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발견] 제주 흑돼지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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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봄날, 나는 중산간의 녹산로를 달리고 있었다.
흔히 '똥돼지'라 불렸던, 그 많던 제주 토종 흑돼지는 지금의 돼지와 어떻게 다르단 말인가.
그리고 당시 거의 유일하게 제주 토종 흑돼지를 사육하던 김응두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제주 토종 흑돼지의 멸종 위기를 맞았을 때 축산진흥원에서 제주 전역을 뒤져 순수 혈통의 흑돼지 암놈 4마리와 수놈 1마리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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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봄날, 나는 중산간의 녹산로를 달리고 있었다. 벚꽃 잎 분분하게 날리고 샛노란 유채꽃 한창인 그 길을 달리며 봄 노래라도 신나게 따라 부르려 라디오를 켰을 때 마침 정오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시 제주 방문객을 대상으로 최고의 음식을 뽑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해엔 흑돼지가 1등을, 은갈치가 2등을 했다는 소식이다. 뭐 새로운 뉴스거리도 아니다. 그 두 가지 중 엎치락뒤치락 1, 2등을 경쟁하니까.
심드렁하게 채널을 바꾸려던 참, 뒤이어 나온 뉴스가 귀를 사로잡았다. 제주 흑돼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는 뉴스였다. 소름이 돋았다. 천연기념물이라니, 그러면 앞으로 그 맛있는 제주 흑돼지는 먹을 수 없단 말인가.
당황스러움은 잠깐이긴 했다. 알고 보니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건 제주 ‘토종’ 흑돼지였다. 가만있어보자, 그럼 우리가 지금껏 먹은 제주 흑돼지는 무슨 돼지란 말인가. 분명 집집마다 돼지를 키웠고 마을 잔치 때마다 반드시 돼지를 한두 마리씩 추렴해 잔치를 치르던 이 섬만의 흑돼지 문화가 있었다.
흔히 ‘똥돼지’라 불렸던, 그 많던 제주 토종 흑돼지는 지금의 돼지와 어떻게 다르단 말인가. 난데없이 흑돼지 미궁에 빠져버린 나는 그 뒤를 밟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 거의 유일하게 제주 토종 흑돼지를 사육하던 김응두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흔히 접하는 제주 흑돼지는 제주 토종 흑돼지와는 다르다. 토종 흑돼지는 몸집이 작고 새끼를 적게 낳으며 다 키우려면 오래 걸린다. 생산성이 낮다는 말이다.
빨리 자라고 새끼를 많이 낳고 고기를 많이 얻기 위해 우리 돼지들은 1900년대 초부터 한국에 도입된 요크셔와 버크셔, 듀록 등과 섞이기 시작했다(오늘날 제주 여행자들이 흔히 접하는 흑돼지는 버크셔 품종이 대부분이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함께 돗통시(돼지의 ‘돗’과 화장실의 ‘통시’가 합쳐진 말)가 사라지며 제주 토종 흑돼지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주 토종 흑돼지의 멸종 위기를 맞았을 때 축산진흥원에서 제주 전역을 뒤져 순수 혈통의 흑돼지 암놈 4마리와 수놈 1마리를 찾아냈다. 1986년의 일이었다.
그 봄날 녹산로를 달리며 들었던, 2015년의 뉴스 속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흑돼지는 그들의 후예였던 것이다. 2024년 지금 제주 토종 흑돼지는 어떤 상황일까. 산업화가 시작되고 제주 양돈산업이 자리잡은 대신 우리는 제주 토종 흑돼지를 내어주었다. 하지만 잊지는 않았다.
토종 흑돼지 발견 이후 그들의 귀환 작업도 진행됐다. 맛의 결정적 DNA를 물려받은 재래 돼지의 후예 ‘난축맛돈’이 오랜 연구 끝에 선 보이기도 했다. 제주에는 토종 흑돼지와 신품종 돼지고기를 파는 소수의 식당이 존재한다. 이 봄 제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한번쯤 토종 흑돼지에 도전해 보시길. 흔히 먹던 흑돼지와는 사뭇 다른 식감과 육향에서 새로운 제주의 맛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고선영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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