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벚꽃길서 희생과 사랑을 생각하다 [우성규 기자의 걷기 묵상]

우성규 2024. 4. 6.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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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숭실대·총신대·서울현충원
서울 동작구 총신대 교정에 새겨져 있는 교훈. 신자·학자·성자·전도자·목자가 돼 달라고 당부한다.


벚꽃이 만개한 4월의 주말, 서울 지하철 7호선 숭실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걷기 묵상을 시작한다. 숭실대 정문으로 들어가 안익태기념관과 베어드홀을 거쳐 한경직기념관 옆 한국기독교박물관에 들어선다. 대학생 일부가 박물관 안에서 유리창에 코가 닿을 듯 열중해 전시물을 들여다보고 있다. 1887년 만주에서 존 로스 선교사를 중심으로 존 매킨타이어와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등이 함께 번역한 최초의 한글 신약성경인 ‘예수셩교젼셔’가 전시돼 있다. 경주 불국사에서 발굴된 고대 경교(景敎)의 돌십자가, 천주교 전래 초기의 교리책들도 눈에 띈다.

박물관은 매산 김양선(1907~1970) 목사와 가족들의 희생으로 설립됐다. 김 목사는 숭실학교 재학 중 배민수 문학린과 함께 항일 비밀결사인 청구회 활동을 하고 평양학생시위를 주도하다 옥고를 치르는 한편 신사참배에 저항하다 투옥되기도 했다. 그의 외조부는 로스 선교사와 함께 한글 성경을 만든 의주 청년 백홍준이었고, 부친 김관근 목사는 호러스 G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압록강에서 세례를 받은 이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교회사와 고고학에 대한 관심을 이어간 매산은 해방 이후 월남해 서울 남산의 옛 조선신궁 자리에 한국기독교박물관을 설립했다.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어 북한에 남아있던 사료와 유물을 남한으로 실어 낸 그는 이 과정에서 부인과 딸을 피격으로 잃기도 했다.

박물관을 나와 상도동 숭실대에서 사당동 총신대로 향하는 고개를 넘어간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 소속 신학교인 총신대 교정엔 다섯 가지 교훈(校訓)이 돌에 새겨져 있다. 먼저 ‘신자(信者)가 되라’ 곧 믿음이 먼저란 뜻이고, 다음은 ‘학자(學者)가 되라’ 즉 배움의 자세를 잃지 말라는 의미다. 이어 ‘성자(聖子)가 되라’고 나오는데 음, 이제부터 쉽지 않은 길이다. 다음 ‘전도자(傳導者)가 되라’에 이어 마지막으로 ‘목자(牧者)가 되라’가 등장한다. 목회자의 길이 절대 쉽지 않음을 알리는 이 교훈은 개혁주의 신학을 이끈 박형룡 박사가 1948년 6월 신학교 특별기도회에서 설교한 내용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총신대 교정 뒤편으로 서달산 자락길을 통해 능선에 올라 상도출입문을 통과해 국립서울현충원 경내로 진입한다. 고요하고도 한적하며 무엇보다 벚꽃이 늦봄까지 피어나는 산책길이다.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묘소를 지나 나오는 임시정부요인묘역과 독립유공자묘역에 더 오래 머물게 된다. 크리스천 애국지사의 묘비가 이곳에 모여 있다.

“예수님 말씀에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냥 한 알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가 많이 맺힐 터라 하셨으니, 내가 국가독립을 위하여 죽으면 나의 동포 마음속에 민족정신을 심을 것이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명이었고, 일제 말기 변절한 감리교 지도부와 달리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했으며, 해방 후에는 “양들을 버리고 갈 수 없다”며 월남을 뿌리치고 평남 룡강군 교회에 남아있다가 6·25전쟁 때 총살당해 순교한 신석구(1875~1950) 목사의 묘비에 새겨진 내용이다.

‘하나님 사랑이 나라 사랑이요, 이웃 사랑이 민족 사랑이다’라고 새겨진 묘비의 주인공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원장을 역임한 손정도 목사였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를 비롯한 로마서 8장 말씀이 새겨진 주기철 목사의 묘비 역시 이곳에 있다.

서재필 박사와 석호필(프랭크 W 스코필드) 박사, 3·1운동 당시 민족대표였던 유여대 이필주 목사와 정동제일교회 전도사였던 박동완, 연희전문 전신 조선기독대학생이던 김원벽, 여성 독립운동가로 만주에 12개 교회를 개척한 남자현의 묘비 역시 이곳에서 만난다. 양화진이 해외 선교사들을 기억하는 곳이라면 현충원 애국지사묘역은 국내 기독교 독립운동가들을 만나는 곳이다.

글·사진=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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