 메달 획득이 아닌 출전을 두고 쩔쩔맨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 유도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남자 유도는 역대 올림픽에서 무려 9개의 메달을 일군 전통 효자종목이다.
파리올림픽 유도 종목은 체급당 국가별 1명의 선수가 출전할 수 있고, 올림픽 랭킹 상위 17위 안에 들거나 대륙별 출전권 획득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73㎏급 국가대표 강헌철은 세계랭킹 41위까지 처졌다. 꾸준히 국제대회에 출전했지만, 일찌감치 탈락해 랭킹 포인트를 쌓지 못했다. 90㎏급 한주엽은 37위, 100㎏급 원종훈은 47위다. 이들도 강헌철과 사정이 비슷하다.
이들이 남은 기간 추가로 올림픽 출전 자격을 자력으로 획득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 대표팀에겐 올림픽까지 국제대회 2~3개만 남았다. 최소 2개 대회에서 연달아 입상해야 세계랭킹 20위권 이내 진입이 가능한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유도계에선 "과거엔 서로 한 체급에서 3~4명의 선수들이 올림픽 출전 두고 다퉜다. 그러다보니 비(非) 용인대 선수들의 판정 불이익이 논란이 됐던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제발 누구든 나가달라'는 분위기인데 출전 자격이 안 돼 올림픽에 나가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했다.
더 뼈아픈 건 세 체급 모두 한국 유도의 상징적인 체급이라는 것이다. 특히 2명의 금메달리스트가 나온 73㎏급 한국 유도의 전략 체급이자 자존심이었다. 2004 아테네올림픽 금메달에 빛나는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가 73㎏급의 전설이다. 2012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당시 81㎏급) 김재범도 73㎏급 하면 떠오르는 스타다. 90㎏급은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송대남, 2016 리우올림픽 동메달리스트 곽동한을 배출했다. 100㎏급에서도 장성호와 조구함이 각각 아네테와 도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유도의 부진을 대표팀 감독과 코치진에게만 떠넘기기엔 무리가 있다는 게 유도계 내부의 지적이다. 1984년 LA 대회에서 금메달 2개·은메달 2개·동메달 1개를 일구며 효자종목이 된 한국 유도는 2000년 시드니 대회(은2·동3)를 제외하고 2012년 런던 대회(금2·동1)까지 모두 금맥을 캤다. 그러나 2016년 리우 대회에서 16년 만의 노 골드(은2·동1)에 머무르며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노 골드(은 1·동 2)에 그쳐 충격을 줬다.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이후 45년 만에 가장 저조한 성적이었다. 일부에선 '한국 유도의 몰락'의 몰락이라는 바판까지 나왔다. 이번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유도에선 유력한 금메달 후보가 없다.
도쿄올림픽에서 부진한 성적을 낸 직후 선찬종 대한유도회 전무는 조용철 회장의 지시로 훈련 방식을 개편하고 국가대표 선수들의 전력을 끌어올릴 방안 찾기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유도계 집행부는 현재 파벌 및 정치 싸움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용인대 유도학과는 지난해부터 내홍을 겪고 있다.
유도학과에는 조 회장을 비롯해 유도회 관계자들과 대표팀 출신 지도자들이 여럿 몸담고 있다. 한 유도 관계자는 "용인대는 한국 유도의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곳인데, 그곳 교수들과 지도자들은 선수 발굴과 기량 향상에 집중해야 할 시간 일부를 서로를 견제하는 데 쓰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 올림픽 이후 3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유도는 더 퇴보했다"면서 "현 지도자들은 요즘 선수들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고, 훈련 방식도 맞지 않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하는 건 대한유도회인데, 그동안 방치했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선찬종 유도회 전무는 "도쿄올림픽 당시 지도자들과 현 지도자들의 훈련 방식이 상당히 차이가 있다. 지금이 훈련 강도가 좀 더 세다. 선수들에게 꼭 필요한 훈련 스타일이 정착되기까지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유도회는 꾸준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주장했다. 선 전무는 "도쿄올림픽 이후 여러 체급에서 '2인 경쟁 체제'를 만들어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경쟁하게 하는 등 경기력 향상을 위해 애를 썼다. 다만 결과가 뒤따르지 않아 안타깝다. 힘든 훈련을 기피하는 경향 탓에 레슬링, 복싱 등 한국 투기 종목의 약세는 이미 수년 전부터 시작됐다. 유도도 그 흐름을 거스를 순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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