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의 아트&디자인] 전기톱 든 구순의 예술가 김윤신의 봄
나이 오십이 되어 삶의 터전을 멀리 옮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민 간 조카를 보기 위해 49세에 아르헨티나에 여행 갔다가 거기서 40년을 살았습니다. 요즘 미술계에서 높은 관심을 받는 김윤신(89) 작가 얘기입니다.
지난해 3월 그가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관에서 개인전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를 열 때만 해도 미술계엔 그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한국에서 활동하다가 1984년 이주했고, 구순을 앞둔 나이에 근육질 팔로 톱질과 망치질을 하는 여성이라는 사실에 다들 적잖이 놀랐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나무로 만든 그의 작품이었습니다. 그가 깎고 다듬은 작품들은 투박하면서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하늘 향해 올라가는 듯한 형상의 기둥은 원시적인 힘을 보여주는 동시에 보는 사람을 숙연하게 하는 위엄까지 갖췄습니다.
1935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김윤신은 1959년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했습니다. 1964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조각과 석판화를 공부했고, 1969년 귀국해 10여 년 동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다 아르헨티나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 한국에서는 얻을 수 없는 아름드리 나무들에 반해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낯선 이국땅에서 예술가로 살 건가, 고국에서 편안하게 교수로 살 건가. 아니다, 그래도 나는 예술가로 남을 것이다 했죠.”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그에게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1월 국내 메이저 화랑인 국제갤러리와 글로벌 갤러리 리만머핀이 공동 소속 계약을 맺고 전 세계에 그를 알리겠다고 나섰습니다. 평생 조각을 하고 그림을 그려왔지만, 그가 상업 갤러리와 손잡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어 뉴욕과 서울에서 그의 전시가 열렸습니다. 리만머핀은 뉴욕 갤러리에서 지난달 14일부터 이달 6일까지 전시를 열었고,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 K1, K2에서 지난달 19일 개막한 전시는 이달 28일까지 이어집니다. 놀라운 소식은 더 있습니다. 작가는 오는 20일부터 11월 24일까지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제60회 국제미술전 본전시에 참가합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작업하며 살다가 때가 되면 떠나자 했고, 그래서 멋진 공동묘지에 한 자리 예약도 해뒀어요.” 지난해 이렇게 말했던 그가 지금 한국에서 눈부신 봄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었지만, ‘이변’이나 ‘기적’은 아닙니다. 그는 “나는 나이 상관없이 그냥 사람이에요. 열심히 작업하다가 딱 가는 거, 그게 내 소원”이라며 평생 작업에만 푹 빠져 살아온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래도 김윤신의 이 극적인 ‘봄날’ 스토리는 생각할수록 흥미진진합니다. 두려움 없이 길을 떠나고, 평생 나무와 대화하며 한 길을 걸어온 그의 오늘에 경의를 표합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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