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렴 같은 수양벚꽃과 황금빛 개나리 사이 무지개다리

남호철 2024. 4. 3.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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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경남 창녕에서 ‘봄(see) 봄(spring)’
경남 창녕군 영산면 반원형 무지개다리인 영산 만년교 좌우로 개나리와 수양벚꽃이 화려하게 핀 모습이 수면에 반영돼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꽃이 앞다퉈 피어나는 봄날, 꽃구경도 하고 소중한 문화유산도 보고 싶다면 이 시절 ‘스타급 여행지’인 경남 창녕 영산으로 가보자. 보석 같은 꽃 속에서 무지개를 밟으며 만년 동안 이어갈 추억을 남길 수 있다.

먼저 그림 같은 풍경의 주인공인 영산 만년교(보물 2564호)다. 길이 13.5m, 너비 3m, 홍예 높이 5m의 무지개다리(虹霓橋)다. 개울 양쪽의 자연 암반을 주춧돌 삼아 화강석을 무지개처럼 쌓고, 그 위에 돌을 올리고 흙을 덮어 반원형 아치 모양의 구조를 갖췄다. 조선 후기의 홍예교 축조 기술을 보여 주는 유적이다.

정조 4년 때인 1780년 석공 백진기가 처음 다리를 만들었지만, 정축년 대홍수 때 떠내려가고 말았다. 이후 나무다리를 걸쳐놓고 사람들이 오갔지만, 홍수가 날 때마다 자주 떠내려가는 탓에 고종 29년인 1892년에 현감 신관조가 석공 김내경을 시켜 석교를 중건하면서 ‘이 다리가 만년을 갈 것이다’ 하여 만년교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원님이 다리를 고쳐 주었다 하여 ‘원다리’라고도 불린다.

봄빛 머금은 작은 개울 위로 무지개다리가 떠 있다. 다리 옆으로는 보석을 꿰어 만든 주렴처럼 수놓아진 수양벚꽃이 폭죽이 터지듯 아래로 쏟아지며 화려한 봄을 축하한다. 이른 아침 햇살을 받은 벚꽃이 영롱하게 반짝인다. 개울 건너편에는 개나리꽃이 황금빛으로 눈부시다.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다. 아래 영산천 잔잔한 물 위에 그 황홀한 장면이 거울처럼 그대로 되비친다. 아치 형태의 무지개다리는 개울에 반영돼 둥근 원을 이룬다. 환상적인 데칼코마니(대칭)다.

이런 풍경은 이른 새벽에 찾아야 마주할 수 있다. 기온이 오르고 바람이 불면 시냇물이 흐트러지며 선경도 흔적 없이 사라진다. 다리에 올라가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만년교 인근 다섯 개의 섬을 갖춘 벼루 모양의 연지못.


만년교 옆엔 연지못이 있다. 마을 뒤 불덩어리 형상의 영축산 화기를 누르고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만든 저수지다. 못의 형태가 벼루 모양이어서 ‘벼루 연(硯)’자를 써 연지라 불린다. 봄철 연못의 풍광이 빼어나다. 연못 안에는 다섯 개의 섬이 떠 있다. 하늘에 뜬 다섯 별을 상징하는 인공섬이다. 가장 큰 섬에 ‘항미정(抗眉亭)’이라는 정자가 서 있다.

항미정은 물의 도시로 유명한 중국 항저우(杭州)의 미정(眉亭)에 빗댄 표현이다. ‘초승달을 닮은 눈썹’이라는 뜻의 아미(蛾眉)가 아름다운 여인을 뜻하는 것에서 보듯, 아름다운 연못이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눈썹(眉)이란 단어를 썼을 것으로 보인다. 구름다리 초입의 ‘항미정 기문’에 이 같은 내용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

큰 섬과 이웃 섬을 구름 같은 나무다리가 이어준다. 연지못 주변에도 수양벚꽃이 많다. 수양벚꽃의 본디 이름은 ‘처진개벚나무꽃’이다. 외형을 충실히 반영한 이름인 듯한데 서정적인 수양벚꽃이란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수양벚꽃의 자태는 늘어진 가지 때문인지 여성스럽다. 가지마다 꽃등불을 내건 듯하다. 벚꽃들이 늘어선 연못 주변을 느릿느릿 산책하면 몸과 마음에 분홍 꽃향기가 스며든다.

함박공원 아래 자리한 고분처럼 보이는 영산 석빙고.


영산천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영산 석빙고(보물 1739호)를 만난다. 잔디 위에 배꼽처럼 볼록 튀어나온 환기구가 없으면 고분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길이 10m, 폭 4.35m, 높이 3.65m로 국내 석빙고 가운데 가장 작다. 현감 윤이일이 영조 재위(1724~1776) 때 부임해 축조한 것이다.

영산석빙고 바로 옆에는 함박꽃과 영산 약수터를 품은 함박공원이 조성돼 있다. 영산 약천(약수터)은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돼 있다. 신라 경덕왕 때 효성이 지극한 나무꾼이 체증(위장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던 노모를 위해 백방 수소문을 해서 여러 가지 약을 써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노심초사하던 차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나무꾼에게 함박꽃이 있는 곳으로 가라는 조언을 해준다. 나무꾼은 함박꽃에 둘러싸인 계곡에서 솟아나는 청수를 노모에게 떠다 드려 병을 낫게 했다고 한다. 함박꽃은 작약이라고도 불리는데, 영산 함박공원 약수터 주변에 작약 4만여 포기가 심겨 있다. 5월이면 작약꽃이 함박 피어난다.

덜 알려져 한적한 계성천 신당교 인근 벚꽃 길.


영산에서 창녕읍내 방향으로 올라가면 계성면 계성천에서 한적한 벚꽃길을 만난다. 계성종합농기센터부터 신당교까지 계성천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이어지는 벚꽃 로드다. 여유롭게 산책하기에 ‘창녕맞춤’이다.

여행메모
78도 알칼리성 부곡온천 피로 회복
4~7일 남지체육공원 낙동강유채축제

영산면은 창녕의 남쪽에 있다. 만년교와 연지못은 중부내륙고속도로 영산나들목에서 가깝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영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보 5분 거리다. 주변에 주차장이 있지만 벚꽃 시즌에는 평일에도 주차하기가 힘들 정도다.

영산에서 가까운 곳에 국내 최대 온천 관광지인 부곡온천이 있다. 전국 최고 수온인 78도의 알칼리성 유황 온천수로 여행의 피로를 풀기에 좋다. 20여개 숙박·온천업소가 몰려 있다.

4일부터 7일까지 창녕 남지읍 남지체육공원에서는 올해 19회째를 맞이하는 ‘창녕낙동강유채축제’가 열린다.

창녕까지 왔는데 우포늪은 그냥 지나치면 아쉽다. 예전의 늪을 메워 농경지로 사용되던 곳을 습지로 복원한 ‘산밖벌’과 모곡제방을 이어주는 ‘우포늪출렁다리’도 빼놓을 수 없다.

창녕=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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