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둘이 여행' 트라우마 없애준, 친언니와의 첫 여행

전미경 2024. 4. 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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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향이 넘 달라 걱정했는데... 둘을 모두 만족시킨, 새로운 여행 방식 '호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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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 기자]

 언니와 단둘이 호캉스를 떠났다.
ⓒ 픽사베이
 
여행도 좋지만 집에 있는 게 더 좋아 여행을 잘 다니지 않았다. 여행의 흥미보다는 과정이 번거로워 귀찮은 마음이 더 컸는지 모른다. 10년 전 북경여행을 끝으로 어떤 여행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명절 때 여행을 간다는 언니의 여행지를 검색하다 나도 여행이 가고 싶어 져 예약했던 호캉스. 언니와 단둘이 여행도 처음이지만 호캉스도 처음이다. 심지어 KTX도 처음이다. 아마도 모든 게 처음이지 싶다.   
    
여행의 모든 여정을 함께한다는 것은 서로를 보여주는 일인데. 사실 나는 대부분의 여행을 혼자 해서 혼자 하는 여행에 익숙해져 있다. 엄마를 제외한 누군가와 단둘이 그것도 첫 여행은 징크스가 있을 정도로 모두 좋지 않아 언니와의 이번 여행이 조금은 걱정되었다. 아무리 자매라도 모든 걸 다 알 순 없고 마음이 딱딱 맞는 것은 아니고 성격도 달라 다소 염려가 되었지만 이번 여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편으론 기대되고 설렜다.       

"소와 사자가 결혼했는데 소는 사자한테 풀만 주고 사자는 소한테 고기만 주더래."

언니의 말에 나는 깔깔 웃었다. 우리가 하루종일 먹은 음식이 딱 그랬다. 회를 먹는데 내가 계속 한 가지만 먹어서 언니는 내가 좋아하는 건 줄 알고 안 먹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았는데 서로 다른 취향 쪽을 먹은 것이다. 누룽지도 그랬다. 누룽지물을 좋아하는 나와 달리 밥알을 좋아하는 언니였는데 내가 누룽지 물만 잔뜩 준 것이다. 샐러드 속 치킨과 새우도 그랬다. 심지어 KTX 자리 취향도 나는 통로 쪽 언니는 창쪽을 선호했다.

어쩜 몰라도 이렇게 모를까. 오십 년이 넘도록 매일 통화를 하면서 서로의 취향을 너무 몰랐다. 커피를 좋아하는 언니와 달리 나는 전혀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언니는 콜라, 과일 주스 같은 음료를, 나는 오로지 생수를. 언니는 영양떡을 나는 팥떡을. 여행 매 순간 선택한 취향이 달라 서로를 위해 준비했던 음식도 각자 먹었다. 여행을 즐기는 방법도 달랐다. 언니는 호텔방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호캉스는 쉬는 것이니 쉬기만 하겠다고 해서 결국 나 혼자 근처 해변을 산책하며 셀카를 찍었다. 매일 수다를 떨면서도 정작 서로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놀라웠다. 그래도 괜찮았다.          

아는 게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오래전 친구와 난생처음 단둘이 여행 갔을 때를 생각하면 그땐 지옥이었다. 첫날 공항버스 출발 1분 전에도 나타나지 않아 난리를 쳤던 친구는 여행 내내 호텔과 음식에 불만하다 마지막까지 좋지 않아 결국 악몽만 남긴 채 절교했다. 그때가 바로 10년 전 마지막 여행이다. 달라도 너무 달랐고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아서 힘들었던 내게 둘만의 여행은 트라우마처럼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번 언니와의 여행이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어 다행이었다.

사실 언니와의 여행은 꿈도 꾸지 않았다. 성향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니가 아무개네는 자매들끼리 여행 갔대 라며 부러워하는 눈치를 보일 때도 매번 모른척했다. 그럼에도 언니는 끊임없이 그런 얘기들을 계속 했다. 어느 날은 나도 작정한 듯 "언니 우린 가봤자 싸워! 성격 알면서, 꿈도 꾸지 마"라고 완전히 선을 그으며 못을 박았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언니는 "나도 이젠 나를 위해 살 거야"라며 지금까지의 삶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인생 짧아 뛰어야 돼, 라고 말하는 언니를 마음 깊이 이해하며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걷기 싫어하는 언니를 위해, 뚜벅이인 나를 위해 선택한 새로운 여행 방식의 호캉스는 우리에게 딱 안성맞춤이었다. 전국 호텔투어만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언니는 단조로운 호텔침대에 누워 "아 좋다"를 연실 했다. "언니 그렇게 좋아?" 하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단순 명료한 구조가 맘에 든다고 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자신의 손이 닿아야만 정리되는 귀찮은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복잡한 집의 공동체와 지루함이 싫다고 했다. 그 느낌을 알 것도 같았다.      

한때 나는 세컨드하우스를 찾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때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어차피 혼자 사는데 왜 다른 공간을 가려고 하지?"라며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었다. 그 말에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집의 익숙함이 싫었던 거 같다. 건강한 집밥이 아무리 좋아도 가끔 고급진 외식을 하고 싶은 딱 그런 기분처럼.

집이 출근과 퇴근 사이에 존재하는 간이역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는데 쉼이 '일' 이 되는 기분에 휩싸이곤 했었다. 일과 쉼의 연장선에서 머무르는 집이 아닌 오로지 쉼을 위한 공간으로 끊임없이 주말용 세컨드하우스를 찾아 헤매었던 것 같다.

보 여행자 언니에게 한 수 배우다

몇 년 전 서울서 자취하는 조카가 매주 호텔을 간다고 했을 때 (그때는 호캉스란 단어를 몰랐다) 그냥 호텔투어가 취미인가 보다 하면서도 어차피 혼자 있는데 왜 호텔을 갈까 의아해했었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공간이 주는 쉼에는 어떤 울림이 있는데 그땐 잘 몰랐다.

그동안 내가 했던 여행은 모두 보여주기 식이었다. 몇 개국 어디를 갔는지 과시하듯 좌표 찍기에 열중하다 보니 아무리 멋진 풍경을 봐도 공허하기만 했다. 한달에 한번 해외 여행을 간다는 사람을 봤을 때도 아무 감흥이 없었다. 여행이란 것이 내게 익숙한 것이 아닌 낯선 공간과 마음을 나누며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인데 언제나 외부로 향해 있던 시선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을 많이 놓쳤던 것 같다. 내 마음을 나에게 나눠주며 온전히 즐겼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혼자 해변가를 산책하는데 불안했던 예전과는 다른 안도감이 있었다. 마음이 평온했다.       

짧다면 짧은 하루지만 언니와 나는 서로 알지 못했던 많은 부분을 공유하며 더 깊숙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언니를 위로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내가 언니한테 위로받고 있었다. 언니는 여행 내내 평온한 사람이 되어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여행 경력으로 치면 내가 훨씬 많지만 초보 여행자 언니에게 한수 배운 기분이었다. 언니와 여행을 안 했더라면 평생 후회할뻔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언니와는 마음의 거리가 훨씬 더 가까워졌고 친밀감의 농도는 짙어졌다. 이젠 언니의 어떤 말도 행동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을 거 같다. 언니의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면서 나의 버킷 리스트도 채워졌다. 온전히 여행을 즐기는 법을 알았으니 이젠 기꺼이 즐겁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첫 여행이 궁금했던 막내는 기념으로 숙박비를 후원했다. 자신은 절대 동행 하지 않겠지만 다음 우리가 또 여행을 간다면 경비의 절반을 후원하겠다는 공략을 걸었다. 활력이 난다. 다음 여행지는 제주가 될 것 같다. 집도 좋지만 여행은 더 좋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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