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욱의 슬기로운 금융] 사과 한 개 사기 힘든 팍팍한 삶… 선거는 물가에 달려 있다
물가안정-불경기·경기회복-고물가
국가들 두 선택지 앞에 서 있어
인플레 기대심리 잡기 중요
감세만 집중땐 역효과 날 수도
내일은 국회의원 선거 날이다. 지난 몇 달 동안 나라가 선거운동으로 들썩거렸다. 특히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개발 공약이 넘쳐났다. 자기만이 이 일을 해낼 수 있고, 자신은 약속을 꼭 지킨다며 한 표를 호소하지만 이런 정치인이 가장 위험하다고 하겠다. 그린벨트가 다 풀리고, 지역마다 공항이 들어서고, 동네마다 GTX가 지나가는 것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은 이런 공약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물가안정을 더 희구한다. 사과 한 개 제대로 살 수 없다면 정치구호는 이미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코로나를 계기로 고물가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네 삶이 너무 팍팍해졌다. 물가가 어서 빨리 잡히기를 학수고대하지만 요즘 나오는 물가대책을 보노라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
선거 때만 되면 정치인들은 몽땅 경제전문가가 된다. 이분들도 먹고사는 문제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본인이 당선되면 한국이 일류 선진국이 되고 자기 지역구가 핵심 경제권역이 될 것이라고 역설한다. 하지만 출마자들의 공약이 다 진행된다면 일류국가는커녕 나라가 위기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지금 거리에서 ‘아파트 재건축 신속 추진’이라는 선거 현수막을 쉽게 볼 수 있다. 만일 현수막을 건 정치인이 당선 후에 정말로 이 공약을 추진하게 된다면 온 나라가 재건축 붐에 휩싸일 것이다. 그러면 건축 기자재 가격과 건설 임금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추가 분담금이 불가피할 것이다. 어찌어찌해서 재건축이 완성된다고 해도 신규 아파트가 대거 공급되니 아파트 가격은 기대 이하로 떨어지고 만다. 평생을 걸쳐 겨우 장만한 아파트가 나의 노후를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골칫거리로 변하는 순간이다. 지금도 아파트 재건축 문제로 곳곳에서 분쟁이 일고 있는 마당에 이런 공약은 모두 같이 죽자는 말과 진배없다. 이른바 개별적으로는 타당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틀리는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개발 공약을 내지 않는 후보자나 공약을 냈더라도 당선 후에 지키지 않는 못 믿을 정치인이 오히려 더 바람직할 수도 있겠다.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두고 물가가 쟁점으로 부상하였다. 어느 참모가 잘한답시고 대통령으로 하여금 물가가 안정되고 있다는 퍼포먼스를 보이도록 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사실 큰 그림으로 보아서 물가는 안정되고 있는 것이 맞다. 지난주에 발표된 3월의 소비자물가(CPI)는 1년 전에 비해 3.1% 상승하였는데, 재작년 하반기부터 그 상승률이 계속 떨어지는 모습이다. 특히 외부여건에 따라 가격변화가 심한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하고 집계하는 근원물가(전체 CPI의 91%)의 경우는 2.4% 상승에 그쳤다.
그렇지만 매일 장을 보는 주부나 식당을 이용하는 직장인이라면 이런 평가에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물가상승률은 내려가도 가격 자체는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머니 사정 탓에 식료품을 위시한 필수품만 겨우 사고 있는데, 이것들만 잔뜩 오르니 더욱 화가 나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물가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다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 이후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불경기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금리를 적극적으로 인상할 때도 강 건너 불구경하던 우리가 달라진 것이다.
물가를 빠르게 하락시킬 방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금리를 확 올려 물건을 사려는 수요를 바짝 죄면 된다. 1970년대 말 미국의 고물가를 잡은 폴 볼커 전 연준의장이 썼던 방법이고(그는 당시 미국의 기준금리를 21.5%까지 올렸다), 현재 미 연준이 채택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다만 이렇게 되면 물가는 잡을 수 있겠지만 경기가 침체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사실 2010년대만 하더라도 물가와 경기는 사이가 좋았다. 경기회복을 위해 아무리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어도 물가가 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덮치고 난 뒤에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고물가와 불경기가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 국가들은 ‘물가안정-불경기’와 ‘경기회복-고물가’의 두 선택지 앞에 서 있는 형국이라 하겠다.
우리 정부는 제3의 길을 택했다. 재정을 풀어 경기도 올리고 물가도 잡는 것이다. 2월부터 농산품 판매가격을 낮추기 위해 유통업체에 1500억원의 긴급재정을 투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시장원리를 벗어났다는 점에서 부작용이 우려된다. 예를 들면, 그간 사과값이 비싸서 구매를 망설이던 사람들이 정부 지원 덕택에 소비를 늘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과 저장량이 줄게 되니 사과값이 되 튀어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다. 값이 비싸지면 수요가 줄어들어 자연스럽게 가격이 내려가는 이치를 무시하고, 특정 품목 위주의 전시 행정에만 급급하다 보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가려지는 것이다.
다만 국민이 물가안정을 체감할 때까지 재정을 무제한으로 투입하라는 대통령의 지시(4.2일 국무회의)는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사람들의 인플레 기대심리를 꺾는 데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가 물가를 잡기 위해 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 인플레 기대심리를 잡는 일이다. 물가안정을 위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실제로 급하지 않은 재정지출을 줄이는 것이 그것이다. 다만, 일각에서 주장하는 세금감면 등은 재정확대와 다를 바가 없어 혼란스럽다. 더구나 다른 세금은 다 깎아주면서 직장인들이 내는 근로소득세를 늘려서는(총 세수 대비 비중 : 2022년 14.5% → 2023년 17.2%) 인플레기대심리의 핵심인 임금상승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
이번 선거는 물가가 쟁점이 되었지만 3년 뒤에 치러질 21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경제활력이 최대 쟁점으로 대두되면 좋겠다.
안희욱 LUX경제그룹대표·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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