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북일 회담 고위급 접근"…'전수방위' 탈피 사실상 공식화

강태화 2024. 4. 8.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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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북한 당국과 고위급 접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상회담의 목적으로는 납북자 문제 해결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안정적 관리 등을 내세웠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5일 일본 도쿄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기시다 총리는 7일(현지시간) 보도된 CNN과의 인터뷰에서 북·일 정상회담을 위한 당국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히면서 “정상회담 추진의 목적은 ‘미해결 문제들’을 해결하고 양국의 안정적 관계를 촉진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미해결 문제는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그간 김정은과 만날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혀왔다.

이에 대해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2월 15일 “얼마든지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나갈 수 있다”며 기시다 총리의 방북이 가능하다는 담화를 냈다. 그러다 지난달 26일엔 “조·일(북·일) 수뇌회담은 관심사가 아니다”라며 입장을 바꿨다. 이 과정에서 김여정은 “일본이 납치 문제가 해결됐다는 것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며 회담의 거부의 배경이 납북자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일본은 납북 일본인이 17명 중 12명이 북한에 남아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북한 당국은 북한에 남은 납치 일본인은 8명뿐이고, 이들이 모두 사망해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인 지난 2일 평양시 교외의 군부대 훈련장에서 발사한 신형 중장거리 고체탄도미사일 '화성포-16나'형의 첫 시험발사를 현지 지도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3일 보도했다. 뉴스1


미국 케이토 연구소의 에릭 고메즈 선임연구원은 이날 외교안보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문에서 “(한·미의)북한과의 외교는 이미 바닥 상태이고, 만약 일본의 노력이 실패해도 상황이 더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북·일 정상회담을 환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기시다 총리는 이날 인터뷰에서 일본이 평화헌법에 따른 전수방위(專守防衛·공격을 받을 경우에만 방위력 행사) 원칙에서 탈피해 점차 ‘전쟁이 가능한’ 정상국가로 변모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폈다.

기시다 총리는 “러시아의 침공과 중동을 둘러싼 계속된 상황, 동아시아의 상황을 목도하면서 역사적 전환점에 직면해 있다”며 “이것이 일본이 방위 역량을 근본적으로 강화하는 결정을 내리고, 일본의 안보 정책을 크게 전환한 이유”라고 말했다.

특히 “이웃에 탄도미사일과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고, 불투명한 방식으로 국방 역량을 증강 중인 나라들이 있으며,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가 있다”며 북한과 중국의 위협을 재무장의 결정적 이유로 들었다.

기시다 총리는 이어 “일본의 억지력과 대응 능력을 키우는 것은 미국과의 동맹을 위해 필수적이고, 미국이 이를 이해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8일 브리핑에서 미·일 관계에 대해 "사실상의 군사 동맹은 이미 존재한다"면서 "우리는 국경에서 가까운 일본 영토에 미국의 군사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는 언제나 평화조약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에 걸림돌로 작용해왔다"고 지적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로 개발한 극초음속활공비행전투부(탄두)를 장착한 신형 중장거리 고체탄도미사일 '화성포-16나'형의 첫 시험발사를 지난 2일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뉴스1


한편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은 이날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에서 “일본은 1970년대부터 무기 수출을 자제해왔지만, 안보 문제가 심화되면서 이 정책은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됐다”며 “일본은 전투기를 포함해 다양한 국방 장비를 이전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밝혔다. 다만 일본의 군비 확장에 대한 우려와 관련해선 “일본의 목표는 권위주의 정권을 포함한 국가 및 지역과의 대화의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라며 “일본의 노력이 잘못 해석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앞서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3일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 대담에서 “(이번 회담에서)미·일이 필수적인 군사·국방 장비를 공동 개발하고 잠재적으로 공동 생산하기 위해 협력하는 것을 처음으로 가능하게 하는 조치가 발표될 예정”이라며 이번 회담에서 일본과의 획기적 군사 동맹 강화 방안이 마련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영국·호주가 3자 군사 동맹인 ‘오커스’(Aukus)에 일본을 합류시키는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이 오커스에 참여하게 된다면 극초음속 무기 등의개발 계획인 필러2(Pillar2)에서 미국과 첨단 무기를 공동 개발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국빈 방문을 앞두고 아이젠하워 행정청 건물에 미국과 일본 양국의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밖에 필리핀 정부는 11일 미·일·필 3국 정상회담에서 중국을 억지하기 위해 일본 자위대를 필리핀에 순환 배치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구상이 실현될 경우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이 아닌 자위대의 해외 파견일 수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예상된다. 기시다 총리는 오는 10일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양자회담을 한 뒤 11일 미 의회 연설에 이어 사상 첫 미·일·필리핀 3국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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