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가 8억 싼데 세금은 1.6배...공시가 '기울어진 운동장'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정부가 30년 넘게 쥐고 있던 뜨거운 감자였던 주택정책을 내려놓았다. 문제를 해결했다기보다 골칫거리를 제쳐둔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정부는 더 이상 국민께서 마음 졸이는 일이 없도록 무모한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전면 폐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실화 계획이란 이전 문재인 정부가 2035년까지 서로 차이 나는 공동주택·단독주택·토지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반영률)을 통일해 90%까지 단계적으로 끌어올릴 계획으로 2020년 도입한 로드맵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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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상승이 공시가격 상승 주
2022년 5월 ‘현실화 계획 재검토’ 공약을 내세운 윤 대통령이 취임한 뒤 정부는 2023년도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으로 되돌렸다. 지난해 11월 올해 현실화율을 동결하며 현실화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당시 올해 1월 연구용역을 실시해 하반기 근본적인 개편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덧붙였다. 개편방안이 나오기도 전에 대통령이 서둘러 ‘폐지’라는 결론을 던진 데는 4월 총선을 겨냥한 정치적 의도도 엿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 정부에서 5년간 공시가격을 연평균 10%씩 총 63%까지 올렸고 결과적으로 집 한 채를 가진 보통 사람들의 거주비 부담이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정부에 따르면 주택 소유자의 보유세(재산세+종부세)가 2017년 4조5000억원에서 2021년 11조원, 2022년 9조원으로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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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시가 급등 주범으로 지목됐지만
현실화율 제고 효과는 크지 않아
세율·과표 낮추면 세금 부담 줄어
주택 유형·시세간 형평성 높여야
」
과세 기준인 공시가격 63% 상승이 보유세를 눈덩이처럼 불린 주요 원인이긴 하다. 하지만 공시가격 급등에 현실화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볼 순 없다. 문 정부는 주택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동주택의 공시가격 평균 현실화율을 2020년 이전 68.1%에서 71.5%로 3.4%포인트 높였다. 현실화율 제고를 배제하면 공시가격 상승률이 60% 정도다. 현실화보다 집값 상승이 공시가격을 치솟게 한 주요인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문 정부 5년간 공시가격 상승을 주도해온 서울의 공동주택 실거래가격이 79% 올랐다.
공시가격이 63% 오르는 사이 보유세가 이보다 더 많은 100% 넘게 늘어난 데는 문 정부의 종부세 세율 인상 영향이 크다. 세율 인상이 공시가격 상승과 맞물려 4000억원 이하이던 종부세가 4조원 정도로 10배가 됐다.
공시가격 현실화를 중단한다고 해서 윤 대통령이 말한 '국민의 고통'이 줄어들진 않는다. 세금 부담을 줄이려면 세금 계산 기준 금액인 과세표준이나 세율을 더 낮추면 된다.
공시가격 현실화는 옆에서 거든 것뿐인데 세금 급등 비난의 표적이 된다면 억울할 것이다.
적정가격과 동떨어진 공시가격
공시가격 현실화는 땅값부터 공시제도를 도입한 1989년 이후 줄곧 필요성이 제기된 난제다(주택 공시제도는 2005년 만들어졌다). 공시가격과 법적으로 ‘통상적인 시장에서 정상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 성립된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인정되는 가격’인 적정가격과의 괴리가 문제였다. 공시가격이 시가나 거래가능가격으로도 불리는 현실 가격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공시제도 도입 때 급격한 세금 증가를 우려해 공시가격을 낮게 책정한 원죄 탓이다.
역대 정부가 현실화를 추진했지만, 엉성했고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며 유야무야됐다. 1994년 김영삼 정부는 직전 노태우 정부 때 65~70%인 국세청 공동주택 기준시가(현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70~80%로 올렸다. 이어 김대중 정부는 70~90%까지 높였다. 2005년 노무현 정부는 전용 85㎡ 이하의 현실화율을 70%에서 75%로 조정했다.
노무현 정부는 공시지가 현실화에도 나서 2004년 ‘적정화(현실화) 추진’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005년 공시지가 연차보고서에 “현실화를 2년에 걸쳐 2004년 76%, 2005년 91%로 추진했다”고 담았다. 이전 현실화율이 2002년 56%, 2003년 66%였다. 하지만 2004년(76%)과 2005년(91%) 현실화율은 신빙성이 떨어졌다. 2006년 이후 연차보고서에서 이들 수치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2006년 국토부가 국세청의 공동주택 기준시가를 공시가격으로 바꿔 이어받으면서 밝힌 현실화율은 80%였다. 그러나 이후 정부에서 현실화율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2011년 현실화율이 72.7%였고 문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수립하기 전인 2017, 2018년 현실화율이 68.1%였다. 끊이지 않은 부실 산정 논란도 현실화율을 높이는 데 발목을 잡았다. 그렇지 않아도 미덥지 않은 가격인데 자꾸 올리면 어떡하냐는 반발이었다.
실거래가 20억 싼데 공시가 30억 더 높아
공시가격 현실화 포기로 적정가격과의 괴리 해소 숙제가 남게 됐다. 공시가격은 보유세 외에도 건강보험료와 기초연금 등의 부과 기준으로도 활용된다. 어떻게든 대책이 있어야 한다. 특히 부동산 유형과 시세에 따라 현실화율이 크게 차이 나는 것은 문제다. 조세 공평성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밝힌 올해 현실화율을 보면 부동산 유형과 시세 등에 따라 최대 22.9%포인트 차이 난다. 시세 9억원 미만 표준단독주택 현실화율이 52.4%인데 시세 15억원 이상 아파트는 75.3%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110억원에 팔린 아파트 공시가격이 72억원으로 현실화율이 65%지만 130억원에 거래된 같은 지역 단독주택 현실화율은 절반에 못 미치는 32%(공시가격 42억원)다. 아파트가 몸값은 20억원 저렴한데 공시가격은 30억원 더 높다. 해당 아파트 보유세는 7000만원으로 단독주택(3500만원)의 두 배다. 성동구 성수동에선 20억원에 거래된 아파트 공시가격이 14억원(현실화율 70%)이고 인근에서 8억원 더 비싸게 팔린 단독주택 공시가격은 3억원 낮은 11억원(현실화율 40%)이다. 보유세가 각각 360만원과 230만원으로 아파트가 단독주택의 1.6배다.
정부는 현실화율을 더 높이지 않더라도 현실화율 격차를 좁혀 형평성을 높여나가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기울어진 운동장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조세 정의가 구현된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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