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볶은 건 괜찮고 데친 땅콩은 가렵고… 복잡한 식품 알레르기"

신은진 기자 2024. 4.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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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조선 명의톡톡' 명의 인터뷰
'식품알레르기 명의' 서울아산병원 알레르기내과 권혁수 교수
서울아산병원 알레르기내과 권혁수 교수​/​서울아산병원 ​제공
세상엔 맛있는 게 참 많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어떤 사람에겐 독이 될 수 있다. 식품 알레르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심한 계란 알레르기 때문에 과자를 먹지 못하는 아이, 평생 맛있게 먹어 온 새우를 먹고 갑자기 숨이 안 쉬어져 병원에 실려가는 사람이 존재한다. 서울아산병원 알레르기내과 권혁수 교수에게 다양하고도 복잡한 식품 알레르기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식품알레르기란 무엇인가?
식품 알레르기는 크게 즉시형과 지연형으로 구분한다. 음식을 먹자마자 두드러기, 발진, 호흡 곤란, 혈압저하, 구토 등의 반응을 보이는 거다. 아나필락시스가 즉시형에 해당한다. 지연형은 음식 섭취 후 몇 시간 후에 각종 문제가 생기는 걸 말한다. 복통, 피부 악화, 연하장애, 호산구성 식도염, 만성 설사·복통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아토피 피부염이나 비염도 지연형 알레르기의 일종이다.

음식 섭취와 알레르기 반응 간격이 상당한 지연성 알레르기의 경우, 과민성 장 증후군 등과 혼동하기 쉽다보니 진단이 어려운 편이다. 소화를 시키지 못하는 것과 구분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음식 알레르기라고 해서 보면 실제로는 소화 문제 즉, 불내성 문제인 경우도 많다.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유당불내증이나 밀가루를 먹지 못하는 글루텐불내증이 대표적이다. 불내증은 식품 알레르기가 아니다.

-식품 알레르기는 타고나나?
유전과 환경 모두 영향이 있다. 부모가 둘 다 특정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다 해서 아이도 그 음식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건 아니다. 물론 확률은 더 높다. 부모가 한 명이 알레르기가 있으면 자녀도 알레르기가 있을 확률은 50%, 부모가 모두 알레르기가 있을 때 자녀의 알레르기 확률은 75%까지 증가한다. 또다른 연구를 보면, 쌍둥이 한 명이 땅콩 알레르기가 있을 때 다른 쌍둥이도 땅콩 알레르기가 있을 확률은 약 70%다. 반대로 쌍둥이가 아닌 형제간 알레르기 발생 확률은 10% 수준이다. 이는 식품 알레르기에 유전적 영향이 분명히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반대로 부모는 특정 식품 알레르기가 없으나 자녀는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 부모는 심한 식품 알레르기가 있지만 자녀는 멀쩡한 경우도 있다. 환경적인 영향이 있는 것이다. 면역체계는 다양한 균을 만나며 형성되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알레르기가 사라지거나 갑자기 생기는 건 유전과 환경 중 어떤 영향이 더 큰가?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면역의 착각으로 인해 그냥 체질이 바뀐 거다. 체질문제라고 하면 나이가 들어 갑자기 특정 음식에 알레르기가 생긴 환자들이 굉장히 억울해하는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아직까지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고혈압, 당뇨 체질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나이가 들면서 질병이 생기는 것과 같다. 종종 어떤 때를 기점으로 알레르기가 생겼다며 과거의 본인이나 특정 음식, 의사나 약을 원망하기도 하는데,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음식이 따로 있는 건 아닌가?
모든 음식은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고, 그 중 알레르기 발생 빈도가 높은 음식이 있는 거다. 알레르기라는 건 면역의 착각이다. 인간의 면역체계는 해로운 존재가 몸에 들어오면 기준을 가지고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는 능력이 있는데 그걸 못해서 알레르기 반응이 생긴다. 예를 들어 꽃가루는 지구 어디에나 있고, 인류와 함께 살아온 존재라 우리 몸에 들어와도 '나쁜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면역체계가 체내에 들어온 꽃가루를 기생충이나 바이러스처럼 나쁜 존재라 착각해 공격하는 거다.

-진단은 어떻게 하나?
전혀 연관성이 없는 굉장히 다양한 음식 보기를 주고 알레르기가 있는 음식을 선택하게 한다.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는 음식을 나열해보면 정말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 건지, 정확히 어떤 알레르기가 있는 건지 파악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갑각류 알레르기다. 본인은 새우, 오징어, 홍합 전복, 생선에 모두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며 갑각류 알레르기라고 하는데, 사실 위의 식품들은 교차점이 없는 전혀 다른 종이다. 새우는 갑각류, 오징어는 연체동물, 홍합은 조개류, 전복은 달팽이계, 생선은 척추동물이다. 전혀 다른 계통이기에 위의 식품들에 동시에 알레르기가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정말로 전복 알레르기가 있다면 달팽이를 먹고 알레르기가 발생하지, 홍합을 먹고 알레르기가 생기진 않는다.

-특정 계열에 알레르기가 있으면 그 계통 음식엔 모두 반응하나?
그렇지 않다. 계통이 같으면 교차점이 있기에 알레르기 반응이 발생할 확률이 좀 더 높긴 하나, 완전히 같은 음식은 아니기에 알레르기 반응이 없을 수도 있다. 타이거 새우엔 알레르기 반응을 하지만 단새우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괜찮은 경우도 있다.

또, 볶거나 튀긴 땅콩은 먹어도 멀쩡한데 땅콩버터나 살짝 데친 땅콩, 생땅콩은 먹으면 심한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는 사람도 있다. 열을 가하는 과정에서 단백질 변성이 일어나면서 알레르기 유발 원인이 사라지기도 해서다. 이처럼 음식 알레르기는 직접 먹어보거나 피부에 직접 접촉해보기 전까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식품 알레르기는 혈액, 첩포 시험만으로는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혈액, 피부검사 등의 검사로는 파악할 수 없나?
혈액검사나 피부검사를 시행하긴 하나 한계가 있다. 이 검사들은 제약사에서 만든 시료에 반응하는 정도를 보고 알레르기 여부를 파악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 시료는 음식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만든 것이라 성분 변형이 불가피하다. 실제 음식에 대한 반응과 다를 수밖엔 없다. 검사에선 알레르기가 없다고 한 음식을 먹고 알레르기로 고생하기도 하고, 알레르기 수치가 매우 높은 음식이라서 무작정 피했는데 막상 먹으니 멀쩡한 사례가 생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음식 알레르기를 확증하기 위해선 실제 신선한 음식을 피부에 직접 찔러보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 방법도 음식을 직접 섭취하는 건 아니라 약간의 한계는 있다. 음식을 먹을 땐 씹고 삼키는 과정에서 단백질이 분해되고 위산 등과 반응해 성분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피부에 직접 찔러 알레르기 여부를 살피는 방법은 '특정 식품에 알레르기 반응이 없다'는 걸 확실하게 할 때 유용하다.

-지연성 알레르기 검사(일명 IgG 검사)가 SNS 등에서 유행한다. 이 검사도 의미가 없나?
알레르기 학계에선 지연성 알레르기 검사가 의미가 없다고 본다. 권하지 않는다. 지연성 알레르기 검사를 시행하는 이들은 특정 음식에 대한 항체가 수치가 높으면 이 음식에 지연성 알레르기가 있는 거라 하는데, 높은 항체가가 알레르기 반응을 한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항체는 우리 몸이 나중에 문제 물질이 들어왔을 때 빨리 제거하기 위해 미리 만들어놓은 것이지, 내 몸을 공격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항체가는 변동성도 크다.

기능의학을 하는 이들이 지연성 알레르기 검사에서 항체가가 높은 음식을 계속 먹으면 두통, 피로, 브레인포그, 무기력증, 우울증 등을 유발한다고 하는데 이를 증명하는 제대로 된 연구는 하나도 없다. 전 세계 알레르기 학회, 면역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내용이다. 돈 낭비이니 하지 않길 바란다.

-지연성 알레르기도 안 좋은 반응을 일으키는 건 사실인데 검사가 필요없는 건가?
지연성 알레르기는 보통 만성적인 반응을 유발한다. 아나필락시스와 같은 중증의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성인에선 심각하게 나타나지도 않고, 소아에서도 호산구성 장염이나 식도염 등의 형태로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 소아에서 호산구성 장염은 탈수와 쇼크를 유발할 수 있어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정말로 지연성 알레르기 검사를 해봐야겠다면 첩포시험을 해볼 수 있다. 음식을 이용한 시료를 만든 후 바셀린 등과 섞어 크림처럼 만들거나 종이에 묻힌 것을 피부에 사흘 동안 부착하는 거다. 진짜로 지연성 알레르기가 있으면 시료를 묻힌 곳에 염증이 생긴다. 하지만 첩포시험의 정확도도 50% 수준이다.

좀 더 정확한 검사를 하고 싶다면 이중맹검(의사와 환자가 모두 어떤 물질인지 모르고 시험에 참여)형태로 일정기간 음식을 먹고, 반응을 살피는 방법이 있다.

사실 모든 검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 '회피'다. 즉시형도 지연형도 마찬가지다. 일단 의심되는 음식을 중단한 후에 알레르기 반응이 없어지는 지 확인하는 게 첫 번째다.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검사를 해보는 거다. 혈액검사, 피부검사, 첩포검사 등은 보조적인 수단이다.

-식품 알레르기를 치료할 수는 없나?
이미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알레르기가 있는 식품을 차단하는 게 최고의 치료법이다. 꽃가루나 집먼지진드기 알레르기는 피하요법이나 설하요법 등 면역치료법을 시도할 수 있으나 식품 알레르기는 면역치료요법이 효과가 거의 없다.

식품 알레르기가 있으면 그 음식을 조금씩 자주 먹여 면역을 기르면 된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절대 그래선 안 된다. 매우 위험한 행위다.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원인 물질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정 물질에 자주 노출해 면역력을 기르라는 건 알레르기가 없는 상태에서 통하는 말이다.

만일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항히스타민이나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면 된다. 중증일 땐 에피네프린 투약이 필요하다. 특정 음식에 아나필락시스와 같은 중증 알레르기가 있다면 에피네프린을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문제가 생겼을 때 즉시 사용해야 한다.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식생활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
알레르기 물질은 피하는 게 최선이자 최고의 선택임을 명심해야 한다. 특정 음식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에 굉장히 우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생각을 바꿔보라. 특정 음식을 먹지 않는 건 편식하는 사람도, 다이어트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는 문제임을 받아들이고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음식 알레르기가 심하지 않은 경우라면 적당히 조심하며 살면 되고, 아나필락시스가 있는 경우라면 반드시 에피네프린 주사를 상비하길 바란다. 아무리 노력해도 알레르기 유발물질을 100% 피하기란 쉽지 않기에 생사를 결정하는 아나필락시스에 항상 대비해야 한다.

권혁수 교수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전공의, 전임의를 거쳤으며 2012년부터 서울아산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로서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현재 서울아산병원 천식 · COPD센터 소장과 약물감시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전문분야는 천식, 비염과 두드러기, 약물알레르기, 음식알레르기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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