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잘 견뎌내셨어요” 시민들의 존중 보여주고 싶었다

김남중 2024. 3. 31.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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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 세월호 가족의 10년 기록해온 1인출판사 박대우·작가 유해정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책으로 출간하는 일을 함께해온 유해정 작가(왼쪽)와 박대우 편집자가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건물 앞에 설치된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새로 만든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강원도 고성에서 1인 출판사 온다프레스를 운영하는 박대우(46)씨는 세월호참사 10년을 맞아 지난달 세 권의 책을 냈다.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10년의 활동을 정리한 ‘520번의 금요일’, 단원고 생존자와 희생자 형제자매 이야기를 담은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 작가들이 10년간 이어온 세월호 추모 낭독회에서 읽힌 작품들을 수록한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의 말을 이어갑니다’가 그 책들이다.

박씨는 창비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면서 2015년 ‘금요일엔 돌아오렴’, 2016년 ‘다시 봄이 올 거예요’를 출간했다. 세월호 부모들이 10년간 문제를 붙잡고 있는 동안 그는 회사를 옮기고 거주지를 옮기면서도 세월호 출판을 붙잡고 있었다.

지난달 27일 서울시청 인근 카페에서 만난 박씨는 “재작년에 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으로부터 10주기 책을 같이 만들자는 연락을 받고 곧바로 그러자고 했다”면서 “그 책을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오래 참사에 대해 생각해 왔다. 그리고 이제 참사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뒤바꿔 놓았는지 되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책 몇 권이 실패하면 곧바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는 게 1인 출판사의 현실이다. 의미가 있는 책이라고 세 권을 한꺼번에 제작한다는 건 큰 출판사라고 해도 쉽지 않다. 박씨는 손해를 감내하는 것은 물론이고, 멋진 책을 만들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대중들에게 읽히려면 책이 절대 무거우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일 가벼운 종이, 그러면서도 색이 오랫동안 바래지 않는 종이를 찾아내 본문에 사용했다. 표지도 가장 얇은 합지를 써서 단단하면서도 가볍게 만들었다. ‘520번의 금요일’ 표지에는 뭉크의 그림을 사용했는데, 먹을 빼면서 청색을 올렸다. 팽목항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던 부모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책으로 세월호 가족들에 대한 우리 시민들의 존중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외롭고 힘드셨을 텐데 잘 견뎌내셨습니다, 그런 시민들의 마음을 전하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얘기했다.

박씨에게 책을 만들자고 연락한 사람은 인권운동가 유해정(48)씨다. 유씨는 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 소속으로 ‘금요일엔 돌아오렴’ ‘다시 봄이 올 거예요’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집필에 참여했고, 10주기를 맞아 기획된 ‘520번의 금요일’ 필자 6명 중 한 명이다. 그 역시 지난 10년을 세월호 가족들을 기록하며 지내왔다. 세월호참사를 들여다보다가 재난과 애도를 연구하는 사회학 박사가 되었고, 올 초 설립된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센터장을 맡았다.

유씨는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에 참여했는데,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밖으로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다. 언론에서 할머니들을 억울한 피해자, 아니면 투사로만 재현하는 것도 못마땅했다. 그래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들어서 세상에 알려주자고 생각하게 됐다. 그 작업을 통해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엄청난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세월호참사가 터졌을 때 다시 가족들의 이야기를 기록해보자고 했다. 그러면 뭔가 다른 이야기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세월호 가족들의 이야기를 처음 쓸 때는 내가 이 참사 속에서 뭐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심정이었다. 좀 지나서는 알았기 때문에 외면할 수 없었다. 이 부모들의 삶도 알고 투쟁도 아는 사람으로서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며 “지금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내가 알던 부모님들이, 나라면 이렇게 버텨오지 못할 것 같은데, 같이 모여서 버티고 살아냈다. 이분들이 만들어온 역사를 널리 소개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에 참여했다”고 얘기했다.

두 사람이 함께 처음 만든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세월호참사에 대한 최초의 책이자 재난 유가족에 대한 국내 첫 기록이었다. 이 책은 10만부가 팔렸다. 그 뒤로 세월호를 다룬 책과 논문, 영상 등이 폭발적으로 생산됐다. 정부는 유족을 고립시키고 시민들이 속히 참사를 잊기를 바랐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지난달 16일 '세월호 10주기 전국시민행진'에서 참가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유씨는 “세월호참사를 기록해 보자고 하고 참고도서를 죽 모았는데, 국내에서는 재난 관련 기록이라고 할 만한 게 거의 없었다. 문학 작품은 간혹 있었지만 비문학 기록은 없었다. 외국 서적도 많지 않았다”면서 “재난참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문화를 만들어 보자, 우리가 레퍼런스를 만들어 보자, 그런 마음으로 기록 작업을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박씨는 “세월호운동 10년은 가족협의회의 역사만이 아니라 함께 슬퍼하고 연대했던 시민들의 역사이기도 하다”면서 “이 과정에서 기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월호 기록은 한국의 재난참사 매뉴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520번의 금요일’은 희생자 부모들의 이야기로 구성한 세월호운동 10년에 대한 백서다. 유씨는 “솔직한 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월호운동의 과오도 솔직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또 지난 10년이 해결하지 못한 과제와 함께 그동안 이뤄낸 거대한 진전에 대해서도 얘기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참사가 발생한 지 1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때론 세월호운동을 하는 사람들조차도 여전히 세월호 하면 2014년 4월 16일부터 떠올린다. 혹은 진상규명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만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이곤 한다. 10년 동안 세월호 가족들과 시민들이 함께 무수한 일들을 해왔고, 전무후무한 역사를 써왔는데도 말이다. 재난참사에 대한 진상조사와 특별법 제정, 재난 피해자의 확장과 피해 회복 노력, 추모 공간 마련, 다양한 형태의 재난 기록, 전방위적인 사회운동과 문화·예술운동, 재난 관련 학문의 양적 질적 성장 등 세월호운동은 우리 사회에 매우 큰 족적을 남겼고, 여전히 남겨가고 있다. 10년은 결코 그냥 흐른 것이 아니고 실패한 것도 아니다.”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는 참사 당시 생존 학생들과 희생자 형제자매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두 사람은 2016년 출간한 ‘다시 봄이 올 거예요’에서도 당시 10대였던 이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 젊고 조용한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일까.

박씨는 “이 젊은이들은 10대에 참사를 겪었고 지금은 20대 후반이 되었다. 10년이 지난 후 이들이 어떤 상태에 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어보고 싶었다. 부모를 이어 앞으로 무언가를 해나갈 사람들도 이 친구들일 수밖에 없다”면서 “부모들의 언어가 정제되고 완성된 것이라면, 이 젊은이들의 언어는 아직도 만들어지는 중이다. 그래서 거칠고 투박하지만 진심을 담고 있으며 참사를 보는 또 다른 시각을 열어준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가족들을 기록하면서 그들을 곁에서 지켜봐 온 두 사람에게 부모들이 10년을 버틴 이유와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유씨는 “안간힘을 쓰면서 살아온 시간이었다. 죽은 아이들에게 들려줄 말을 찾기 위해서, 또 살아있는 자녀들에게 부모로서 당당하기 위해서 살아온 시간이었다”고 대답했다.

박씨는 “너무 고마운 분들”이라고 말했다. “재난 피해자 운동의 전범을 만들어낸 분들이다. 재난이 터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따라갈 길이 생겼다. 이제 어떤 참사라도 무기력하게 묻히진 않을 것이란 희망을 품게 되었다. 10·29 이태원참사 때 그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부모님들은 난관이 계속 있었는데 계속 자리를 지켰다. 저로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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