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이트 아내 교환, 난교가 아니라 생존 [강영운의 ‘야! 한 생각, 아! 한 생각’]
취기와 열기가 뒤섞여 사람들의 얼굴이 불그스레해질 무렵, 한 남성이 다른 남성에게 다가가 귀엣말을 전했다.
“당신 아내와 자고 싶소.”
아무리 취했다 하더라도, 남의 아내를 탐하다니. 남편의 주먹이 다른 사내에게 꽂힐 것 같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편은 환하게 웃으며 “얼마든지”라고 말했다. 남편은 아내와 다른 남성이 텐트로 들어서는 모습을 즐거운 듯 바라보고 있었다.
홀로 남은 남편은 외롭지 않았다. 텐트로 간 남성의 부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싱긋 웃더니 손을 잡고 다른 텐트로 들어갔다. 요즘 말로 스와핑, 점잖게 말하면 ‘아내 교환’. 이들뿐 아니었다. 파티에 참여한 모두가 파트너를 교환한 채 잠자리를 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 눈으로는 ‘난교’나 다름없다.
삼류 야설의 이야기가 아니다. 북극권 원주민을 뜻하는 ‘이누이트’ 사회에 대한 기록이다. 과거에는 ‘날것을 먹는 사람’이라는 멸칭인 ‘에스키모’로 불려왔던 이들이기도 하다. 인류학자 다수가 이 같은 아내 교환 관행을 보고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발견됐다면 “집단 난교 파티, 도심 한복판서 발각”이라는 제목이 붙은 가십 기사가 올라왔겠지만, 학자들은 다른 시각으로 이를 바라봤다. 이들의 난교에는 사회·문화적 맥락이 존재한다는 이유에서다.
덴마크 인류학자 버킷 스미스가 한 이누이트의 텐트에 도착했다. 이누이트의 생활과 관습을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며칠간 머물렀을 때쯤, 텐트에 또 다른 손님 부부가 찾아왔다. 주인과 손님은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들은 크게 개의치 않은 듯 보였다. 주인은 손님 부부에게 따뜻한 잠자리를 줬고, 손님은 자신이 가진 선물을 선뜻 주인에게 건넸다.
손님이 며칠간 머물다 떠나는 날. 떠나는 손님 부부의 모습이 도착했을 때와 달랐다. 아내가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자신의 아내를 손님에게 내어주고, 손님 역시 자신의 아내를 그 집에 맡긴 것. 선물을 교환하듯 아내도 함께 바꾼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이를 지켜본 버킷은 이렇게 적었다.
“에스키모는 낯선 사람들끼리 선물 교환을 통해 결연을 맺는다. 그중 가장 가치 있는 선물은 자신의 ‘아내’다.”
아내 교환이 일부 사람의 일탈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또 다른 인류학자 앤더슨 스텐판슨이나 에드워드 넬슨에 의해서도 보고됐기 때문이다. 북극권 이누이트의 다양한 부족에서 아내를 교환하는 관습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넬슨의 보고는 보다 적나라하다. 아내 교환이 집단으로 이뤄지는 ‘파티’를 기록했다. 여러 주민이 모두 한 야영지에 모여 아내를 바꿔 잠자리를 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 넬슨은 이를 ‘아스킹 페스티벌’이라고 이름 지었다. 집단 교환의 현장은 베링 해협, 시베리아 등 북극권 원주민 여럿에서 발견된다.
학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아내를 교환하고, 이를 기뻐하는 사람들이라니. 서구인의 ‘눈’에는 분명 야만의 흔적처럼 보였다. 인종 차별주의자들이 오랜 시간 동안 주장한 대로, 야만족이 야만적 행동을 했을 뿐이었을까.
오랜 관찰의 결과 학자들은 이 같은 인종 차별적 인식에 반대되는 결과를 발표한다. 이누이트의 아내 교환은 미친 성욕 때문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사적 행위’라는 설명이다.
요지는 이렇다. 이누이트는 북극의 사람들. 그들은 영하 30도 이하의 자연환경에서 억척스러운 삶을 일궜다. 따뜻한 자연환경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설국에서는 사람 간 협력이 필수적이다. 낯선 사람과도 그렇다.
이누이트는 모르는 사람들과도 결연을 맺어야 했고 그 경계심을 푸는 데 있어 선물만 한 것이 없다. 가장 귀한 것을 내놓을 때라면 더욱더. 아내라면 귀한 선물 중 하나였을 것이다.
스와핑이 일어난 뒤 새집(?)에서 아이를 낳았을 때도 그 아이들은 형제와 같이 지냈다. ‘반반을 공유하는 동료’라며 서로에게 애정을 표시했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끼리도 아내를 공유함으로써 자신과 가까운 ‘편’을 만든 것이다.
이해관계가 맞는 사람들끼리 아내 교환은 더욱 적극적으로 장려됐다. 이누이트의 한 가족을 들여다본다. 이 집 가장은 연어 낚시의 달인이다. 그리고 아내는 가죽을 기깔나게 닦았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이 가정에는 연어를 손질할 사람이 없었다. 아내는 닦을 가죽이 없었다. 남편이 사냥꾼 체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불협화음이 일고, 두 사람의 불화는 커져간다. 그때 마침 방문한 손님 부부. 신의 계시인가. 이들 커플은 남자가 사냥꾼이고, 아내가 생선을 잘 손질한다. 두 가장 사이의 의사는 일치했다.
“우리 아내를 교환합시다.”
이누이트 사람들이 짐승처럼 아무하고나 관계를 하는 건 아니었다. 특히 근친 사이에서는 아내 교환 관행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가까운 친인척 사이에 아내 교환이 이뤄졌다 근친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아내 교환’ 관행이 근친혼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아시다시피 척박한 북극의 땅에서는 인구 밀도가 무척이나 낮다. 주변에서 짝을 찾으려 눈을 돌려봐도 보이는 건 친족뿐. ‘근친혼’의 위험에 노출되는 셈이다. 현명한(?) 이누이트들이 멀리서 손님을 찾아왔을 때 아내를 교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혈연 관계가 전혀 없는 ‘아내’를 새로 맞이해 깨끗한 피를 가족으로 들이겠다는 뜻. 그들에게는 ‘아내 교환’에 나름의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난교 관행은 비단 이누이트만의 일은 아니었다. 자연환경이 척박해 생존이 힘겨운 원주민 집단 사이에서 왕왕 일어난다. 남미 원주민 사회가 대표적이다.
특히나 남미 원주민 중 ‘쿨리나족’은 전형적인 일부일처제를 거부한다. “아이를 갖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의 정액이 필요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한 여인은 남성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갖지만, 전혀 비난받지 않는다. 아이를 잉태할 엄마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지역사회 지지가 있어서다. 쿨리나족 모두는 ‘한 아이-여러 아버지’의 개념을 공유한다. 이 역시 척박한 땅에서 협력을 도모하기 위한 기술이었다. 여러 사람과 끈끈한 관계로 나아가는 데에 ‘섹스’만큼 좋은 ‘접착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시 한번 ‘사색’한다. 비정상적인 성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기술이었음을. 어떤 난교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3호 (2024.04.03~2024.04.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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