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과 조국이 왜 이들에게 고마워했나 살펴보니 [이봉렬 in 싱가포르]
[이봉렬 기자]
▲ 싱가포르 대사관 건물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는 재외국민들 |
ⓒ 이봉렬 |
이는 2012년에 재외선거가 시작된 이후 국회의원 선거 기준으로 가장 높은 투표율입니다. 재외선거 62.8%의 투표율이 의미하는 바는 어떤 걸까요?
국민이라면 누구나 투표할 수 있어야
먼저 재외선거가 뭔지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재외선거는 1967년부터 독일에 일하러 간 광부와 간호사 등을 대상으로 해외 부재자 투표의 형식으로 처음 시행되었지만, 1972년 유신 선포 이후 폐지되었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 더 지난 2004년, 일본∙미국∙캐나다에 거주하는 재외국민들이 재외선거를 하지 않는 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고, 2007년에 헌법불합치 판결이 났습니다. 이후 2009년에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어 재외선거제도가 도입되었고,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적용되었습니다. 이제껏 세 번의 대선과 네 번의 총선에 재외선거가 함께 했습니다.
재외선거에는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는 걸까요? 원칙적으로 우리나라 국적을 가지고 해외에 체류하고 있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집계한 재외국민 수를 보면 2023년 기준으로 해외 영주권자 102만 3011명, 일반 체류자 129만 3842명, 유학생 15만 1116명으로 다 더하면 246만 7969명이나 됩니다.
하지만 246만 명이 넘는 재외국민이 모두 유권자로서 투표에 참여하지는 않습니다. 선관위가 추정하는 18세 이상 재외 선거권자는 197만 4375명으로 이들이 실제 투표를 하려면 재외선거인 또는 국외부재자로 미리 등록해야 하는데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설명하는 재외선거 대상자. |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
이번 22대 총선의 재외선거인명부에 등재된 유권자 수는 14만 7989명으로 전체 재외 선거권자의 7.5% 정도입니다. 이 숫자는 지난 21대 총선과 비교하면 14.0%포인트, 20대 대선과 비교하면 34.6%포인트나 줄어든 수치입니다. 재외선거가 처음 시작된 2012년 총선을 제외하면 재외선거 유권자 수가 가장 적어서 재외국민들의 이번 선거에 대한 관심이 낮은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재외선거 투표가 시작된 이후 반전이 펼쳐졌습니다. 중앙선관위가 발표한 재외 투표 진행 2일 차 누적 투표율이 17.0%로 같은 기간 21대 총선의 7.1%, 20대 총선의 8.8%의 두 배 가까운 것으로 나오더니, 엿새 간의 재외선거 기간이 끝나고 지난 2일 발표된 최종 투표율은 62.8%로 역대 4번의 총선 가운데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직전 선거인 21대 총선에 비하면 39%포인트, 역대 총선 중 최고였던 19대 총선에 비해서도 17.1%포인트가 더 높은 수치입니다.
▲ 재외선거의 높은 투표율에 대한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의 반응. |
ⓒ 페이스북 갈무리 |
재외선거와 관련해서는 선거 시작과 함께 투표 등록자가 14% 감소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말았던 언론들도 예상을 뛰어넘는 기록적인 투표율이 발표되자, 재외선거가 전체 판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기사를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4일 차 투표율이 발표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큰 힘이 나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며 '정말 고맙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재외선거가 끝난 후 페이스북에 "여러 번거로움과 어려움을 이겨낸 역대급 재외선거 투표율. 정권 심판과 새 나라에 대한 열망의 목소리입니다"라는 말로 높은 투표율에 고무된 반응입니다.
조국 대표와 이재명 대표는 왜 재외선거의 높은 투표율에 반색하는 걸까요? 재외선거 도입 이후 역대 선거 재외득표 결과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 21대 총선에서 정당 전체 득표율과 재외선거 특표율을 비교한 표. 범진보 계열 정당의 재외득표율이 훨씬 높은 걸 볼 수 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 |
ⓒ 이봉렬 |
대선뿐만 아니라 총선에서도 재외선거만큼은 범진보 계열의 정당이 범보수 계열 정당에 늘 앞서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21대 총선의 재외선거에서 더불어시민당, 열린민주당, 정의당 등이 전체 득표율을 넘어서는 결과를 받은 반면, 미래한국당과 국민의당은 전체 득표율에 못 미치는 결과를 받았습니다. 특히 열린민주당은 전체 득표 대비 9.5%포인트를 더 재외선거에서 받았고, 반대로 미래한국당은 9.2%포인트를 덜 받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재외선거 투표율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고 해서 범진보계열 정당이 환호를 지르기에는 조금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이번 총선에 참여하는 재외선거 유권자는 전체 유권자의 0.33%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몇십 표차로 승패가 결정되는 초박빙 선거구가 아니라면 대세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재외국민 투표율, 왜 이렇게 높아졌나
다만 투표율이 왜 이렇게 높아졌는지에 대한 분석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외국에 살면서 재외선거에 참여하는 건 특별한 관심과 함께 많은 수고가 필요한 일입니다. 미국, 중국, 일본같이 우리 국민이 많이 거주하고 나라가 큰 경우에는 투표소가 여러 곳에 설치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재외공관 한 곳에 투표소를 설치하는 수준입니다.
▲ 역대 국회의원 재외선거 선거인수, 투표자수 및 투표율. 투표율과 투표자수 모두 역대 최대입니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 |
ⓒ 이봉렬 |
이렇게 투표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대선과 총선의 투표율은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2012년 재외선거가 시작된 이후 세 차례의 대선에서 재외선거 투표율은 평균 72.67%였습니다.
반면에 세 차례 열린 총선의 재외선거 투표율은 평균 36.96%, 코로나 사태로 인해 투표율이 하락한 21대 총선을 제외하더라도 총선의 재외선거 투표율은 평균 43.55%에 불과합니다. 투표를 하기 위해 온전히 하루를 써야 하는 재외국민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을 뽑느냐, 국회의원을 뽑느냐에 따라 투표 의지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외국민 투표율이 역대 총선 투표율을 크게 뛰어넘어 대선 투표율에 육박한다는 것은 유권자들이 이번 선거를 단순히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심판 선거라 여기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게 저의 판단입니다. 같은 생각을 하는 유권자가 많다면 한국에서도 투표율은 높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5~6일은 한국에서도 사전투표를 하는 날입니다. 주민센터나 주민회관 등 전국 3565곳에 설치된 사전투표소 어디서건 신분증만 있으면 투표가 가능합니다. 온 나라를 통틀어 단 하나밖에 없는 투표소까지 찾아가 투표해야 하는 재외국민 입장에서는, 투표소가 3565곳이나 되는 한국 유권자들의 투표 환경이 부럽기만 합니다.
그렇게 투표하기 좋은 환경에서 재외국민보다도 투표율이 낮게 나온다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주권 행사를 위한 재외국민들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다들 꼭 투표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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