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방미, 초대형 일장기 건 백악관…日, 오커스 합류하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 도착해 국빈 방문 일정에 돌입했다. 외교가에선 기시다 총리의 이번 방미가 미국의 차기 안보 구상과 맞물려 일본이 미국과 분업해 세계 안보에 관여하는 위치로 발돋움할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동시에 일본의 입장에선 2차 세계대전 이후 이어진 ‘전쟁 포기, 전력 불보유, 교전권 부인’이란 ‘평화헌법’ 체제의 종식을 대내외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백악관엔 걸린 초대형 일장기
백악관은 이날 기시다 총리의 입국을 앞두고 백악관 벽면에 초대형 성조기와 일장기를 나란히 걸었다. 기시다 총리가 머무는 백악관 영빈관 ‘블레어하우스’에는 일장기가 게양됐다. 인근엔 보안을 위해 경찰차 수십대가 배치됐고, 기시다 총리의 입국 직후엔 백악관 앞 도로까지 완전히 통제했다.
이번 방미는 일본 총리로서 9년만에 성사된 국빈대우 방문이다. 기시다 총리는 9일 알링턴 국립묘지 헌화를 시작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브래드 스미스 사장 등 경제인들을 만난다. 10일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 국빈 만찬이 예정돼 있고, 11일엔 미 의회 연설과 미·일·필리핀 정상회의가 이어진다. 어어 12일에 노스캐롤라이나 도요타 자동차 탑재 배터리 공장 건설 예정지 등을 시찰한 뒤 14일 귀국한다.
일본, 오커스 합류 …“HGV 탐지 협력”
이날 기시다 총리의 출국에 맞춰 미국·영국·호주의 국방장관은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영국·호주 3자 안보동맹인 오커스(AUKUS) '필러2 프로젝트'에 일본이 합류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오커스는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을 제공하는 필러1과 해저·양자기술·인공지능(AI)·사이버·극초음속·전자전 무기 등을 공동 개발하는 필러2로 구성돼 있다.
일본이 필러2에 합류하면 미국과 미래 첨단 무기 기술을 사실상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미·영·호 3국 동맹 오커스가 일본이 참여하는 ‘조커스(JAUKUS·Japan+AUKUS)’로 변모하는 양상이다.
이와 관련 요미우리신문은 9일 “이번 정상회담에서 극초음속 활공체(HGV) 탐지·추적을 위한 위성망 구축에 협력할 것을 확인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HGV는 음속의 5배 이상의 속도로 비행해 탐지와 요격이 어려운 미사일로, 북한·중국·러시아 등은 HGV 개발에 전력을 쏟고 있다. 또한 매체는 공동성명에 우주 전쟁 등에 대비해 미국이 일본의 저궤도 위성망 구축에 협력한다는 내용도 명시될 거라고 전했다.
‘격자형 안보’ 전환의 마지막 ‘퍼즐’
미·일 정상회담 직전 발표된 일본의 오커스 합류는 미국이 구상하는 미래 안보 전략의 얼개와 일본의 향후 역할을 짐작케 한다. 앞서 지난해 11월 호주를 방문한 아소 다로 일본 자민당 부총재는 한 강연회에서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에 일본(Japan)이 참여하면 '조커스'(JAUKUS)'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람 이매뉴얼 주일미국대사는 이날 야마다 시게오(山田重夫) 주미 일본대사와 함께 참여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 대담에 “지금까지의 ‘거점 중심’(Hub and Spoke) 동맹 구조는 현 시점에 적합하지 않다”며 “중대한 전환의 시기를 맞아 ‘격자형(lattice-like)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언급한 '격자형 구조' 전략은 ‘미니래터럴리즘(minilateralismㆍ소자주의)’을 의미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같은 거점 중심 동맹 대신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진 3~4개국 정도의 ‘소수정예’ 협의체를 통해 다양한 사안별로 헤쳐모여 중국을 신속하고 촘촘히 견제하는 방식이다
이매뉴얼 대사는 격자형 안보 전략을 구성하는 요소로 오커스와 함께 쿼드(Quad, 미국·일본·인도·호주),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로 구축된 한·미·일 삼각동맹, 11일로 예정된 미·일·필리핀 3국의 정상회의를 들었다. 일본이 오커스에 합류하면 일본은 미국 주도의 모든 핵심 다자 협력체에 참여하는 유일한 동맹국이 된다.
사실상 미국과 안보를 분업하는 역할이 맡게 될 수 있다. 이 자리에서 이매뉴얼 대사는 “대서양과 인도·태평양은 분리할 수 없는 단일한 전략적 영역으로, (격자 그룹을) 포괄적 전체로 통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구상이 실현된다면 일본의 역할이 인도·태평양 넘어로 확대될 수도 있다.
日 “미국과 어깨 나란히 할 준비됐다”
야마다 대사는 이날 대담에서 “일본이 미국의 파트너로서 글로벌 이슈에 대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라면서 “이번 회담은 양국 관계에서 새 시대의 첫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일본의 혁신적 변화와 안보 정책, 경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며 국방 예산을 GDP의 2%로 확대하고, 무기 수출 금지 조항을 개정하는 등 최근 ‘정상국가화’와 관련한 기조를 설명했다.
이와 관련 이매뉴얼 대사는 “(평화헌법 이후)지난 60년 동안의 구조가 앞으로의 60년에도 적합한지 고민했다”며 “답은 ‘아니오, 그럴 필요가 없다’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일이 다른 구조를 갖게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방미 전 기시다 총리는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의 억지력과 (군사적) 대응 능력을 키우는 것은 미·일동맹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무기 공동 개발·생산과 함께 주일미군·자위대의 지휘통제와 관련한 장기 비전에 합의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당장 필리핀에 자위대를 파견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특히 현재 3성 장군인 주일미군사령관을 실질적 작전권을 가진 4성 장군으로 격상하는 방안이 거론되면서 외교가에선 “미국이 장기적으로 일본 도쿄에 동북아사령부를 창설해 한·미연합사의 역할을 통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미국의 아시아 핵안보 정책을 총괄했던 리처드 롤리스 전 미 국방부 아시아태평양안보담당 부차관은 최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대북 대화의 진전이 없으면 인태사령부, 한국, 일본을 더 깊게 통합해야 한다”며 동북아사령부 창설 가능성에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외교 소식통은 “현실적으로 당장 실현될 가능성은 낮지만 동북아사령부의 창설은 북한을 겨냥한 주한미군의 성격 변화를 의미한다”며 “북한을 막아야 하는 한국의 입장에선 미국에 반대해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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