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G 만에 ML 데뷔 첫 홈런→맥주·면도크림 세례...이정후가 펄펄 날자 SF가 열광했다
(엑스포츠뉴스 유준상 기자) 지난해 초 '바람의 손자' 이정후가 빅리그 진출을 공식 선언하자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 미국의 반응도 뜨거웠다. 특히 지난해 2월부터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이정후 단 한 명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한 구단이 있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를 대표하는 '명문구단' 중 하나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그 주인공이었다.
샌프란시스코는 그동안 월드시리즈 8회 우승(1905, 1921, 1922, 1933, 1954, 2010, 2012, 2014년)을 달성하는가 하면, 포수 버스터 포지와 같은 스타 플레이어를 배출하기도 했다. 다만 2022년과 2023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아쉬움을 삼켰다.
지난해만 놓고 보면 팀 타선의 집단 부진 속에 79승 83패, 승률 0.488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4위에 머물렀다. 샌프란시스코의 방망이는 팀 타율 0.235에 그쳤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28위로 1년 내내 빈공에 허덕였다. 팀 OPS도 0.701로 효율적인 공격이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포수, 유격수, 2루수와 함께 센터라인을 이루는 중견수 포지션에서 제 몫을 한 선수가 없었다는 점도 문제였다. 루이스 마토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많은 76경기에 중견수로 나섰지만 타율 0.250(228타수 57안타) 2홈런 14타점 OPS 0.661로 아쉬움을 남겼다. 마토스의 출루율은 0.319에 불과했다.
이정후의 빅리그 도전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샌프란시스코는 지난해 12월 비공개 경쟁입찰(포스팅 시스템) 개시와 함께 발빠르게 움직였고,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이정후와 6년 총액 1억 1300만 달러의 조건에 도장을 찍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진심에 이정후의 마음이 움직였다.
파르한 자이디 샌프란시스코 사장은 지난해 12월 이정후 입단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는 이정후가 KBO리그 최고 선수로 성장하는 걸 오랫동안 지켜봤다.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이정후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며 "이정후가 (2024시즌) 개막전부터 매일 중견수로 뛰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다. 오늘(입단식)은 샌프란시스코 구단 역사에 남을 위대하고 신나는 날"이라고 강조했다.
2020~2021년 KIA 타이거즈 사령탑으로 KBO리그에서 뛰는 이정후를 직접 지켜봤던 맷 윌리엄스 샌프란시스코 3루 주루코치는 올해 2월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디애슬레틱'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정후는 좋은 외야수이자 KBO리그 최고의 타자다. 주루도 뛰어나다. 배트를 들고 있지 않을 때도 (출루, 주루, 수비 면에서) 팀에 공헌한다. 야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클럽하우스에서도 동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선수"라며 "샌프란시스코 스카우트는 오랫동안 이정후를 지켜봤다. 그를 영입하는 데 있어서 내 의견이 필요했던 건 아니지만, 그를 영입하면 팀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끄는 '연결고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2022년부터 2년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김하성을 지도했던 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감독은 올해 시범경기 초반 "내 생각에 이정후는 확실히 좋은 스피드를 갖고 있고, 누상에서 좀 더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어떤 혼란을 일으킬지는 알 수 없다"고 이정후를 평가했다.
동료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정규시즌 개막을 앞두고 샌프란시스코 지역 매체 '머큐리 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한 포수 톰 머피는 "이정후의 기술적인 수준은 특별하다. 이정후처럼 삼진을 적게 당하는 선수를 보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정후는 우리 팀에게 거대한 한 해를 만들게 할 수 있는 선수"라고 칭찬했다.
외야수 마이클 콘포토는 "이정후는 배럴 타구를 생산하는 재주를 갖고 있고, 빠른 손을 갖고 있다. 또 경기를 잘 이해한다. 우리가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에서 본 것을 계속 얘기할 수 있다. 모두가 이정후에게 깊은 인상을 받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또 다른 팀 내 외야수인 마이크 야스트렘스키도 "이정후는 정말로 인성이 좋고 훌륭한 팀 동료"라고 말했다.
그리고 시범경기를 통해 예열을 마친 이정후는 불과 3경기 만에 빅리그 첫 홈런을 쏘아 올렸다. 이정후는 31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펫코파크에서 열린 2024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원정경기에 1번타자 겸 중견수로 선발 출전, 4타수 1안타(1홈런) 2타점으로 활약하면서 팀의 9-6 승리를 이끌었다. 동시에 개막 3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이어갔다.
직전 세 타석에서 유격수 땅볼-유격수 땅볼-희생타로 출루에 실패한 이정후는 네 번째 타석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팀이 3-1로 앞선 8회초 1사에서 샌디에이고의 좌완 사이드암 톰 코스그로브의 3구 스위퍼를 통타, 오른쪽 담장을 넘어가는 솔로 아치를 그렸다. 원정 팬들은 물론이고 샌디에이고 홈팬들도 이정후의 홈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이정후의 아버지' 이종범 코치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뒤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경기는 샌프란시스코의 승리로 마무리됐고, 미국 현지 언론은 계속 이정후를 조명했다. 이정후는 경기를 마친 뒤 동료들로부터 맥주와 면도크림 세례를 받으면서 환한 미소를 보였다. 샌프란시스코 팀 구성원들이 이정후를 얼마나 아끼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미국 매체 'NBC스포츠'는 "샌프란시스코 구단이 이정후가 그의 우상인 스즈키 이치로와 닮았다는 걸 느끼는 데 있어서 캠프에서 몇 차례 스윙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치로는 필요할 때 담장을 향해 타구를 보내는 타고난 능력을 갖고 있었다"며 "(스프링캠프 때) 첫 며칠 동안 이정후가 친 타구가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의 오른쪽 담장 밖으로 날아갔다. 샌프란시스코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이정후가 더 펀치력을 보여주길 바랐고, 이날 경기에서 그 힘이 나왔다"고 짚었다.
이어 "이 홈런은 이정후로 가득 찬 이날 경기의 '하이라이트'였고, 경기가 9-6 승리로 끝난 뒤 팀 동료들도 이 점을 인정했다. 콘포토가 만루홈런을 치고 (올 시즌을 앞두고 이적한) 투수 조던 힉스가 첫 스타트를 순조롭게 끊었지만, 맥주 샤워에 흠뻑 젖은 건 이정후였다"고 경기 이후의 장면을 전하기도 했다.
이정후는 이제 4경기 연속 안타 행진에 도전한다. 이정후의 활약에 힘입어 시리즈 전적 2승1패를 만든 샌프란시스코는 4월 1일 샌디에이고와의 4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3연승을 정조준한다.
사진=샌프란시스코 구단 공식 SNS, AP/연합뉴스
유준상 기자 junsang98@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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